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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대선 앞둔 금융위 숨죽인 이유

  • 2022.02.28(월) 06:10

여야 모두 금융감독체계 개편 예고
'금융위 기능 이관' 담은 법안 발의

확실히 대통령 선거철이긴 한가 봅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금융감독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거든요. 골자는 '금융산업'과 '금융감독' 정책 모두를 관할하는 금융위원회를 '헤쳐 모여' 하자는 건데요. 이는 2008년 이명박(MB) 정부가 금융위를 출범한 이후 대선 때마다 나온 얘기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번에는 여야 대선캠프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내는 데다 학계 주장도 거세져 차기 정부에서만큼은 개편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립니다. 대선이 열흘 남짓 남은 지금, 이 논의가 나온 배경부터 그간의 히스토리를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그래픽=김용민 기자

정책에 뒷전된 금융감독 집행…방아쇠 당긴 사모펀드 사태

현 금융위-금감원 체제의 시작은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7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개혁 요구에 따라 '금융감독기구 설치법'을 제정하고, 합의제 행정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위원회 아래에는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을 통합한 민간기구 금융감독원을 두었습니다. 비록 감독에 한한 것이었지만 금융정책은 정부가, 금융감독은 민간이 관할하는 현 체제의 토대가 정립된 것이지요.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금융 '산업'에 대한 정책은 당시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국이 담당했습니다.

이 체제에 균열을 낸 건 MB정부였습니다. 이 정부는 '작은 정부'라는 기치 아래 대대적으로 정부조직을 통폐합하며 금감위와 재경부 금융정책국을 합친 금융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수장을 분리한 것도 큰 변화였지요.

그전까지는 금융감독 정책과 집행을 각각 담당하던 금감위와 금감원을 모두 금감위원장 1인이 총괄했는데, 금융위가 만들어지면서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이 따로 있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금융위는 금융정책과 감독을 총괄하고 금감원은 감독 집행 권한을 위탁받는 지금의 금융감독 체제가 시작됐습니다.

한동안은 잘 굴러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저축은행 사태(2011년), 동양그룹 사태(2013년) 등 대형 금융사고가 격년 꼴로 터지면서 기존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됐습니다.

이는 금융산업의 성장을 내세워 규제 완화를 추구하는 '정책' 기능과 이 과정에서의 부실과 사고를 막으려는 '감독' 기능이 사실상 충돌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는데요. 저축은행 사태만 하더라도 2금융권을 육성하려는 관치가 감독을 앞서면서 건전성이 망가져 발생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금감원이 금융위의 하위 기관으로 예산은 물론 업무나 운영 전반에 대해 관리를 받다 보니 실제 감독 집행은 정책의 뒷순위로 밀린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같은 수직적 구조에서 두 기관의 갈등 또한 누적됐습니다.

이후 2012년, 2017년 대선을 전후해 금융감독 체제 개편이 연이어 촉구됐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번 정부에선 물 건너갔지만 금융위와 금감원의 기능 분리를 골자로 한 '금융관리와 감독체계 개편'이 이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바 있습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 현판 / 사진=금융감독원

그러다 터진 게 2019년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입니다. 증권사는 물론이고 믿었던 1금융권 은행마저 금융소비자를 기만하고 사기를 저질렀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지요. 이는 금융감독 체계 개편 논의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지요. 사모펀드 투자 문턱을 낮추는 등 제도를 완화한 금융정책 당국, 즉 금융위의 실책이 이 사태의 시발이었다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가야 할 길'된 정책-감독 분리…학계선 제3기구 주장까지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다보니 여야 정치권과 학계를 막론하고 금융감독 체제 개편은 마땅히 '가야 할 길'이 된 분위기입니다. 정책과 감독의 분리에 대한 공감대가 뿌리 깊게 형성된 것이지요. 당장 올해 정기국회에서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담은 법안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됩니다. 

대표적으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작년에 발의한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은 금융위의 금융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넘기고 금융감독을 독립적으로 강화하는 내용입니다.

야당에서는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낸 '금융감독원법 제정안'이 금융위의 정책·감독 기능을 각각 기재부와 금감위(신설)에 넘긴다는 게 골자로 여당 안과 유사합니다. 모두 여야 대선후보 캠프 소속의원들로 금융권에서는 '누가' 되더라도 개편이 불가피할 거란 얘기가 나오지요.

눈치채셨겠지만 이들 법안은 모두 '금융위 해체'가 공통분모입니다. 금융위로선 좌불안석일 테지요. 이는 작년 12월 금융위가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개최한 송년 간담회에서도 잘 드러났습니다.

이날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금융감독 체제 개편에 대해 "국회에서 금융행정체제 개편과 관련한 다양한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며 "비단 이번에만 그런 게 아니고 과거 19대, 20대 국회에서도 유사한 내용들이 발의된 바 있다"고 말했습니다. 표현 자체를 금융'감독'이 아닌 금융'행정' 체제 개편으로 한 것이지요.

그는 그러면서 "지금은 코로나19 위기 지속이나 금융 불균형 심화 등 여러 가지 현안이 많기 때문에, 당면 현안 해결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을 아꼈지요.

금융위와 금감원의 양분된 징계 권한에 대해서도 "(금융회사와 그 임직원에 대한) 제재 권한은 수십년간 지속되어 온 제도적 산물"이라며 "지금 재배분 문제를 논의해서 (얻는) 실익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작년 12월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송년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금융위원회

하지만 이번엔 기류가 다릅니다. 아예 제3의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이니까요. 앞서 금융분야 학자로 구성된 '금융감독 개혁을 촉구하는 전문가 모임'은 금융학자 및 전문가 312명이 서명한 금융감독 개혁 촉구 성명을 이달 16일 발표했는데요.

이들은 금융정책 기능은 정부가 계속 가지고 가되, 감독과 관련된 정책과 집행은 공적민간기구로 위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2013년에도 비슷한 성명이 나왔는데 그때보다 서명한 학자가 2배 이상 많아진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지요. 

특히 여기서 말하는 민간기구는 지금의 금감원이 아닙니다. 이 모임 대표 김대식 한양대 교수는 "현실적으로 현행 감독기구인 금감원을 모태로 할 순 있겠지만 권한 배분은 완전히 새로 해야 한다"며 "새 민간기구에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라는 명확한 목표를 주고, 그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감독체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완전무결하고 이상적인 금융감독 조직에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현 체제의 약한고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세계 주요국 대부분 역시 금융정책과 감독을 나눠 운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금융정책은 재무부가, 감독은 권역별로 감독기구를 분리해 맡고 있고요. 독일도 경제정책은 재무부가, 감독은 별도의 연방금융감독원이 담당합니다. 과연 차기정부에서는 어떤 금융감독체제가 만들어질까요. 얼마남지 않은 대선 결과에 금융권 전체가 주목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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