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공공의 적'이 됐어요. 대통령이 탄핵되고 조기 대선에서 정권이 바뀐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요?"(시중은행 한 관계자)
5년의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금융정책에서도 혹독한 평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윤 전 대통령은 '자유 시장경제'를 강조했지만, 재임 기간 내내 일어난 과도한 민간 개입에 신 관치 논란이 일었다. 이자장사 비판이 극에 달하면서 은행권은 울며 겨자 먹기로 상생금융 보따리를 풀었고,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대출규제는 되레 시장혼란만 불러왔다.
조기 대선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는 게 금융권 중론이다. 윤 정부를 견제해야 할 더불어민주당에서 횡재세(초과이익 환수) 도입, 가산금리 기준 공시 등 오히려 한술 더 뜨는 양상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지난 2022년 취임 초기부터 은행들을 압박한 윤 대통령 파면 이후 상황에 대해 걱정과 기대의 감정이 교차한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취임 초기부터 은행들에 강한 규제를 가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금융소비자 보호 공약으로 내 걸었던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 공시를 실행시켰다. 예대금리차가 클수록 산술적으로 이자 장사를 통한 마진(이익)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라 이를 공표하게 된 은행권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2023년 윤 전 대통령이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소상공인 발언을 소개한 뒤 은행권 '이자 장사'가 본격적인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당국은 금융권 사회적 책임을 재차 압박했다. 결국 은행권은 지난해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대출이자 환급 등 2조1000억원에 이어 올해 7000억원(3년간 총 2조1000억원)에 달하는 상생금융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 재정이 투입돼야 할 서민 지원에 민간 기업을 압박·동원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핵심은 '횡재세'
탄핵 심판이 인용되면서 치러질 조기 대선에선 정권교체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상수로 꼽힌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은행들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정권교체로 숨통이 트일 것이란 기대보단 여전히 주된 타깃이 될 거란 불안감이 지배적이다. 민주당도 은행권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상생금융은 윤석열 정부 압박으로 시작된 정책이지만 금융권에선 이런 사회공헌 이벤트가 매년 반복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보여주기식 민생 챙기기에 '주인 없는 회사'의 '주인 없는 돈' 만큼 동원하기 쉬운 게 없기 때문이다.

실제 이재명 대표는 올 1월 시중은행 은행장들을 불러 모아 가계·소상공인의 원리금 상환 부담 완화, 수출입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확대 등에 대해 논의했다. 민주당이 은행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횡재세 카드를 언제든 다시 꺼낼 수 있는 데다, 은행의 영업 비밀인 대출 목표 이익률 등을 공개하는 가산금리 기준 공개 법안 도입을 추진한 바 있어 금융권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지금은 논의가 잠잠해졌지만, 비정기적인 상생금융과 달리 조건만 맞으면 정기적으로 은행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횡재세 도입 위기감이 크다"면서 "정권교체가 이뤄져도 정부·금융당국 압박이 완화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윤창출이 횡재세 도입 논의로 이어지면 어떤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겠나"면서 "횡재세가 현실화하면 은행 뿐 아니라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 저하를 가져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책 현안들 어쩌나

다만 민주당은 횡재세를 재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대신 은행 법정출연금 강화를 검토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법정출연금은 은행이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지역신용보증재단,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을 통해 진행하는 보증부대출 실행 시 대출금에 비례해 각 기금에 출연하는 금액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횡재세는 금리 상승기 등 외부 사정에 의해 발생한 이익을 은행이 가져가는 게 부당하다는 측면에서 나온 방안"이라며 "법정출연금 강화가 보다 현실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라고 했다.
조기대선까지 남은 2개월간 정책 불확실성은 커질 전망이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제 4인터넷 전문은행 예비인가 신청을 받았다. 금융위는 애초 6월께 예비인가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오는 6월초 조기대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계획대로 발표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헌재의 윤 대통령 파면 결정(4일) 직후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당초 계획된 정책 과제들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책 동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 승인 또한 순연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그동안 탄핵 사태에 따른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 역시 동력 약화 우려가 있었으나 이는 결국엔 다시 탄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김지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올해 들어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지속 가능성 우려감이 불거지면서 은행주 주가가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코리아디스카운트 원인으로 지적 받았던 미흡한 주주환원에 대한 해결 트리거란 점에서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