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나빠지는 보험사 건전성 지표, 딜레마 빠진 금융당국

  • 2022.05.19(목) 07:33

보험사, 올 1분기 RBC 무더기 악화…급격한 금리상승 탓
DGB생명, 흥국화재, NH농협생명 등 권고수준(150%) 하회
"시장 환경에 따라 제도 변경 검토…되레 혼란만" 지적도

금융당국이 보험사 재무건전성 제도에 대한 개정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시중금리 상승으로 보험사들의 건전성 지표가 속절없이 하락하자 당국이 자본확중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보험사 숨통이 트여 다행이라는 분석과 함께, 불확실한 시장 환경에 따라 '고무줄' 식 제도 변경을 추진하는 건 되레 정책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이 동시에 나온다.

1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리 급등으로 보험사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RBC(지급여력) 비율이 크게 하락하고 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보험사, 재무건전성 '비상'

우선 DGB생명보험의 올 1분기말 RBC는 84.5%로 보험업계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지난해 말(223.6%) 대비 무려 139.1%포인트 급락했다. 작년말 기준 88.3%로 법적 기준인 100%를 하회한 MG손해보험보다 낮은 수치다.

MG손보는 금융당국에 의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됐다가 최근 법원이 MG손보 대주주인 JC파트너스의 손을 들어주며 부실금융기관 지정 효력이 일단 정지됐다. 다만 DGB생명은 지난 3월말 유상증자를 결의해 지난달 22일 300억원의 자본을 확충, RBC를 108.5%까지 끌어올렸다.

금융당국 권고치인 150%를 밑돌아 건전성 관리에 빨간불이 켜진 보험사도 있다. 흥국화재(146.1%), DB생명(139.1%), NH농협생명(131.5%), 한화손해보험(122.8%) 등이다. 건전성 위기는 중소형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보업계 2위사 한화생명은 161%, 손보업계 4위사인 KB손해보험은 162.3%로 당국 권고치를 겨우 넘겼다.

"금리 더 오르는데"…보험사 '한숨'

RBC는 보험사의 각종 리스크에 따른 손실금액을 보전할 수 있는 자본량인 '가용자본'을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손실금액인 '요구자본'으로 나눠 산출한다. 모든 가입자가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을 때 줄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낸다.

예컨대 RBC가 200%면 보험사가 보유한 모든 보험계약 사고가 한꺼번에 터져 일시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황이 두 번 연속 닥쳐도 파산하지 않을 만큼의 자본을 쌓고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이 수치가 100%를 밑돈다는 건 보험금을 전부 내주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보험업법상 RBC는 100% 이상을 유지해야 하며, 금융당국은 선제적 관리 차원에서 150% 이상을 권고하고 있다.

RBC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건 빠른 금리상승으로 보험사가 보유한 채권 가격이 하락해 가용자본에 해당하는 매도가능자산 평가이익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2020년말 기준 생명보험사는 전체 자산의 47.9%를, 손보사는 전체 자산의 36.1%를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각 보험사가 보유한 채권계정 분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업계는 장기 국고채 금리가 0.1%포인트 오르면 RBC가 1~5%포인트 하락한다고 본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2020년 말 1.71%에서 지난해 말 2.25%로 상승한 후 꾸준한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17일엔 3.29%로 전년 말 대비 1.04%포인트나 뛰었다.

보험사 재무건전성 손 본다는데…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금리 급등세가 올해 2분기 들어서도 가파르게 이어지면서 채권 자산의 가치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으로 보험사들의 RBC 하락세가 더 심각해질 것이란 얘기다.

보험사들은 후순위채 발행,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 자본확충을 위한 자구책 마련에 나서는 한편, 금융당국에 재무건전성 평가 지표를 유예해 주거나 아예 새 재무건전성 제도(K-ICS·이하 킥스)를 조기 도입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금리 영향을 받는 RBC는 6개월여 뒤인 내년엔 킥스로 탈바꿈 한다. 킥스는 자산과 부채를 모두 시가로 평가해 금리 영향을 덜 받고, 오히려 부채가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이에 따라 건전성 지표도 회복될 것이라는 게 보험사들의 전망이다. 

금감원은 채권평가손실 일부를 상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던 책임준비금적정성평가(LAT) 잉여금 일부를 가용자본으로 환입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즉 채권평가손 일부를 회계상 반영하지 않도록 바꾸거나 새로운 자본항목을 추가하는 방식 등이다.

문제는 일시적이고 불확실한 시장 상황에 따라 재무건전성 제도가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고무줄식 제도 변경은 결국 금융당국 정책 전체의 신뢰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업계 요청으로 재무건전성 규제를 완화해 준다면 단기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중장기 전략을 제대로 세우는 데는 장애물이 된다"고 꼬집었다. 다른 관계자는 "법과 제도의 적용은 일관성이 담보돼야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덧붙였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