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 씨는 지난 2015년 부산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시급은 5000원. '주변 다른 편의점보다 많이 주는 것'이라는 사장의 말만 믿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플랫폼 광고를 통해 당시 최저 시급이 5580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확인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최저 시급에 대한 인식이 낮았습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다 보니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구인구직 앱 등의 대대적인 광고로 최저시급이 얼마인지 또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험업계에선 5~6년 전 김 씨와 같은 상황이 아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보험상품의 불합리한 사업비 구조와 불투명한 모집수수료 문제를 개선한다며 올해부터 새롭게 '1200% 룰'을 도입했지만 정작 영업현장은 조용합니다.
여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보험설계사들은 정작 이 내용을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보험계약 체결을 대리하면서 실제로 본인이 받아야 할 모집수수료가 정확하게 얼마인지 기본적인 내용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 확 바뀐 모집수수료 체계…정작 현장은 조용
금융당국은 올해부터 이른바 '1200% 룰'을 도입했습니다. 보험 가입 첫해에 모집수수료를 과도하게 몰아주는 선지급 관행을 개선해 매년 나눠서 지급하면 이른바 먹튀설계사, 고아계약을 줄이고, 수수료 체계도 더 투명해질 것이란 목표도 내걸었습니다.
초기에 과도하게 지급하는 수수료를 줄이는 만큼 조기 해약에 따른 해지환급금을 늘리고 보험료를 인하해 보험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관련기사 ☞[보험정책+]수수료 개편 후①1200%룰 왜 적용할까?)
그런데 설계사들의 수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수수료 체계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도 정작 영업현장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초년도 수수료가 줄었다는 불평정도만 있을 뿐입니다. 지난해까지 GA 등이 형식적으로라도 공개하던 '수수료 테이블'을 아직까지 대부분 공개하지 않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보험사나 GA의 설계사 관리자급들은 "설계사들이 수수료에 관심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정말일까요? 그렇다면 왜 관심이 없을까요? 또 '1200% 룰' 시행 후 GA들이 수수료 테이블을 아예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관심 없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모집수수료
보험사나 일부 법인보험대리점(GA)들은 그동안 설계사에게 지급하는 수수료 산식을 담은 테이블을 공개해왔습니다. 하지만 보험사와 GA는 물론 보험상품의 종류에 따라 수수료 체계와 적용 방법이 모두 다르다 보니 실제 본인이 받아야 할 수수료가 구체적으로 얼마인지 아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여기에다 각각의 보험사가 제공하는 별도 수정률까지 곱해야 하는 등 설계사 개개인이 정확한 값을 계산하긴 어려운 구조인데요. 설계사들이 애초 정확한 수수료 체계를 알지 못하다 보니 문제가 있어도 잘잘못을 따져 물을 방법이 없는 겁니다. 마치 최저시급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근처에서 제일 많이 주는 것'이라는 사장 말만 믿던 5~6년 전 아르바이트생 상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설계사들이 꼬치꼬치 캐묻기도 어려운 구조입니다. 수수료를 따져 물으면 강제로 해촉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위촉계약 시 들었던 설명과 실제 수수료가 다르게 나와 따져 물었더니 해촉된 실제 사례도 있습니다.
설계사가 해촉되면 계약 유지에 따른 유지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데다 다른 보험사나 GA로 이직을 해도 재위촉까지 두 달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 대부분은 따져 물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 당신의 수수료는 얼마입니까?
GA의 경우 수수료 정산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GA 내에서도 지사별로 다른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보험사와 수수료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GA가 병합하는 형식으로 몸집을 키워온 지사형 GA의 경우 이같은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일명 피라미드로 불리는 다단계형 구조다 보니 지사마다 수수료 총량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GA의 수수료 정산방식은 크게 ▲보험료에 정해진 지급률을 곱해 지급하는 방식 ▲납입기간에 따른 수정률을 적용하고 여기에 다시 지급률을 곱하는 방식 ▲GA가 받는 수수료 총량에 설계사의 지급률을 정해 지급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첫번째 방식은 산식은 간단하지만 실제 계산 시 오차가 크게 벌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규모가 작아 수수료를 정산하는 시스템이 아예 없거나 소속되지 않은 설계사의 코드만 빌려 불법적으로 실적을 올리는 이른바 경유 매집계약을 하는 GA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수정률을 곱하는 방식의 경우 보험상품이나 특약에 따라 수정률이 달라 구조가 복잡합니다. 수수료 테이블에도 평균값이나 일부 수정률만 제시해 오차 범위를 크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GA가 받는 총수수료에 설계사에게 지급할 지급률을 곱하는 방식도 방식 자체는 간단하지만 GA가 제시한 총수수료가 100%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지사형 GA가 총량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전형적인 다단계 구조가 많아 일부 지사의 경우 100%라고 생각했던 수수료 총량이 실제로는 훨씬 적은 데도 지사장조차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초년도 수수료를 1200%로 제한했음에도 이전처럼 수수료 테이블을 공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더욱이 '수금수수료' 등 GA가 설계사에게 알리지 않거나 지급하지 않는 수수료도 많아 투명한 공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전언입니다. 실제로 보험사들이 GA들에 주는 수금수수료는 매년 수천억원에 달하지만 정작 설계사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거의 없습니다.
올해는 수수료 체계 개편은 물론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과 비대면채널 확대, 설계사 고용보험 적용, 제판분리 움직임까지 설계사를 둘러싼 환경 변화가 그어느때보다 큽니다. 보험 수수료 체계를 투명하게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기존 수수료 체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스스로의 권익을 높이려는 설계사들의 관심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