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에게 누가 먼저냐고 묻는 것은 불필요한 사족이다. ‘고수(高手)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 달리 생겨난 게 아니다. 과정이야 어쨌든, 기업가의 궤적 빼닮은 이만한 ‘짝꿍’이 없다. 주방용품 ‘해피콜 신화’의 주인공 이현삼(57) 전 회장과 유통가의 ‘히트 제조기’ 이동열(51) 코리아테크 대표의 만남은 꽤 자연스러운 그림이다.
오너 이동열, ‘가히’ 성공 전 주식가치 ‘910억’
‘김고은 멀티밤’ 가히로 잘 알려진 뷰티·생활용품 유통업체 코리아테크는 2019년 5월 경기도 고양시 땅을 235억원에 매각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찍었다. 외부에서 총 254억원을 조달했다. 2021년 이후 화장품 업계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로 떠오른 ‘가히’(KAHI)'가 출시(2020년 4월)되기 수개월 전이다.
당시는 현금 유동성이 예년만 못했던 때다. ‘이영애 리파’ 등이 히트 치며 2018년까지 많이 벌었지만 토지 매입이다 뭐다 해서 빠져나간 돈도 적잖았다. 수치가 증거다. 2017년 말 222억원이던 현금성자산은 2018년 말 44억원으로 줄었다. 총차입금도 355억원이나 됐다.
공교롭게도 뒤이어, ‘[거버넌스워치] 코리아테크 ①편’에서 얘기한대로, 2019년 영업에 직격탄을 날린 ‘NO 재팬 운동’이 일어났다. 이런 이유로 당시 코리아테크의 대규모 자금조달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RCPS 발행과 맞물려 이 창업자도 지분을 내놓았다. 적잖았다. 당시 99.25% 중 7분의 1 가량인 13.30%다. 사실상 이 창업자 1인 주주에서 현재 지분이 67.31%로 축소된 이유다. 즉, 외부자금 유치를 위해 개인 지분 매각을 병행했다.
(참고로 코리아테크의 RCPS 발행주식은 1만8500주다. 주당가격은 137만5000원(액면가 5000원)이다. 당시 몸값(1350억원)으로 매겨보면 이 대표가 손에 쥔 액수가 180억원이다. 2014~2017년 총 81억원의 배당을 챙기고 난 뒤의 일이다. 아울러 ‘가히’ 돌풍이 반영되지 않은 3년 전 밸류로만 어림잡아도 이 창업자의 현 주식가치가 912억원이나 된다는 얘기도 된다. 반면 창업 이래 이 대표의 출자금은 4억원이다.)
위기의 시기 자금줄 ‘해피콜 신화’ 이현삼
어찌됐든, 코리아테크가 휘청거릴 당시 투자자로 나섰던 이가 이현삼 전 해피콜 회장이다. 우선주 전액(254억원)을 투자했다. 이 대표의 매각 지분 거의 전부인 11.27%(우선주 발행가 기준 153억원)을 인수했다. 이 전 회장이 현재 30.05%나 되는 지분으로 2대주주에 있는 이유다.
나머지 2.03%는 일본 미용·헬스케어 업체 MTG 몫이었다. 코리아테크가 국내에 독점 유통하는 ‘이영애 리파’, ‘싸이 파오’ 제조사다. 코리아테크는 2017년 이후 6억원 가량을 출자해 MTG 주식을 보유 중이다. 제휴사끼리 서로 지분을 교차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동열 대표가 멀티밤 ‘가히’를 지렛대로 재기에 성공한 데는 시기적으로 볼 때 해피콜 창업자인 이현삼 전 회장의 자금이 큰 위력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주방가전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 이 전 회장에게 돈이 문제될 건 없었다. 성공을 일군 뒤에는 과실(果實)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주방용품 ‘해피콜 신화’가 남긴 유산(遺産)은 그만큼 컸다.
이 전 회장은 경남 거창농업고를 졸업했다. 서울로 상경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장사를 배웠다. 전국 장터를 돌며 장돌뱅이 생활을 했다. 프라이팬과 신발, 옷, 이불 등을 팔았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99년 6월 해피콜을 창업했다. 33살 때다.
2001년 붕어빵 기계에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생선을 구울 때 옷에 기름이 튀거나 화상을 입을 일이 없는 위아래로 접히는 양면 프라이팬을 만들었다. ‘빅 히트’를 쳤다. 홈쇼핑 방송 1시간 만에 1만2800개가 팔려 기네스북에 올랐을 정도다.
위기가 찾아왔다. 2004년에 파업을 맞았다. 엎친 데 덮쳤다. 때를 같이 해 세무조사를 받았다. 2003년 458억원에 이르던 매출은 2007년 57억원으로 8분의 1 토막이 났다. 하지만 다시 일어섰고, 또 무섭게 달려들었다. 2008년 ‘다이아몬드 프라이팬’, 2015년 ‘초고속 블렌더’ 등이 잇달아 대박을 쳤다.
잘 나가던 2016년 돌연 해피콜을 매각했다. 개인 소유의 89.52%를 비롯해 지분 100%를 이스트브릿지와 골드만삭스에 매각했다. 매출 1750억원에 영업이익으로 214억원을 벌어들였던 해다. 이익률이 12%나 됐다. 당시 매각 대가로 이 전 회장이 손에 쥔 돈이 1800억원이다.
아이러니하다. 2016년 재무실적은 현재까지 사상 최대치다. 해피콜(2022년 6월 ‘에이치씨(HC)컴퍼니’로 사명변경)은 주인이 바뀐 후로 매출이 거의 매년 뒷걸음질 치고 있다. 2021년에는 1200억원에 머물렀다. 영업이익은 적게는 42억원, 많아봐야 106억원 정도다. 이 전 회장의 매각 타이밍 절묘했다.
또 한 가지. ‘가히’의 성공을 떠올리면 이 전 회장은 3년 전 투자로 또 한 번의 대박 신화를 ‘찜’해 놓은 셈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이 전 회장의 행보는 코리아테크의 재무적투자자(FI)로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 [거버넌스워치] 코리아테크 ③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