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금융 플랫폼들의 금융시장 장악력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현재 금융 플랫폼들은 압도적인 이용자 수를 바탕으로 금융시장의 새로운 판매채널로 등극했는데, 금융당국이 이들에게 대출상품에 이어 예금과 적금 등 수신상품까지 중개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다.
이에 은행권들은 고민에 빠졌다. 금융 플랫폼을 사용하는 사용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다가 취급하는 금융상품이 늘어나면 어쩔 수 없이 판매채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깊어지면서다.
나아가 은행권에서는 금융당국이 플랫폼 기업 '배불리기'에 나선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이러한 행태가 지속될 경우 오히려 플랫폼 사용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출이어 예금·적금까지 플랫폼에서 가입하나
금융위원회는 지난 7일 금리정보 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앞으로는 플랫폼업체들이 여러 금융회사의 예금상품을 비교하고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금융소비자가 카카오페이, 토스, 네이버 등 금융 플랫폼 기업에서 다양한 금융회사의 예금과 적금 상품들을 한 번에 비교하고 가장 높은 금리의 상품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이형주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대출상품의 경우 온라인 판매중개업에 대한 별도 등록요건인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마련돼 서비스가 활성화된 반면 예금상품은 은행법 등 관련 법령에 중개업 등록 및 영위 근거가 없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기 곤란했다"며 "이에 대해 규제를 면책해주는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이에 대한 수요조사도 마친 상태다. 현재 9개 플랫폼업체가 온라인 예금상품 중개업 영위를 희망하고 있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대출상품을 금융 플랫폼 회사에서 판매할 수 있는 서비스는 관련 법령이 재정된 이후 빠르게 성장중이다. 당장 금융 플랫폼 회사들은 그들의 핵심 서비스로 이러한 금융상품 중개가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할 정도다. 실제 지난해 기준 총 42만5000건, 6조원 가량이 금융플랫폼 회사를 통해 대출이 집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 플랫폼 회사들은 일반 가입자 수는 물론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활성 이용자가 일반 금융회사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수준"이라며 "접근성 자체가 높은 가운데 다양한 회사의 금융상품을 한 번에 비교할 수 있다는 편의성을 갖춘 데다가 플랫폼 기업이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펼치는 등 다양한 요인이 합쳐진 결과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 "플랫폼 배만 불릴 것"
은행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플랫폼 기업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나아가서는 소비자의 불편이 가중되거나 일부 비용이 전가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금융 플랫폼 회사들은 금융상품 중개 서비스를 펼치면서 실제 플랫폼을 통해 금융상품 가입이 이뤄지면 금융회사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는다. 대출을 중개할 경우 중개된 대출 금액의 약 2%가량을 수수료로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신상품이 중개될 경우에도 금융회사는 고객이 정기적으로 납입하는 금액이나 만기 혹은 계약 해지 시점에 예치된 금액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지불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부작용은 금융회사가 이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플랫폼에서 예금과 적금의 금리를 바탕으로 상품 비교가 이뤄짐에 따라 예금과 적금상품 등의 금리를 낮추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면제해왔던 수수료를 부활시키는 등 다른 부분에서 고객에게 비용을 전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소비자의 금융생활을 좀 더 편리하게 영위하겠다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업과 기업 간의 비즈니스 차원에서 접근하면 한쪽은 쉽게 돈을 벌고 한쪽은 비용을 계속 지출해야 하는 구조가 고착화 될 것"이라며 "결국 계속 비용이 지출되는 쪽에서는 이 비용 보전을 위한 방안을 찾게 될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금융소비자의 혜택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라고 짚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정부 한 쪽에서는 플랫폼 기업의 시장 독점력에 대해 우려를 하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플랫폼 기업들의 시장 장악력을 더욱 키워주는 것 아니냐"며 "정책의 방향이 엇갈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현재 유통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플랫폼 기업의 시장 독점에 대한 부작용이 금융권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배달앱의 시장 장악력이 커지면서 요식업에 배달료라는 요금이 새로 책정됨은 물론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 배달료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라며 "몇몇 플랫폼 기업이 이를 장악하면서 배달료라는 새로운 형태의 요금을 탄생시켰고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형주 금융위 금산국장은 "새로운 유통창구가 생기는 만큼 유통비용 상승의 우려도 있지만 경쟁 촉진으로 보는 것이 맞다"라며 "다만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근거가 없다고 보기도 힘들기 때문에 혁신금융을 지정할 때에도 다양한 부가조건을 걸고 긴밀히 모니터링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플랫폼 기업이 예금과 적금을 중개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소비자에게 유리한 조건 우선 제시 △관련 없는 동종상품 광고 금지 △소비자 선택권 보장을 위한 유사상품 및 시장평균 금리정보 제공 △신규모집액 중 플랫폼 판매 비중 한도 제한 △적기시정조치 대상 금융회사 상품 중개 금지 등의 부가조건 등을 내건다는 계획이다.
플랫폼 사용자 '바보' 만들수도
은행권 일각에서는 금융회사에게만 비용이 전가되는 현재와 같은 사업구조가 지속될 경우 플랫폼 사용자들이 오히려 금융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회사가 금융당국 등에 면피용으로 혜택이 적은 일부 상품만 금융플랫폼에 중개하고 금융 혜택이 높은 금융상품은 자신들이 직접 운영하는 은행창구, 모바일뱅킹 등에서 판매하는 행태가 가속화 될 것이란 것이다.
실제 현재 금융 플랫폼 회사에서 중개하고 있는 대출상품들 중에서 가장 금리경쟁력이 높다고 평가받는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의 상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은행들이 플랫폼 기업에게 사용자를 뺏기지 않기 위한 전략과 함께 이 과정에서 지출되는 비용을 염두하고 있기 때문이란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은행 관계자는 "주요 상품의 경우 금융 플랫폼 기업의 상품 라인업에 포함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이 상품들은 플랫폼 기업과 제휴한 상품보다 금리 등에서 혜택이 더 좋은 경우가 많아 플랫폼 기업에서 금융상품을 찾는 고객보다 발품을 파는 고객들이 더 유리하게 금융상품을 이용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이키가 지난 2019년 세계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인 아마존에서 자사의 상품판매를 중지한 것이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미래가 될 수 있다"며 "나이키도 결국 플랫폼 기업에 제공해야 하는 수수료의 문제로 아마존에서 자진 철수했는데 은행 입장에서도 이같은 움직임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