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임이 점쳐졌던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금융권 안팎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검찰 출신 인사들이 유력 후보군으로 새롭게 부상하면서다.
금융감독 당국 수장으로서의 중립성과 금융시장 전문성 측면에서 일단 업권의 우려는 짙다. 검사 출신의 부임으로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가 '먼지털기식'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염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 수장과 같은 출신의 인사가 임명됨으로써 금융감독원의 위상이 제고될 것이라는 기대가 묻어 나온다. 금융위원회와의 역학관계를 변화시킬 기회라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다.
차기 금감원장 물망 오른 검찰 출신 셋은 누구?
18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정은보 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난 12일 이후 정연수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사법고시 26회·연수원 16기), 박은석 법무법인 린 변호사(30회·20기), 박순철 법률사무소 변호사(34회·24기) 등 검사 출신 법조인들이 새 금감원장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모두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서울대 법대, 검찰 출신이다.
정연수 변호사는 현재 후보군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사다. 그는 1987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서울남부지검 경제·금융 전담부장, 수원지검 성남지청 차장을 지낸 뒤 2008년 6월 부원장보인 자본시장조사본부장으로 금감원에 발을 들였다. 기업공시, 금융투자업 검사, 자본시장 조사 등을 관할하며 4년간 임원으로 일했다. 이후 2013년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10년 가까이 몸담고 있다. 금융규제 컴플라이언스와 금융회사 검사 및 조사를 그의 관련 분야로 김앤장은 내걸고 있다.
박은석 변호사는 금감원 내부에서 설득력을 얻는 인물이다. 비교적 최근까지 금감원에 재직하며 자본시장조사, 내부 감찰 등 굵직한 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국장 재직 시절 불공정 거래 조사 경험을 토대로 서울대 금융법센터 학술지 'BFL'에 논문 '증권불공정거래의 현황과 과제'를 실은 것도 특별한 이력이다.
그는 1994년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검사로 임관돼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장, 창원지검 차장검사,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등을 거쳤다. 금감원에는 검찰 퇴직 직후인 2014년 4월 감찰실 국장으로 재취업했다. 이후 2016년 2월 자본시장조사1국장으로 전보돼 2년간 시세조종, 무자본 인수·합병(M&A)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를 집중 조사했다. 2018년 3월에는 법무법인 중부로 대표 변호사로 자리를 옮겼고, 지난해 7월 법무법인 린에 파트너 변호사로 합류해 금융회사 법률자문 등을 담당하고 있다.
박순철 변호사는 서울남부지검장으로 라임자산운용 사건을 수사하던 2020년 10월 당시 '라임 사태에 대한 입장'이라는 글을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리고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고 사의를 표명하며 세간에 알려진 바 있다. 금감원 근무 이력은 따로 없다.
로펌 출신 금감원장? 감독 권위 실추 우려
금융권은 일단 우려를 표하고 있다. 우선 금융감독 업무에 대한 중립성과 금감원의 독립성이 저해될 가능성이다. 특히 검사 출신에다 금감원 근무 이력이 있는 두 유력 후보는 유수 로펌의 현직 변호사로 자칫 이해충돌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평가다. 현재 국내 굴지 로펌 상당수는 금융회사 대관이나 임직원 법률 대리·자문을 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피검기관인 금융회사를 변호하던 로펌 출신이 금감원장 자리에 앉는 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며 "법과 제도보다 전관이나 로펌을 통한 물밑 작업만 활발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일단락된 사건이 재조사에 들어간다거나 특정 금융회사가 먼지털기식으로 파헤쳐질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다"며 "금융이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시장에 대한 전문성만 있다면 (검찰 출신이라도) 못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그 전문성의 기준이 금융산업의 발전이라고 한다면 현 하마평으로는 장담하기 어렵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해당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금융회사에 대한 금융감독의 권위도 서지 않을뿐더러 그런 선례가 업권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유례없는 검찰 출신 원장이 금감원의 대외 위상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이미 정부 요직을 검찰 출신이 대거 꿰찬 가운데 금감원장도 대통령과 같은 검찰 출신이라면 실보다는 득이 더 클 것이라는 논리다.
특히 차기 금융위원장에 경제관료 출신 인사가 내정된 상태에서 검찰 출신 금감원장이 부임하면 향후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 설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다. 금감원이 금융위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불편한 동거'를 해왔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금감원 또 다른 관계자는 "내부 승진이나 경제관료, 학계 출신이란 통상적인 바운더리를 벗어나 검찰 출신이 후보로 부상한 것 자체가 금융위에는 불편할 수 있다"며 "금융감독 체계 개편과 함께 두 기관의 관계가 재편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