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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도 '괜찮다'더니…흥국생명 콜옵션 번복 이유

  • 2022.11.08(화) 17:41

엿새만에 '행사'로 뒤집어…4000억원 RP 발행
1000억원은 보험사 조달+태광그룹 지원으로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조기상환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흥국생명이 엿새 만에 "금융시장 혼란에 사과드린다"며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꿨다. 

콜옵션 연기 쇼크가 국내 회사가 발행하는 외화표시 채권 가격 하락으로 확산하자 '자의반 타의반'으로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는 말이 나온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론도 거세지고 있다. 사실상 당국의 묵인 아래 콜옵션 연기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실리 택했지만 시장 급랭에 '화들짝'

흥국생명은 지난 7일 싱가포르 거래소를 통해 이달 9일 만기를 맞는 5억달러(당시 5570억원 수준)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겠다고 공시했다. 지난 1일 콜옵션 포기를 선언한 지 6일 만에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콜옵션 연기에 따른 금융시장 혼란을 잠재우기 위함이라는 게 회사 측 입장이다.

콜옵션 포기는 흥국생명 입장에서 실리를 택한 것이라는 관측이 대다수였다. 페널티(불이익)로 기존 4.475%의 금리가 연 6.7% 수준으로 높아진다고 해도 12%가 넘는 새 신종자본증권 발행 비용보다 유리해서다. 

금융당국과 기획재정부까지 나서 "조기상환권 행사와 관련한 일정과 계획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고, 흥국생명 자체의 채무불이행은 문제되지 않는 상황"이라 알리며 시장 진화에 나섰다. ▷관련기사 : [인사이드 스토리]'콜옵션 포기' 흥국생명, 위험하다고요?(11월 4일) 

하지만 시장 반응은 그렇지 못했다. 금융시장의 관행을 깨뜨린 신뢰 훼손 문제가 외화 채권시장에서 한국물에 대한 불신을 촉발했다. 콜옵션 미행사 발표 이후 흥국생명의 채권 거래 가격은 30%가량 급락했다. 동양생명 등 보험사는 물론 우리은행, 신한금융지주 등의 다른 업권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가격까지 떨어지면서 상황이 악화했다.

여기에 한국물 거래 자체가 말라붙으면서 위기감이 더 커졌다. 한국 채권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자 우리 기업들의 해외 자금 조달이 크게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번졌다. 

그러자 금융당국이 입장을 선회해 콜옵션 행사를 독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년 5월로 콜옵션 행사를 미뤘던 DB생명도 3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를 일정대로 오는 13일 진행할 예정이다. 

흥국생명은 해외 신종자본증권 5억달러 조기상환을 위해 주요 시중은행을 상대로 4000억원을 웃도는 환매조건부채권(RP)을 발행할 계획이다. 단기물인 RP는 금융기관이 다시 매입하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나머지 1000억원은 보험사들의 대출로 조달한다. 흥국생명이 속한 태광그룹도 계열사를 동원해 흥국생명 자본확충을 지원하기로 했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구체적인 비율이나 숫자는 밝힐 수 없지만 그룹 차원에서도 자본확충에 참여해 재무건전성 지표인 RBC(지급여력)비율은 올해 기준으로 권고치 수준(150%)은 유지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 6월말 기준 흥국생명의 RBC비율은 157.8%였다. 다만 최근 금리인상 기조를 감안하면 이미 150% 밑으로 내려갔을 가능성이 커 추가 자본 확충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문제되지 않는다"던 금감원, '이중플레이'?

시장은 흥국생명의 콜옵션 행사 결정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콜옵션 행사를 선언하자 흥국생명의 외화채권가격이 기준가(100달러)를 회복했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 역시 "불안했던 시장 상황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다른 보험사들의 콜옵션 미행사 가능성도 없어진 상황"이라고 했다.

반면 정상궤도에 올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준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흥국생명이 돌아오는 콜옵션 행사일에 권리 행사 의사를 밝힌 상황이지만, 결과적으로 해외 자본 시장의 접근성과 신인도 저하는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금리 급등 속 레고랜드 사태로 이미 채권시장 경색이 진행된 탓도 있다.

가이드 라인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시장 상황을 짚지 못하고 아마추어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며 "사실상 정부의 개입으로 사기업의 콜옵션 여부가 좌우됐다는 점에서 정부 리스크가 확인됐고, 이는 한국물 가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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