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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암호화폐를 어이할꼬…'냉정과 열정사이'

  • 2021.07.02(금) 07:15

[선 넘는 금융]금융권 암호화폐 딜레마②
가상자산거래소 실명 계좌 발급 '글쎄'
한편으론 투자와 연구 등 다양한 시도

암호화폐를 비롯한 가상자산에 대한 은행들의 입장은 한마디로 '전략적 모호함'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부가 법적인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만큼 공식적으론 선을 긋고 있지만, 다른 한쪽으론 가상자산거래소 수탁사업에 진출하거나 관련기업에 투자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에 나서고 있다. 

가상자산거래소 실명 계좌 발급 '글쎄'

가상자산거래소는 오는 9월부터 국내 시중은행의 실명 계좌를 발급받아야만 운영할 수 있다. 시중은행들은 계좌 발급 서비스를 통해 일정 수준의 이익을 낼 수 있지만 상당히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현재 은행에서 실명 계좌를 발급받아 운영되는 가상자산거래소는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코빗 등 네 곳이다. 이 중 케이뱅크는 업비트, NH농협은행은 빗썸과 코인원, 신한은행은 코빗에 실명 계좌를 발급하고 있다.

수익도 짭짤하다. 금융감독원이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가상자산거래소 실명 계좌 발급으로 케이뱅크는 50억원, 신한은행은 14억5000만원, 농협은행은 16억3300만원을 수수료 수입을 거뒀다. 

하지만 이들 은행들조차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케이뱅크 모두 계약 연장에 대해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지금도 실명 계좌를 발급하지 않고 있는 KB국민과 하나, 우리은행 등은 여전히 발급 계획이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최악의 경우 9월 이후 국내에서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받은 가상자산거래소가 한곳도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픽=비즈니스 워치

관건은 자금세탁…은행 "책임질 수 없는 영역"

은행들이 가상자산거래소 실명 계좌 발급을 꺼려하는 이유는 올해 도입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의 영향이 크다. 특금법은 가상자산거래소와의 거래 과정에서 자금세탁 이슈가 발생할 경우 은행에도 책임을 묻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금세탁은 은행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슈 중 하나다. 국내는 물론 해외 금융당국으로부터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과징금 철퇴를 맞을 수도 있어서다. 은행의 핵심 업무가 정지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은행연합회는 가상자산 실명 계좌 발급을 위한 참고자료를 은행권에 전달했고 은행들은 이를 바탕으로 가상자산거래소 계좌 발급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가상자산 실명 계좌 발급을 위해 확인해야 될 사항을 세부적으로 정해 각 은행에 전달했다"면서 "은행들은 이 자료를 참고해 거래소를 검증한 뒤 실명 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특금법상 자금세탁 이슈 발생 시 은행에 책임을 묻는다는 내용이 있으면 아무리 세세하게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도 쉽게 계좌를 터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은행들은 금융당국에 특금법상 자금세탁과 관련한 면책권을 요청했지만 금융위원회는 절대 불가라는 입장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일 "(은행권의) 면책 요구는 (자금세탁과 관련한) 글로벌한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당분간 가상자산거래소 실명 계좌 발급엔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러면 가상자산거래소의 줄폐업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한편으로 신사업 차원에서 적극 검토

은행들이 가상자산거래소 실명 계좌 발급에 대해선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신사업 차원에서 다양한 시도에 나서고 있다. 

일례로 KB국민은행은 블록체인 기업인 해치랩스와 블록체인 투자사인 해시드가 설립한 가상자산 수탁서비스 업체 KODA에 직접 출자했고, 신한은행도 한국디지털자산수탁에 지분을 투자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가상자산 관련 상표도 출원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달 카카오의 블록체인 기술회사인 그라운드X가 개발한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의 이사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SC제일은행은 가상자산 세미나를 연다. 가상자산과 그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의 개념, 투자자산으로써 가상자산 등을 주제로 오는 8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진행한다.

SC제일은행은 이번 세미나가 가상자산 투자를 권유하거나 관련 상품을 소개하는 자리는 아니며, 객관적이고 정제된 정보를 전달해 고객 스스로 올바른 투자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의 이 같은 행보는 가상자산이 언젠가는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올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 디지털부서 관계자는 "가상자산 거래가 주식시장 거래량을 넘어설 정도로 활황이어서 가상자산이 정식 자산으로 인정되면 은행이 부수적으로 누릴 수 있는 수익이 많다"면서 "특히 블록체인은 은행의 미래를 책임질 기술로도 불리는 만큼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금감원이 김병욱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실명 계좌를 발급받아 운영하는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입출금된 금액은 올해 1분기에만 64조원을 넘어섰다. 실명 계좌 없이 운영하는 거래소들까지 합치면 그 규모가 훨씬 더 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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