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가 약 23조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자본으로 인정받는 영구채의 일종)을 전액 상각하면서 국내 보험업계 자금경색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올 2분기 만기가 돌아오는 보험사의 자본성증권 콜옵션(조기상환권) 규모가 약 2조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CS 사태에 따른 투자심리 악화로 시장 여건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지만 보험사들은 지난해 '흥국생명 사태'를 교훈 삼아 예정대로 콜옵션을 행사한다는 입장이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같은 스위스 투자은행인 CS와 UBS의 합병 후폭풍이 국내외 채권발행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UBS는 CS를 인수하면서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AT1)은 상환하지 않기로 했다. 원칙적으로 주식보다 변제 우선순위에 있는 채권의 가치가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자 채권시장의 추가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채권투자 심리 냉각은 신종자본증권 등을 통해 주로 자본확충을 해왔던 국내 보험사들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다.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하이브리드 채권인 신종자본증권은 영구채 성격이 있어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런 장점에 보험업계는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 등의 개선을 위해 신종자본증권을 경쟁적으로 찍어냈다.
보험사들이 발행한 자본성증권은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대부분 완판됐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금리 변동성이 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투자자들이 신용등급이 더 높고 안정적인 우량 투자처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이에 보험사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주문이 거의 들어오지 않거나 미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여기에 흥국생명 콜옵션 미이행 사태까지 터지면서 채권시장이 한때 마비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관련기사 : [보푸라기]오락가락 흥국생명…보험업계 신용도 흔들(2022년 11월 12일) 여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달 ABL생명이 7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을 시도했지만 전량 미매각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CS 사태 악재가 겹치며 보험업계 자금경색 우려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일부에선 올 2분기가 고비라는 관측도 나온다.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조기 상환 추정액이 1조9878억원에 달해 올해 전체 추정액(4조2002억원)의 절반가량이 쏠려있어서다. 최대 관심사는 4월23일 예정된 한화생명의 10억달러(약 1조2899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 상환이다. 올해 예정된 콜옵션 만기금액중 가장 크다.
KDB생명이 2018년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 예정일인 5월21일도 눈에 띈다. 일부에서는 KDB생명을 두고 제2의 흥국생명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KDB생명의 매각을 진행중이라 차환 발행에 실패해도 별도의 유동성 지원이 나오기 힘들다는 관측이다.
다만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흥국생명 콜옵션 번복 관련 책임론으로 몸살을 앓은 만큼 비슷한 일이 반복될 공산은 낮다"고 말했다. KDB생명 역시 예정대로 5월중 콜옵션을 이행할 것이며 구체중인 상환 계획을 대주주와 협의중이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