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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수를 위한 변명

  • 2013.07.17(수) 15:40

'신화'는 끝났다. 정확하게는 끝나는 중이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한때 세계 각지에 STX깃발을 휘날렸던 강덕수 회장의 꿈이 이렇게 스러지고 있다.

지난 2009년 강덕수 회장은 사석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징기스칸을 꿈꿨다. 유목민이었던 그들이 광활한 제국을 건설한 것처럼 글로벌 베스트 기업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임병석 C&그룹 회장, 최평규 S&T그룹 회장과 함께 M&A의 귀재로 통했다. M&A를 통해 단기간 내에 굴지의 대기업을 일궜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STX그룹이 M&A를 통해 성공했다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

그는 "STX의 M&A는 외형 불리기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그 기업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M&A라는 수단을 사용한 것일뿐 M&A가 주된 목적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정말 억울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M&A는 '필연'이었다. 그는 1973년 쌍용양회에서 샐러리맨 생활을 시작했다. 평사원 시절부터 숫자에 밝고 사업 수완이 좋았다.

매주 토요일이면 일이 끝나자마자 명동에서 옷가지 등을 떼어다 대구 등으로 내려갔다. 유행 1번지 명동 제품을 지방에 선보이니 인기폭발이었다. 주말을 꼬박 지방에서 보내고 일요일 오후에나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28년을 살았다.

그동안 그는 쌍용그룹의 임원이 됐다. 마지막으로는 쌍용중공업 CFO를 맡았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자신이 근무하던 쌍용중공업이 매물로 나왔다. 당시 살고 있던 서울 강남의 집과 그동안 받았던 스톡옵션 등을 처분해 20억원을 만들었다.

강 회장은 "쌍용중공업을 인수하기로 마음 먹은 날 저녁,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 나의 계획을 말했다. 사실 모험이었고 두려웠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아무말 없이 묵묵히 나를 믿어줬다. 그것이 지금도 고맙다"고 했다.

그는 평소 쌍용그룹이 주력해야 할 사업은 자동차가 아니라 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겐 오래전부터 '조선의 꿈'이 있었다. 쌍용중공업을 인수키로 한 것도 당시 쌍용중공업이 선박용 엔진을 제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지난 2001년 쌍용중공업을 인수한 그는 사명을 STX로 바꿨다. 그리고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됐다. 당시 매물로 나왔던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을 비롯 산단에너지공단(현 STX에너지)을 잇따라 인수했다.

업계에 그의 이름을 알린 것은 '새우가 고래를 집어 삼킨 것'으로 유명한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였다. 당시 STX보다 덩치가 컸던 범양상선을 발빠른 행보와 누구도 생각지 못한 기법으로 인수했다. 범양상선은 대기업들도 군침을 흘리던 알짜 회사였다.

구슬을 모았으니 이젠 꿰어야 할 차례. 강 회장은 STX의 수직계열화에 주력했다. 해운-조선으로 이어지는 STX의 수직계열화는 업계에서 모범사례로 꼽혔다.

그는 "해운을 하다보니 배가 필요했고 조선을 하다보니 선박에 들어가는 엔진과 기자재도 우리 손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세계적인 크루즈선사인 노르웨이의 아커야즈를 인수하면서 STX의 성장은 정점을 찍는다. 진해-중국 다롄-유럽을 잇는 삼각편대로 세계의 바다를 점령하겠다는 그의 꿈은 어느 정도 이뤄지는 듯 했다.

불과 10여년 만에 재계서열 12위까지 올라선 STX그룹과 함께 강 회장도 본격적으로 재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비롯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에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전경련에서 강 회장은 늘 조용한 행보를 보였다. 재벌 2, 3세들로 구성된 전경련 회장단에서 그는 유일한 창업자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항상 주변사람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했다. 다른 재벌가 오너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만난 그는 언제나 온화했다. 하지만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다. 팔짱을 낀 채 20여분간을 쉬지 않고 얘기했다. 그의 말은 논리정연했고 목소리에는 확신과 자신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쾌속순항하던 STX호는 지난 2010년을 시작으로 점점 속도가 줄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경기 민감 업종인 해운과 조선업황이 꺾이기 시작했다. 수직계열화의 달콤했던 열매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결국 STX호는 경기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좌초됐다. 강 회장의 '징기스칸 경영'을 실천하던 계열사들은 모두 채권단이 마련한 수술대에 올랐다. 강덕수 회장의 꿈도 함께 가라앉았다.

최근 만난 전 STX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룹의 부실 징후는 2009년쯤부터 있었다. 해외 사업이 계속 부진했고 여기저기서 불안한 시그널이 보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강 회장에게 이를 명확히 전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회장에게 올라가는 보고서에는 항상 전제가 있었다. '경기가 회복되면…'".

최근 주력 계열사인 STX조선해양에 대한 경영 정상화 방안이 제시됐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STX조선해양에서 강 회장의 발자국을 지우는 데에 있다. STX조선해양은 STX팬오션과 함께 강 회장이 가장 애착을 가졌던 회사였다.

언젠가 강 회장과 단 둘이 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그때도 늘 똑같은 모습으로 회사 이야기를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언제 한번 제 방으로 놀러 오세요. 같이 막걸리나 한 잔 합시다."

여전히 그 약속이 유효하다면, 언젠가 그와 막걸리 잔을 기울일 기회가 생긴다면, 그는 지금을 어떻게 추억하고 평가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 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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