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분기 가계가 금융회사에서 빌린 부채가 전분기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13년 1분기 이후 무려 9년만이다. 금융당국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도입과 통화당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어우러진 결과라는 평가다.
가계부채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8월 있을 임대차보호법 시행 2년 후폭풍 등으로 인해 언제든 다시 늘어날 가능성도 여전히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24일 한국은행은 지난 1분기 국내 가계신용이 1859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2013년 1분기 이후 꾸준히 늘어나다가 올해 1분기에는 전분기 대비 6000억원 줄어들었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금융회사로부터 빌린 대출금액과 카드 사용액 등을 포함한 가계신용 잔액을 합한 것으로 우리나라 가계가 얼마나 빚을 졌는지 알 수 있는 통계다.
9년 만에 줄어든 가계부채
가계신용이 전분기 대비 줄어든 것은 지난 2013년 1분기 이후 무려 9년만이다. 금융권에서는 가계신용 감소는 금융당국과 통화당국의 '대출 옥죄기' 정책공조가 이어졌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1월부터 은행에서 2억원 이상 대출을 받을 경우 소득과 원리금상환액을 근거로 한도를 제한하는 DSR규제를 도입했다. 대출 한도를 제한한 만큼 자연스럽게 차주당 빌릴 수 있는 대출 규모가 줄어들었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부터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 지난달까지 총 4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자연스럽게 대출차주들의 이자 부담도 늘어나며 대출을 빌리기가 어려워졌다.
실제 가계신용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계대출 잔액은 1752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2년 4분기 통계편제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다.
송재창 한국은행 금융통계팀장은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주택매매거래가 둔화되면서 증가폭이 전분기에 비해 축소됐으며 기타대출의 경우 정부 및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관리강화, 대출금리 상승 등으로 전분기에 비해 감소폭이 크게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카드 사용액, 카드 대금 등이 포함된 기타신용의 경우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인해 증가세가 꺾였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판매신용 증가액은 8000억원으로 전분기 5조2000억원보다 80%나 줄었다.
송 팀장은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인해 카드사용액이 줄어들면서 판매신용증가세가 꺾인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가계부채, '부동산' 때문에 다시 늘어날 것
9년 만에 가계부채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지만 금융권에서는 2분기 들어서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특히 올해 3분기가 고비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단 2분기 들어 은행들이 우대금리를 부활시키고 대출 한도를 늘리는 등 적극적인 대출영업을 펼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실제 지난 가계대출중 취급비중이 가장 많은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 등 5대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의 하락세가 진정되는 모습이다. 지난달말 기준 이들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2조3917억원으로 전월보다 8020억원 줄어들었지만, 감소 폭은 1월 1조3634억원, 2월 1조7522억원, 3월 2조7436억원에 비해 크게 꺾인 모습이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2분기 들어 1분기에 부진했던 대출영업 활성화를 위해 대출 한도를 늘리고 지난해 삭제했던 우대금리를 부활시켜 금리 문턱을 낮추는 등 대출 영업을 활성화 했다"며 "여기에 더해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중금리 대출을 적극 취급하고 있어 2분기 들어서는 가계대출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올해 3분기 가계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정부가 가계대출의 상승세를 이끄는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는데다가 오는 8월이면 임대차3법 도입 이후 2년이 지나면서 전세계약 갱신 시점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당장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청년들과의 간담회에서 "생애최초 주택구매자의 경우 LTV(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를 80%까지 확대하고 DSR산정시 미래소득 반영 등 대출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했다. 그간 은행권 대출 증가의 족쇄였던 핵심 대출 규제 두가지 완화를 공언한 만큼 대출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다가 오는 8월이면 임대차 3법 도입 이후 2년이 지난다는 점도 관건이다. 2년전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한 세입자의 경우 당시에는 전세가격을 5%만 올려줬으면 됐지만 새로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경우 현재 시세만큼 전셋값을 올려줘야 할 가능성이 커서다. 2년전 임대차 3법 도입 이후 전셋값 평균이 20%가까이 높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주당 필요한 전세대출 한도가 늘어나 전체적인 가계대출 상승세를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 규제완화에 더해 전세대출시 필요자금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커 주택담보대출 위주로 가계대출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여기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이어 올리겠다고 하면서 월 이자부담이 늘어나겠으나, 은행들이 만기를 더 늘린 주택담보대출을 내놓아 일종의 완충장치를 만들어놓은 점도 대출의 접근성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근 주요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의 만기를 최장 40년까지 늘린 상품을 연이어 내놓은 바 있다. 만기가 늘어날 경우 총 상환 원리금은 늘어나지만 매월 상환하는 원리금은 낮아지는 효과가 있어 금리상승기에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