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독일 핀테크 1위 기업 와이어카드가 수조원대 분식회계로 파산하며 충격을 줬습니다. 1999년 설립된 와이어카드는 전 세계에 걸쳐 인터넷과 모바일, 오프라인 상점에서 전자결제를 중개해주는 업체였는데요.
와이어카드는 2004년 말 독일 정보기술 업체에 인수된 후 첨단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금융 선두주자로 부상했고 파산 직전까지 독일 증시에서 시가총액 1위로 승승장구했습니다.
당시 고객예탁금이 은행에 분리 예치하면서 고객 손실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와이어카드가 파산하자 와이어카드 자회사에서 발행한 페이오니아 선불카드가 동결되며 이용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이와 함께 외부청산기관이라는 안정장치 필요성을 부각시켰고 금융당국의 부실 감독 책임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최근 머지포인트 사태는 독일 와이어카드 사례와 상당히 오버랩됩니다. 선불충전금에 대한 소비자 보호 문제나 감독당국의 책임론까지 유사하다는 지적입니다. 업권별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으로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논의도 다시 불붙을지 주목되고 있는데요. 그간 와이어카드 사태는 전금법 개정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대표 사례로 자주 언급돼 왔습니다.
최근 문제가 된 할인 결제 플랫폼 머지플러스의 머지머니(머지포인트)는 선불충전을 통해 대형마트와 편의점, 식당 등 다양한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도록 한 포인트입니다. 이를 파격적인 수준인 20% 할인된 가격에 팔면서 고객들이 급속히 불어나며 이용자수만 100만명, 월 거래규모만 300억~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다 이달 초 금감원이 이에 대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소지를 지적하고 나섰고 지난 11일 머지플러스가 포인트 사용처를 음식점업으로 한정하자 고객들이 대규모 환불을 요구하면서 관련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졌습니다. 전금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머지플러스는 머지포인트 서비스가 전금법에 따른 선불전자지급 수단으로 볼 수 있다는 당국 가이드를 수용해 포인트 판매를 중단하고 사용처를 축소한다고 기습 공지했습니다.
머지플러스가 발행한 머지포인트 규모는 1000억원 수준으로 일부 환불이 진행되고 있지만 전액 환불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설사 환불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전자금융업에 등록돼 있지 않으면서 피해보상 등을 강제할 수 없는 법적 근거도 불투명한 상황인데요. 결국 금융감독원은 경찰청에 머지플러스의 전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고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머지플러스의 경우 전자금융사업을 영위하면서도 이를 등록하지 않고 선불전자지급수단을 발행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전자금융거래법 상 2개 이상 업종에서 쓸 수 있는 선불전자지급수단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전자금융사업자에 등록해야 하는데요.
이에 따라 머지포인트 사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표류 중인 전금법이 발의돼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된 전금법 개정안에서는 선물충전금의 외부예치 의무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선불충전금 보호를 위해 송금액 100%, 결제액 50%를 외부 금융기관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하고 있는데 분식회계나 도산 가능성, 장부 조작 등에 대한 안전장치 차원에섭니다.
전금법 개정으로 선불충전금이 외부 기관에 예치됐다면 머지 사태 방지가 가능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현재 머지플러스와 유사한 선불전자지급업체의 선불충전금 잔액은 2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카카오페이나 네이버페이 등 빅테크 업체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겠지만 머지플러스와 같은 소규모 핀테크 업체들도 꽤 포함돼 있다는 겁니다.
이번 사태로 향후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전금법 개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전자지급거래에 필요한 외부청산 기관을 누가 담당하고 감독할지를 놓고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이 날을 세우면서 전금법 입법은 9개월째 표류 중입니다.
전금법에는 고객우선 변제권 부여와 함께 내부거래에 대한 외부청산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현재 금융결제원이 운용하는 은행 간 소액 지급결제 금융공동망은 한국은행의 지급결제시스템에 기반하는 반면 금융위는 금융결제원을 전금사들의 외부청산 기관으로 활용하되 한은이 아닌 금융위가 통제하거나 아예 제3의 외부청산 기관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머지포인트 사태로 전금법 논란이 다시 불거지자 한동안 잠잠했던 이들의 힘겨루기도 다시 재점화하는 모양새인데요. 지난 18일 한국은행은 머지포인트 축소 사태를 두고 전금법 개정안을 조속히 논의해 소비자 보호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개정안에서 기관 간 이견이 있는 지급결제를 제외하고 소비자 보호 관련 조항에 대한 논의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죠. 금융위원회와 대립각을 세운 외부청산기관을 통한 지급결제 문제는 추후 논의해야 한다며 여전히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인데 이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이와 함께 전금법 개정과는 별개로 이미 기존에도 머지포인트와 유사한 서비스가 수년간 존재한 상태에서 최근에서야 금융당국이 칼을 빼들면서 금융 사각지대 방치와 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론도 계속 이어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