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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아이디어 보호' 은행은 왜 안할까

  • 2023.05.04(목) 06:11

토스뱅크 '지금 이자받기', 타 은행도 선보여
은행권 '배타적 사용권' 활용 빈도 낮아

최근 은행권에 때아닌 '표절' 논란이 부는 모습입니다. 토스뱅크가 내놓은 '지금 이자받기'와 비슷한 서비스를 일부 은행들이 연이어 내놓으면서입니다. 

사실 은행권에서 한 은행의 상품에 흥행 조짐이 보이면 다른 은행도 비슷한 상품을 출시하는 것을 찾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매우 빈번하게 발생함은 물론 상품 개발 주체인 은행에서도 다른 은행이 따라해도 별 다른 '액션'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일종의 특허권인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담긴 독특한 상품을 일정 기간 독점해 판매하는 영업관행이 자리 잡은 보험업권과는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왜 은행은 자신들의 '아이디어' 지키기에 열심히 나서지 않는 걸까요?

/그래픽=비즈워치

흥행조짐 불면 너도나도 

지난해 3월 토스뱅크는 국내 금융권에서 매우 이례적인 도전에 나섰습니다. '토스뱅크통장' 고객을 대상으로 고객이 원할 때 즉시 이자를 지급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은 겁니다. 

예금과 적금 등 수신상품에 가입할때에는 계약 당시 이자를 받는 날짜를 지정해 받도록 하는게 통상적인데요, 토스뱅크는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이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상품은 '대흥행' 했습니다. 토스뱅크 측은 출시 1년 동안 총 289만명이 2670억원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토스뱅크의 이같은 서비스가 흥행하자 일부 은행들도 연이어 같은 서비스를 내놨습니다.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은 물론 수협은행까지 이자를 고객이 원하는 날짜에 지급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은 겁니다.

반대로 토스뱅크가 최근 내놓은 '모임통장'은 카카오뱅크가 일찌감치 내놓은 모임통장과 매우 유사합니다. 토스뱅크가 마냥 억울해 할 수는 없는 모습입니다.

은행권 밖에서 보기에는 이같은 은행들의 행태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종의 '베끼기'에 대한 사회의 잣대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 이러한 일은 매우 비일비재 합니다. 일례로 자신이 응원하는 프로야구 팀의 성적이 좋을 경우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금융상품이 대표적입니다. 

신한은행은 지난 2018년 KBO(한국야구위원회)의 메인 스폰서쉽을 획득 한 이후 올해까지 매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성적에 따라 금리를 제공하는 적금상품을 매년 출시하고 있습니다. 이 상품 출시 초기 흥행 조짐을 보이자 지방은행들은 거점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팀의 성적에 따라 금리를 제공하는 수신상품을 출시했습니다. 

왜 은행은 아이디어를 보호하지 않을까

은행상품에 좋은 아이디어를 담았고 흥행에 성공한다면 당연히 해당 서비스를 '독점'하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은행은 전혀 그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옆 동네인 보험업계와 비교되는 부분입니다.

보험업계는 금융권에서 사용되는 일종의 특허권인 '배타적 사용권'을 통해 상품의 아이디어를 보호하고 시장 선점에 나섭니다.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하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동안 해당 상품에 담긴 아이디어를 보호해 '단독'으로 상품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보험업계에서는 적게는 매년 10건, 많게는 30건 이상 배타적 사용권 신청이 꾸준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이러한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하려는 움직임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은행연합회 등에 따르면 은행권에 배타적 사용권이 도입된 2001년 12월 이래로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신청'된 건수만 30건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정받은 경우도 10건이 채 안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은행업계에서는 왜 좋은 아이디어를 금융상품에 담아놓고도 이를 보호하려 하지 않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시간'입니다.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배타적 사용권을 얻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너무나도 길고 배타적 사용권을 회득하고 이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아 굳이 배타적 사용권을 신청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겁니다. 

은행이 배타적 사용권을 얻기 위해서는 은행연합회의 신상품심의위원회로부터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심의 기간이 적지 않게 소요됩니다. 게다가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하고 나더라도 '독점'할 수 있는 권한은 3~6개월 수준입니다. 

은행입장에서는 심의에 힘을 쏟아 길게는 반년간 독점판매 하느니 상품출시를 서둘러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게다가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서는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는 점도 영향을 끼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 은행 서비스는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고 공석에서 말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공공성', '사회적 역할' 등 일종의 책임이 뒤따른다는 얘기입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 은행이 하나의 서비스를 독점 판매한다면 그 은행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겠죠. 은행 입장에서는 배타적 사용권은 '독이 든 성배'나 마찬가지인 겁니다. 

직원들 사기 저하 우려도

은행 상품의 베끼기가 관행처럼 굳어졌다고 하지만 은행내부에서는 볼멘소리도 나온다고 합니다.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몰두하더라도 다른 은행이 같은 서비스를 출시하고 나면 허탈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작 은행 차원에서는 이를 보호해 주지도 않고요.

은행 수신상품 개발 부서에서 일한 한 관계자는 "사실 은행 상품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담는 것이 쉽지 않다. 대부분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선에서 끝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간혹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도 있고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은행에서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은행 본부 차원에서도 이러한 부분은 알고 있지만 시간, 비용, 은행을 향한 공공재적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에는 배타적 사용권 획득에 나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 내부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좋은 서비스에는 모든 금융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은행들의 방침"이라며 "은행이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한다는 것이 최근 사회적 요구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건 분명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은행업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4대 시중은행에 몰리던 고객은 '디지털 바람'을 타고 인터넷전문은행, 지방은행 등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금융당국은 우리나라의 은행 서비스의 질을 끌어올리겠다고 매번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행의 '아이디어'를 보호해 경쟁을 촉진시켜 더 좋은 서비스가 나오는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요. 은행 서비스가 갖춰야 하는 공공재적 성격과 은행 간의 경쟁 촉진이라는 딜레마에서 고민해 봐야 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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