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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누가 아재술이래?' 위스키의 부활, 그 뒤엔

  • 2022.02.25(금) 07:20

지난해 수입액 10년만 반등…수입량은 줄어들어
'하이볼'로 입문한 소비자, 고가 제품에도 관심
프리미엄 제품 의존도는 과제…"시장 저변 넓혀야"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코로나19는 주류 시장을 바꿨습니다. 유흥 시장이 위축되자 가정용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시장 구조가 바뀌면서 새로운 술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소주 판매는 줄어들었고, 수제맥주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이윽고 와인·막걸리도 각광받았죠. 다만 이런 변화는 위스키에게 ‘재앙’이었습니다. 유흥·접대용 고가 주종이었으니까요. 실제로 10년간 내리막길을 걷던 위스키 수입액은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 바닥을 찍습니다.

이랬던 위스키가 지난해 '반전'을 일으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위스키 수입액은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한 1억7534만달러(약 2100억원)를 기록했습니다. 2008년 이후 첫 반등이죠. 이에 대해 업계에서도 예상 밖의 결과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와인·맥주는 음식과 곁들여 가볍게 마시기 좋습니다. 반면 위스키는 '센 술자리'에 어울리는 독주에 가깝죠. 때문에 위스키가 가정용 시장에 어필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았었습니다.

위스키 시장은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을까요. 먼저 시장 상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지난해 위스키 수입액이 늘어난 것과 달리, 수입량은 1.6% 줄어들었습니다. '프리미엄 제품'의 비중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는 홈술 트렌드의 변화와 시너지를 냅니다. 코로나19 초기 홈술족의 '최애템'은 수제맥주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와인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요. 비싸더라도 마음에 드는 술을 마시는 '가심비'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변화했습니다.

이것이 위스키가 부활에 성공한 이유입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지난해 위스키를 가장 많이 소비한 계층이 홈술을 즐기는 MZ세대였다고 분석합니다. 한 업체가 지난해 말 3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합니다. 이 조사에서 '지난 한 해 위스키를 한 번이라도 구매했다'고 밝힌 소비자 중 53%가 2030세대였던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더 이상 위스키를 '아재술'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네요.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MZ세대는 왜 위스키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요. 이들은 위스키를 '하이볼'로 즐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이볼은 여러 위스키를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에 탄산수·토닉워터 등을 섞어 마시는 방식입니다. 달콤하면서도, 위스키의 깊은 맛을 느끼는 데 특화돼 있죠. 이 하이볼이 MZ세대의 위스키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는 설명입니다. '마시면 취하는 술'에서 '가볍고 맛있는 술'로 말이죠.

여기에 '품귀현상'이 소비심리에 불을 붙였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지난해 위스키 수요가 늘었음에도 수입은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19에 따른 물류난이 본격화됐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위스키를 사기 위해 '오픈런'에 나서는 소비자도 나타났죠. 관련 커뮤니티에는 인증글이 활발히 게재됐습니다. 누군가는 위스키를 '리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요. 어찌 보면 명품 브랜드와도 비슷한 모습입니다. 결국 귀하니까 더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죠.

위스키의 인기는 올해도 여전합니다. 이달 초 이마트가 애플리케이션에서 판매한 '발베니 14년산'은 판매 시작 2시간만에 완판됐습니다. 롯데마트가 판매한 '맥켈란 셰리오크 캐스크 18년산'도 며칠만에 품절됐죠. 이들은 다소 비싼 제품이지만 젊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에 위스키 사업을 확장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롯데칠성음료는 위스키 증류소 설립 부지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세계L&B는 전문가 채용에 나섰고요.

위스키의 포지션을 바꾸려는 노력도 활발합니다. 페르노리카코리아, 윌리엄그랜트선즈 등 위스키 업체들은 발망·제이콥앤코 등 패션·쥬얼리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습니다. 특히 윌리엄그랜트선즈는 갤러리아 압구정점에 글렌피딕X제이콥앤 팝업스토어까지 열었죠. 젊은 소비자들에게 위스키를 '고급스럽지만 친숙한 제품'으로 만드려는 시도입니다. 아울러 각 업체들이 칵테일 등 위스키를 다양하게 즐기는 방법을 소비자에게 열심히 알리고 있죠.

글렌피딕 팝업스토어 전경. /사진=윌리엄그랜트앤선즈

다만 일각에서는 위스키의 '진짜 부활'은 아직 멀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프리미엄 제품에 편중된 시장 구조가 이유입니다. 어떤 상품이든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려면,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이 모두 갖춰져야 합니다. 저가 상품이 소비자의 시장 입문을 이끌고, 이들이 점점 비싼 제품을 사용하는 선순환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프리미엄 위스키에 비해 중·저가 위스키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여전히 낮다는 지적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와인은 5000원대에서 수백만원을 아우르는 가격대의 제품이 모두 유통되고 있어 와인 초보도 부담 없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반면 위스키는 아직 고가 제품 의존도가 높다"며 "국내에서 제조되는 중·저가 로컬 위스키는 아직도 유흥 시장이 주력이며, 가정용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려면 이런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그럼에도 위스키의 이미지가 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과거 위스키는 어두운 룸에서, 양복을 빼입은 중년 남성들이 즐기는 술이었습니다. 영화 등 매체에서 위스키가 활용되는 방식도 비슷했고요. 반면 요즘에는 곳곳에서 젊은 소비자들이 위스키를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을 향한 위스키업계의 도전은 이제 시작됐고요. 위스키는 와인의 뒤를 이어 또 다른 '대세'가 될 수 있을까요.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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