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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 10월 자금시장…녹여야 하는 은행의 고민

  • 2022.11.14(월) 06:11

레고랜드 사태 직격탄 맞은 10월…숫자로 보니
정부 비상조치로 발등의 불은 껐지만 '불안 여전'
시장안정에 90조 푸는 은행…리스크도 그만큼

레고랜드 사태로 지난달 국내 자금시장 경색이 심화한 사실이 숫자로 확인됐다. 정부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연일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정상화 속도는 더디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돈의 흐름 중심에 있는 은행이 나서기로 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너무 확대된 탓에 돈을 시장에 풀어도 이것이 정상적으로 회수될지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레고랜드' 10월 빙하기를 이끌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선언한 9월말 이후 국내 자금시장은 불확실성이 극대화했고, 기업들의 돈줄은 말랐다. 

올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 미국의 본격적인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전세계 경제가 서서히 얼어붙어왔지만, 지난달 우리나라에는 더 급격한 '빙하기'가 왔던 것이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10월 금융시장 동향을 살펴보면 회사채, CP(기업어음)등 기업들의 주요 자금조달 수단의 금리는 일제히 상승했다.

구체적으로 신용등급 AA- 회사채 3년물 금리는 5.61%를 기록하며 전월 5.28%보다 0.33%포인트 올랐다. 신용등급 A- 회사채 3년물의 경우 전월 6.18%에서 6.48%로 0.3%포인트 상승했다. 신용등급 BBB+ 회사채 3년물 금리는 9.04%를 기록하며 전월 8.72%보다 0.3%포인트 올랐다. 

기업어음(CP) 금리 상승폭이 가장 컸다. 신용등급 A1기준 CP 91일물 금리는 9월 3.30%에서 10월에는 4.68%로 1.38%포인트나 급등했다. 

통상 채권의 금리가 오르면 그만큼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이 채권을 소화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금리가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채권이 소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 추이에서도 나타난다. 지난달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물량은 3조2000억원 순상환됐다. 회사채의 금리가 크게 올랐음에도 투자자를 쉽게 찾지 못하자 발행량이 순증하지 못하고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얘기다.

회사채를 통해 좀처럼 투자자를 찾지 못한 기업들은 금리가 높고 만기가 짧아(91일) 일찍 갚아야 하는 CP 발행으로 선회하고, 은행을 직접찾아 대출을 요청했다. 지난달 CP와 단기사채 순발행액은 3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은행 기업대출의 경우 13조7000억원 늘었는데 이례적으로 대기업이 빌린 금액만 9조3000억원에 달했다.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았던 대기업들도 회사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황영웅 한국은행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차장은 "기업의 운전자금 수요가 지속됐으나 회사채 시장 위축의 영향으로 대기업의 은행 대출 활용이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11월 들어선 급한불 꺼졌나

일단 금융당국은 물론 한국은행,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가 급한불을 잡기 위해 대책을 수립한 이후 빠르게 시행하는 등 빠른 대처에 나섰다. 대책 자체를 수립하는 것 자체가 늦었다는 지적이 있기는 했지만 대책 시행은 최대한 빠르게 나선 것이다. ▷관련기사 : 정부 요청에 5대 금융지주 구원투수로…'95조 투입'(11월1일)

하지만 여전히 자금시장의 불확실성이 사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11일 기준 신용등급 AA- 회사채 3년물 금리는 5.36%로 지난달 말 5.61%와 비교해 0.25%포인트 하락했다. CP금리의 경우 5.15%로 오히려 지난달 말과 비교해 상승했다. CP금리가 5%를 넘어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은행 채권 트레이딩 부서 한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높은 국고채의 경우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한때 흔들렸던 신뢰도가 회복되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라며 "다만 CP는 은행이 적극적으로 매입에 나서기 시작할 예정임에도 워낙 CP를 통한 자금 조달이 많다 보니 금리가 안정되지 않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부와 민간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시장 안정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펼치기로 했으니 시장이 조만간 불확실성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미국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글로벌 경기침체 등 대외적인 고비가 많다"고 말했다. 

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을 비롯한 20개 시중 은행장과의 간담회를 열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김주현 위원장은 시중은행에 자금시장 안정화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 사진=유진아 기자 gnyu4

'유동성 쏠리는' 은행…그만큼 푼다는데

기업활동을 위해 자금시장에 흘러 들어가야 할 돈은 주요 시중은행에 몰린 것으로 확인됐다. 금리가 연이어 상승세를 보이면서 높아 은행에 예치만 해놔도 3%가 넘는 이자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지난 9월 기준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저축성수신금리는 3.38%였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 자금은 연이은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수입을 기대하고 은행으로 흘러갔다. 이에 10월 한 달 동안 은행의 정기예금으로 유입된 자금 규모만 56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2002년 1월 관련 통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것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정기예금은 수신금리 상승에 따라 가계와 기업의 자금 유입 등으로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라고 설명했다. 

대신 은행은 그만큼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풀어야 한다. 금융당국이 마련한 시장안정화 방안에 투입되는 총 95조원의 자금 중 90조원은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농협)의 계열 은행에서 돈을 대는 방식이다. 

은행 관계자는 "사실 은행이 주로 매입하는 채권은 국채, 금융채 등 안정적인 채권이지 일반적인 회사채나 CP등은 아니다"라며 "다만 현재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은행이 아니면 돈을 댈 곳이 없는것이 사실이다. 은행이 나서지 않으면 모두 세금이 들어가야 하는 처지인데 수십조원을 세금으로 충당할 수는 없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은행이 돈을 풀어 자금시장이 안정돼 만기까지 모두 회수가 된다면 문제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현재 미국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고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짙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리스크가 크다. 그러면 은행은 이를 모두 충당금으로 메워야 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단 금융위는 이런 은행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관련 규제를 유예해주기로 했다. LCR(유동성 커버리지 비율)규제 정상화를 연장하고 증권시장안정펀드 등에 출자하는 금액은 위험가중치를 250%에서 100%로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LCR규제 정상화가 연장되면 은행은 쌓아둬야 하는 유동성의 규모를 애써서 늘릴 필요가 없다. 위험가중치를 하향 조정하면 은행의 자본비율 등을 산정할 때 부담을 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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