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인사이드 스토리]①생·손보 싸움 붙인 IFRS17…누구냐 넌(3월1일)에서 계속
지난해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는 2023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을 도입하면 법인세 등 세제는 어떻게 개편되는지에 대해 각각 사전연구 용역을 수행하고 방향성을 도출했습니다. 이후 두 업권 보험사들은 법인세 개편 공동 추진에 대해 의견 교환과 논의를 진행했죠.
생보업계 태스크포스(TF)는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신한라이프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 △NH농협생명 등 7개사로 구성됐고요. 손보업계는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코리안리(재보험) 등 6개사가 뭉쳤습니다.
당초 계획은 올해 상반기중 두 업계가 함께 법인세 개정안을 도출하고, 이를 가지고 세정당국인 기획재정부를 설득하는 거였죠. 하지만 IFRS17 체계로 바뀌면 보험부채가 증가하는 생보사와 반대로 현재보다 줄어드는 손보사, 두 업권의 이해득실 차이가 컸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앞서 얘기했듯 생보사는 고금리에 할인율(이자율)까지 반영하는 저축성 상품과 종신·변액보험 등 장기상품이 많습니다. 시가 평가할 경우 보험부채가 큰 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면 손보사는 생보사보다 장기상품이 적죠. 요즘은 늘어나는 추세긴 하지만요. 그래서 손보사는 보험부채가 늘어날 가능성이 낮고, 되레 감소할 수 있습니다.
보험부채, 어떻게 처리해야 유리할까
IFRS17에서 보험부채가 많이 잡히는 생보사는 그걸 세법 개정에도 그대로 반영하고 싶어합니다. 부채가 많이 계상되면 이익이 감소해 법인세를 적게 낼 수 있어서죠. 반대로 손보사는 현행 대비 계산되는 부채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익이 늘어 법인세 부담이 증가할 수 있는 겁니다.
자세히 살펴볼게요. 생보사들은 IFRS17에 따라 시가 평가된 보험부채를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먼저 IFRS17 도입 첫해, 회계 방식 변경에 따라 큰 폭으로 발생하는 이익잉여금 감소액은 일정기간(현행 세법상 최대 15년) 과세소득을 줄이는 방식으로 반영합니다. 그리고 매년 시가 평가를 통해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보험부채도 세법에서 인정해달라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생보사의 법인세 부담은 감소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손보사는 반대입니다. 제도변경 첫해에는 이익잉여금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매년 시가 평가를 통해 산출되는 보험부채 또한 줄어들죠. 그러면 이익이 늘어나는 만큼 법인세 부담은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법인세 체계만큼은 현행 방식을 최대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법인세 부과 산식에서는 보험부채를 '시가'가 아닌 기존의 '원가'로 하자는 입장입니다.
구체적으로는 IFRS17 보험부채를 원가 기준에 가까운 해약환급금식 보험부채로 바꾸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게 손보업계 논리입니다. 해약환급금식은 가입자가 중간에 보험을 깼을 때 지급해야 하는 환급금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 생·손보 모두 현행 방식과 비슷하게 법인세가 산출된다는 게 손보업계 얘깁니다.
다시 말하자면, IFRS17 체계에서 보험부채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생보사는 해당 부채 증가분을 법인세에서 그대로 인정하자는 주장입니다. 부채가 클수록 이익이 줄어 세금부담 완화 효과가 있으니까요. 반면 손보사는 시가 평가에 따른 보험부채 변동분을 법인세법에는 인정하지 말자는 겁니다. 생보사 방식대로라면 부채가 줄어드는 손보사는 법인세 부담이 느니까요.
생보 vs 손보, 믿는 건 회계법인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던 두 업권은 절충안 마련을 포기했습니다. 납세금액의 유불리 효과가 분명해 합의를 보기 구조적으로 힘들었던 거죠. 한발씩 양보를 하려해도 변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했는데 의견을 모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죠. 결국 생·손보사들은 각 업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세제개편을 이끌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두 업권은 '누가 이기는지 두고 보자'는 식으로 전투력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 번 법이 정해지면 다시 바꾸기 어려우니까요. 지금 확실하게 승기를 잡아야 앞으로 쭉 낼 세금을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생보사들은 생보협회를 중심으로 김앤장법률사무소, 안진회계법인, 한영회계법인 등 3곳에 연구용역을 줬고요. 손보사들은 손보협회를 통해 법무법인 광장, 삼일회계법인에 의뢰했습니다. 손보협회는 연구용역을 줄 법무법인 1곳을 더 알아보고 있다고 합니다. 김앤장의 막강한 이름값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손보사들은 용역 예산(성공보수)도 기존 5억원에서 최대 20억~30억원으로 크게 늘렸다고 합니다. 손보업계가 제시한 법인세 개정안이 통과하면 법인세 절감효과가 상당하니까요. 게다가 생·손보업계가 서로 대치된 상황이라 더 어려운 싸움이란 거죠. 촉박한 시간표를 맞추기 위해 일단 TF에 참여한 6개 손보사들이 똑같은 액수를 나눠 내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합니다.
기재부·금융당국 "조율해 보세요"
'칼'을 쥔 기재부와 금융당국은 아직 '수수방관'입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혼선을 막기 위해 IFRS17 도입 전까지 법인세 개정을 마치려 한다"며 "두 업계의 의견을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금융위 관계자 역시 "기재부, 보험업계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원론적인 답변만 남깁니다. 아직 3월이니 시간이 충분하다는 거죠.
결과는 어떨까요? 일단은 손보업계가 우세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법인세법은 '수취할 권리와 지급 의무가 확정된 시점에서 손익을 인식·파악하는 권리의무 확정주의'를 대원칙으로 소득을 계산해서랍니다.
보험부채의 시가변동은 사실 보험사의 권리의무 확정과는 무관하고 시장의 지표변동일 뿐이란 논리죠. 세법은 유가증권 변동에 따라 일시적으로 발생한 평가 이익도 인정하지 않고 있거든요. 회계업계 한 관계자는 "자산에 대해서도 시가 평가를 인정하지 않는 세법의 체계를 고려할 때 부채에 대해서만 시가 평가를 인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하네요.
물론 반론도 팽팽한데요. 생보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유도에 따라 IFRS17가 도입될 예정이고 부채의 시가 평가가 이뤄지는데 세법상 부채 평가를 다른 기준으로 한다면 여기서 오는 혼란이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