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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 급한 불 끄려다 집 태웠다

  • 2013.07.12(금) 11:38

오릭스, 2700억에 STX에너지 잔여지분 인수

STX에너지가 결국 일본계 자본인 오릭스에게 넘어갔다. 그동안 STX에너지를 두고 국내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 등이 인수에 나섰지만 결국 오릭스가 최종 승자가 됐다.

㈜STX는 지난 11일 계열사 STX에너지의 잔여 지분 43.15%(510만3101주)를 오릭스에게 매각키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매각 대금은 2700억원이다.

이로써 ㈜STX는 작년말 지분 매각 대금 등을 포함, 총 6300억원에 STX에너지 지분 전량을 오릭스에 매각하게 됐다. 아울러 STX에너지가 보유한 계열사 STX전력, STX솔라, STX에너지 캐나다, STX RHL Pty. Ltd 등도 모두 오릭스 소유가 됐다.

◇ 돈독했던 그들

STX그룹과 오릭스와의 첫 인연은 지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릭스는 당시 STX엔파코(현 STX메탈)의 해외 자본 유치에 참여, 총 360만주를 인수했다. 또 지난 2009년에는 STX그룹의 네트워크 회사인 포스텍에 투자해 3대 주주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STX그룹과 오릭스는 그동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계열사의 해외자본 유치에 오릭스는 항상 단골손님이었다. STX그룹 입장에서는 자본 유치를, 오릭스 입장에서는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었기에 상호 '윈-윈' 전략이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사진 왼쪽)과 미야우치 요시히코 일본 오릭스 회장. 돈독했던 그들은 STX에너지 지분 매각을 둘러싸고 서로 등을 돌렸다.]

 

작년말 유동성 위기에 빠진 STX그룹이 알짜 계열사인 STX에너지의 지분 일부 매각을 추진했을 때도 어김없이 오릭스가 참여했다. 다만, 당시 STX에너지 지분 인수에 참여한 오릭스는 예전의 오릭스가 아니었다.

오릭스는 한계 상황에 빠진 STX그룹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오릭스 입장에서는 STX가 처한 상황을 이용키로 했다. 대표적인 예가 지분 매각 당시 STX그룹과 체결한 '특약'이었다.

◇ '친구'에서 '적'으로 

오릭스는 작년 10월 STX에너지의 지분 43.15%를 3600억원에 인수했다. 이때 오릭스는 인수 조건으로 경영권 보호를 위해 STX그룹이나 STX에너지에 경영상 문제가 발생하면 지분율을 조정할 수 있다는 '리픽싱(refixing)' 조항을 포함시켰다.

당시 오릭스는 STX에너지에 투자하면서 신주를 배정받았다. 전환우선주 162만여주, 전환상환우선주 128만여주다. 이 우선주들은 보통주 1주와 맞먹는 의결권을 갖고 있다. 향후 8년간 언제든지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도 갖고 있다.

일단 전환비율은 '우선주 1주:보통주 1주'로 돼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특약'이 있다. '특정조건(Trigger)'이 발생하면 우선주 1주의 전환비율은 보통주 1.5주 혹은 2주 등으로 전환되도록 했다. 특정조건은 7가지인데 7개가 모두 발동되면 오릭스의 STX에너지 지분율은 88%까지 올라간다.

'친구'였던 오릭스가 언제든 '적'으로 돌아설 수 있는 조항이었다. 하지만 당장 사정이 급한 STX그룹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오릭스는 이 조항을 이용, STX에너지가 계열사로 보유하고 있는 STX솔라의 매각을 주장했다. STX에너지의 자산가치를 떨어뜨려 STX에너지에 '무혈 입성'하겠다는 전략이었다.

◇ 채권단, 오릭스 손 들어줘

사실 STX그룹은 STX에너지의 잔여 지분을 오릭스에 넘길 생각이 없었다. 이미 작년 지분 매각 당시 '친구'가 아닌 '적'으로의 변신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마침 STX에너지는 정부가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승인한 화력발전소 사업권을 갖고 있었다.

굳이 오릭스가 아니더라도 STX에너지를 더 비싼 값에,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곳으로 넘길 만한 매력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목을 잡혔다. 바로 8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이달 말로 다가온 것이다.
 
마침 국내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가 적극적으로 STX에너지 인수 의사를 밝혀왔다. 작년 말 이후 계속 지분을 늘려 지분율을 53%까지 높인 오릭스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STX에너지에 투자할 당시 '특약'조항을 걸어둘 만큼 STX에너지 인수 의욕이 강한 오릭스였다.
 
오릭스는 최대주주인만큼 계약만 체결하면 즉각적인 대금 지급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회사채 만기 시한에 쫓기는 STX와 하루 빨리 자금을 회수하고 싶어하는 채권단의 입장을 노린 노림수였다. 여기에 '리픽싱'조항을 축소하고 신규 자금 투입을 통한 잔여 지분 인수 의지를 강조했다. 대항마가 등장하자 딜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전략이었다.


[STX에너지 열병합 발전소. 오릭스는 향후 STX에너지 지분 일부를 에너지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내 기업에 매각할 것으로 보인다.]
 
오릭스가 적극적으로 나오자 채권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한앤컴퍼니 카드가 오릭스를 압박하는 수단으로서는 유용했지만, 실제로 STX에너지의 잔여 지분을 넘기는 모험은 할 수 없었다.

또 한앤컴퍼니가 선정될 경우, 대금 입금 시간이 지연된다는 점도 부담이었다. 아울러 한앤컴퍼니가 인수 의사만을 전달했을 뿐 뚜렷한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는 점도 오릭스로 넘어간 원인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자금이 급했던 STX가 첫 단추를 잘못 꿰는 바람에 알짜 계열사를 넘기게 됐다"며 "오릭스는 국내 대기업들이 STX에너지가 보유한 사업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일부 지분을 공개 매각해 수익을 챙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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