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각종 자연재해, 시청역 역주행 사고 등을 계기로 국민 안전망 구축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공적보험 보장 확대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나 학교가 드는 시민안전보험 등 단체보험에 한해 15세 미만 미성년자에게도 사망보험금을 주는 법안이 22대 국회에서 재추진돼 관심이 쏠린다.
3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학교, 청소년 단체에서 실시하는 야외학습 등 단체활동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민안전 대비를 위한 보험에 가입할 때 15세 미만 미성년자 사망보장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소관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상법 제732조는 '15세 미만자, 심신상실자 또는 심신박약자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은 무효로 하며 이는 절대적 강행규정으로 이와 다른 합의나 약관은 무효가 된다'고 규정했다. 15세 미만의 미성년자처럼 판단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 방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보험범죄에서 보호한다는 명목이다.
하지만 2년 전 서울 이태원 압사 사고와 태풍 힌남노로 숨진 미성년자가 이 조항을 이유로 지방자치단체가 자동 가입한 단체보험(시민안전보험)의 사망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시민안전보험은 각종 재난·사고로 인한 시민의 사망·후유장애·부상 등 피해 보상을 지원하기 위해 각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가입하는 보험이다.
이 보험을 통한 피해자 보상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된 가운데, 미성년자들을 보호하는 법이 되레 헌법상 평등권 등 보편적인 가치를 반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주요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일정한 연령 미만은 사망보험에 가입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입법례가 드물다는 것이다. 최근엔 시청역 역주행 차량 사고, 북한 오물풍선 등으로 국민 안전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칙적으로 미성년자 등의 사망보험 금지는 유지하되, 상대적으로 인위적 사고 노출 위험이 적은 단체보험에 한정해 예외를 인정하는 상법 개정안이 지난 21대 국회에서 4건 발의됐다. 손해보험협회도 해당 개정안의 통과를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관련기사 : 손보협회, '시민안전보험' 보장 늘리고 사각 없앤다(2023년 1월19일)
다만 보험업계는 미성년자 사망보장 허용에 대해선 여전히 신중한 검토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험사 한 관계자는 "현재도 영아 방치 살해 등 충격적인 사례가 많다"며 "단체든 개인이든 가입 경로를 떠나 도덕적 해이를 강하게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다루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양승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관련 보고서를 통해 "단체보험 중에서도 어떤 경우까지 예외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활동이 어려운 15세 미만자는 사망보험 가입 허용보다 보호 필요성이 더 크고, 도덕적 위험 노출 가능성이 낮더라도 악용 가능성이 있는 한 피해의 심도는 돌이킬 수 없는 생명 상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