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보험산업에 인슈어테크(InsureTech)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졌다. 보험(Insur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등의 정보기술(IT)을 활용해 기존 보험산업을 혁신하는 서비스를 지향하는 스타트업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보험사 내에서도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자체적으로 인슈어테크를 발전시키거나 관련 스타트업과 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보험사가 기술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비용 절감'이 가장 클 것이다. 보험 산업이 성숙하고 모집 시장이 포화된 상황에서 과거처럼 대면채널을 늘리며 성장하는 것은 효율적인 전략이 아니다. 비용이 높은 대면채널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전략으로 기술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설계사 없이도 보험 상품을 제안하고 체결한 후 관리할 수 있다면 사무실 임대료, 수수료 등 다양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따라서 기술에 대한 관심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 모집 채널인 대면조직을 기술로 완전히 대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보험 상품의 구조상 기술만으론 소비자에게 보험료 지출을 강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험 상품은 가입 즉시 효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심지어 보험금은 계약이 끝날 때까지 청구되지 않을 수도 있다. 보험이란 금융 상품은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투자의 수익률이나 저축의 이자처럼 당장의 효용을 약속할 수 없다. 보험료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받을 수도 혹은 받지 못할 수도 있는 보험금이 전부다.
보험의 이러한 특성은 자발적인 가입을 방해한다. 당장 효용이 없는데 미래의 불확실한 위험을 위해 현재 소비를 줄여 보험료를 지출할 사람은 많지 않다. 따라서 '누군가' 위험을 환기하고 보험 상품의 필요성을 강조해야 계약이 체결된다. 특히 대다수의 장기보험은 20년 내외의 할부로 구매하는 것이기에 초회보험료 납부 후 계속보험료의 지출까지 관리해야 한다. 이를 대면채널의 설계사가 담당했다. 다이렉트 채널에서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 이외 성장률이 미미한 것도 보험 가입을 위해서는 '누군가'가 필요함을 반증한다.
이 때문에 호기롭게 기술로 보험을 바꾸겠다는 시도들이 결국 법인보험대리점(GA)을 설립하는 쪽으로 흘러버린다. 다수의 인슈어테크 스타트업이 자회사로 GA를 설립하거나 대면채널과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보험 관련 법인 사업체가 일정 규모의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험사를 차리거나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유일하다. 보험사 설립은 규제 완화에도 제도의 장벽이 아직 높고 자본금 등도 상당히 필요하기에 보험사의 주변에서 유의미한 매출을 높이는 방법은 보험 상품을 모집 것이 유일하다.
초기 스타트업이 매출을 내는 것은 어려움이 많다. 따라서 대부분 투자금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다양한 기술로 보험 상품의 개발, 제안 및 체결 그리고 관리 등의 각 영역을 혁신하기 위해 도전했지만 사업의 유지를 위해서는 자체적인 매출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결국 인슈어테크 스타트업이 GA를 설립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볼 수도 있다. 매출 확보는 곧 지향했던 혁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절대 조건이다. 하지만 기술을 중심으로 출범했던 초기의 모습을 떠올려 볼 때 대면채널을 붙이는 것은 조금 어색하다.
따라서 보험을 중심으로 기술과 대면조직의 만남은 새롭게 정의될 필요가 있다. 기술만 또는 대면만 고집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기다. 각 보험사의 전속 대면채널만 보더라도 보장분석부터 제안 및 체결 등의 과정에서 기술의 도움을 받아 비대면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인슈어테크 스타트업이 더 큰 효율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기술로 확보된 고객을 대면으로 체결하여 매출을 높이는 것이 아닌 대면채널이 가진 기존의 비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면, 미비한 다이렉트 채널을 제외 전속 또는 GA로 양분된 모집 시장에서 제3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상품 개발, 설계, 제안, 심사, 체결, 관리 및 청구 등 보험료가 보험금으로 전환되는 전 과정에서 기존 대면채널이 확보하지 못한 효율을 기술적 우위와 창의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인슈어테크 스타트업이 자체 조직을 통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전속대면과 GA에게 상당한 긴장을 주고 그들의 비용 혁신과 서비스 개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선택지가 다양해지고 보험료 절감 등의 수요자 효용도 증가된다.
결론적으로 인슈어테크와 대면조직의 만남은 기술을 가진 혁신자가 전통적인 형태의 판매조직을 물리적으로 결합한 것에서 머물지 말아야 한다.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전혀 새로운 형태의 혁신을 만들어 내는 방향을 지향해야 보험 산업의 긍정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시작은 매출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더라도 설립 초기 기술을 중심으로 산업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열정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상당히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보험을 중심으로 기술과 대면조직의 만남이 기대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