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한 이후 이에 대한 사후서비스, 이른바 A/S 서비스를 받기가 유독 어려운 업권이 있다. 바로 금융권이다.
내 자산과 직결되는 서비스를 이용하다 불편사항이 발생하거나 추가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 수밖에 없다. 직접 영업점을 찾아가서 해결하기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은 사실상 휴가를 내지 않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그렇다고 대표전화로 전화를 걸어도 문제 해결까지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각종 안내가 끝날 때까지 숫자패드를 수차례 눌러야 한다. 이를 거쳐 상담사와 직접 연결하려면 적게는 5분 길게는 수십분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
이런 현실에 대해 KB금융지주가 결단을 내렸다. KB국민은행, KB증권, KB손해보험, KB국민카드, KB생명보험, 푸르덴셜생명보험, KB캐피탈, KB저축은행의 고객센터를 클라우드, AI 등 혁신기술 기반 미래형 조직으로 대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키로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KB미래컨텍센터'다.
'콜센터? 그게 얼마나 대단해' 라는 착각
지난 3월 KB금융지주는 'KB 미래컨택센터'를 구축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자료의 핵심은 앞서 말한 것처럼 8개 계열사의 고객센터 인프라를 표준화하고 KB금융그룹차원의 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상장기업중 고객센터가 없는 기업이 있을까? 심지어 조그마한 온라인 쇼핑몰도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수도 있는 지점이다. KB미래센터 구축을 위한 틀이 어느 정도 잡힌 9월 서울 합정동 본부를 찾은 이유다.
전성표 KB금융지주 미래컨택센터 대표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이는 전 세계 금융업권에서도 찾기 힘든 대형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투입되는 비용뿐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구축할 수 있는 인프라는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이라는 설명이었다.
전 대표는 "8개 계열사가 고객 상담을 위한 전산시설을 통합해 하나의 헤드쿼터에서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엄청난 비용을 수반하는 대형 프로젝트"라며 "모든 계열사가 고객상담을 위해 사용하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하나로 통합한 것이 외적으로 보여지는 첫번째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는 구체적인 프로젝트 비용규모에 대해서는 함구했지만, 하드웨어 통합을 위해서만 수백대의 서버를 구매했다고 귀띔했다. 여기에 서버 뿐만 아니라 시스템적 통합을 위해 소프트웨어 역시 통일하면서 적지않은 투자가 이뤄졌다. 일반적인 고객센터 구축과는 출발부터가 다른 프로젝트로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다. KB의 디지털 기술의 정수 모았다
'KB 미래컨택센터'는 KB금융지주가 가지고 있는 디지털 경쟁력의 정수를 모은 프로젝트라는 것이 전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KB금융 계열사 고객은 365일, 24시간 언제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구조는 이렇다. 미래컨택센터에 합류한 8개 계열사 대표번호로 고객이 전화를 걸면 우선 '콜봇'이 고객을 응대한다. 그리고 이 콜봇은 고객이 어느 회사의 어느 상품에 대한 안내를 필요로 하는지 파악후 고민을 직접 해결해주거나 해당 계열사의 상담사와 '원스톱'으로 연결해준다. KB는 이를 콜봇 네비게이터라고 명명했다.
핵심은 이 '콜봇'이다. '콜봇'은 인공지능(AI)이 사람과 직접대화를 통해 사용자에게 원하는 답을 내주는 인공지능 상담사라고 볼 수 있다.
KB금융지주는 그동안 인공지능 기술에 진심이었다. 챗봇으로 시작해 인간의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기술,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기술 등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이를 활용한 AI뱅커를 국내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다. ▷관련기사 : [은행과 AI]KB국민은행이 보여준 AI 활용의 정석
AI뱅커 출시 당시 스마트 키오스크 등에 이를 적용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이는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 대신 AI뱅커의 기능을 고도화시켜 목소리만 뽑아낸 것이 바로 이 콜봇이다. AI뱅커 상용화의 첫발인 셈이다.
금융권에는 이미 챗봇 등 AI 기술이 도입돼 있지만 완성도 측면에서 대면 상담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KB의 콜봇은 다르다는게 전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현재 콜봇의 모태인 챗봇이 고객이 원하는 답을 얻고 상담을 종료했다는 완결률은 98%에 달한다"라며 "콜봇역시 제 역할을 해낼 것 이라고 본다"라고 전했다.
전 대표는 "현재 KB의 콜봇은 머신러닝과 딥러닝 등을 통해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며 "모든 계열사가 동일한 기반의 AI기술을 바탕으로 콜봇, 챗봇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고 밝혔다.
특히 AI가 고객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콜봇 스스로 고객과 상담을 시작하면서 고객의 의도를 판단하기 위해 연산하는 시간은 인간이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는 설명이다. 금융소비자가 그간 ARS를 통해 수십분 기다려야 상담원과 연결할 수 있었던 부분을 디지털 경쟁력으로 해결한 셈이다.
KB금융지주 '원 펌'의 핵심
최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금융지주 계열사간 정보공유에 대한 벽을 낮춰주겠다는 규제완화를 내놓자 금융권과 언론은 일제히 '금융 수퍼앱'에 대해 집중했다. ▷관련기사 : [금융 플랫폼 전쟁]금융사, '슈퍼앱'으로 빅테크 잡을까
금융위가 그린 그림은 고객 동의 하에 금융지주 계열사간 고객 정보공유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규제가 완화될 경우 하나의 금융앱에서 은행, 보험, 증권, 캐피탈 등의 금융서비스를 일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고객센터와 같은 사후서비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미 계열사 고객센터를 통합중인 KB금융지주의 사후 서비스 경쟁력이 월등하게 높아질 수 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KB국민은행 고객이 자산관리에 대해 상담사와 통화를 할 경우 이 고객이 보유한 KB증권, KB캐피탈 등의 금융정보를 활용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출 상담을 위해 KB국민은행 상담사와 통화를 할 경우 고객의 신용점수가 낮으면 KB캐피탈, KB저축은행의 상품을 소개해 줄 수도 있다.
미래컨택센터가 KB금융지주 계열사를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가 된다는 얘기다. 나아가 KB국민은행, KB국민카드 등 계열사별로 산재돼 있는 '대표번호'를 'KB금융그룹 대표번호' 하나로 묶는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전성표 대표는 "이 프로젝트는 정부 규제 완화와 연관이 깊다"라며 "금융그룹 대표 앱을 통해 계열사간 정보 공유나 사후 서비스가 이뤄진다면 미래컨택센터는 순식간에 진화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수차례 '넘버1 금융플랫폼'을 강조했다. 이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미래컨택센터는 사후서비스에서 계열사를 통합하는 기반이 된다. ▷관련기사 : KB 윤종규 '리뉴(RENEW)'에 담은 다섯 전략
전 대표는 "미래컨택센터는 KB금융지주가 추구하는 계열사간 역량을 한 데 모으는 '원 펌'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핵심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전세계 주요 컨설팅 업체가 KB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을 정도로 의미가 크다"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