금융위원회가 넉 달째 삼성생명에 대한 제재 수위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보험사 가운데선 처음으로 제재 수위를 논의하는 금융위원회 안건검토 소위원회를 네 번째로 소집했다. 금융감독원은 앞서 요양병원 암보험 입원비 미지급과 대주주 거래제한 위반을 이유로 삼성생명에 대해 중징계를 예고한 바 있다.
금감원의 제재 조치는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최종 결정되는데, 이 일정 자체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결국 삼성생명에 유리한 쪽으로 상황이 흘러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일부에선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설도 재차 불거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사안이 복잡해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면서 확대 해석엔 선을 그었다.
# 금융위, 이례적으로 4차 소위…제재 확정 계속 미뤄져
27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는 삼성생명 제재안을 결정하는 정례회의에 앞서 오는 28일 4차 안건검토 소위를 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4일 3차 소위에서 제재 논의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안건 소위는 제재 당사자인 금감원 검사국과 제재 대상자인 삼성생명의 진술을 대심제 형식으로 번갈아 들으며 쟁점을 사전에 검토하는 방식으로 열린다.
금융위는 벌써 세 차례나 소위를 열었다. 지난달 12일 1차 소위에서는 금감원의 주장을 주로 들었고, 같은 달 26일 2차 소위에서는 삼성생명의 변론을 들었다. 3차 소위에선 1, 2차 소위 내용과 삼성생명이 제출한 해명 자료를 근거로 금융위 위원들 간 논의가 오갔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1~3차 소위에서 대주주 거래제한 위반 건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마무리했고, 4차 소위에선 요양병원 암보험 입원비 미지급 건이 논의될 전망"이라고 귀띔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삼성생명에 중징계에 해당하는 '기관경고'를 의결했다. 또 삼성생명에 과태료 및 과징금 부과를 금융위에 건의하고, 해당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3개월 감봉·견책 등도 조치했다.
금감원은 삼성SDS가 전산시스템 구축 기한을 지키지 않았는데도 삼성생명이 지연 배상금을 받지 않은 건을 대주주 거래제한 위반으로 봤다. 또 삼성생명이 암환자 다수에게 요양병원 입원비를 지급하지 않은 건도 보험약관 준수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 삼성생명 유리한 고지?…금융위·금감원 갈등설도 재부각
보험업계에선 금융위 안건 소위가 이례적으로 길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금융위는 금감원의 징계안이 올라오면 한 달 내에 최종 의결을 끝낸다. 실제로 삼성생명에 앞서 지난해 11월 대주주 거래제한 위반 등으로 금감원 기관경고를 받은 한화생명은 두 차례 안건 소위 후 징계를 확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험사 제재 건으로 소위를 네 번이나 연 사례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자 금융위가 추후 소송 제기 가능성 등을 이유로 이번 제재에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요양병원 암보험 입원비 미지급의 경우 일부 사례긴 하지만 대법원이 삼성생명의 손을 들어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거 사례와 비교해볼 때 제재 확정을 위한 배경 설명과 검토 과정이 길어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전반적인 상황이 삼성생명에 유리하게 돌아간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금융위가 금감원을 의식해 제재를 미루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른 관계자는 "금융위와 금감원의 불편한 관계가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면서 "제재 건은 물론 금감원이 올린 안건 다수를 금융위가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반면 금융당국은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안이 복잡하고 꼼꼼히 따져볼 내용이 많아 단번에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사모펀드 환매 사태를 일으킨 라임자산운용 관련 안건 소위도 4차까지 진행한 바 있어 삼성생명에만 해당되는 특이 사항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종합검사 부활을 이끌면서 이번 삼성생명 제재를 주도한 윤석헌 금감원장은 내달 7일 퇴임을 앞두고 있어 임기 내 마침표를 찍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생명은 요양병원 암보험 입원비는 물론 앞서 즉시연금 지급 문제를 놓고도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 등 윤 원장 임기 내내 금감원과 각을 세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