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애플이 디자인과 특허를 침해했다며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지난 2011년 4월이니 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삼성전자와 애플의 법정 공방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세기의 소송'으로 불리는 이들의 특허전쟁은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면서 어느 한쪽의 득실을 따지기 어려운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 역시 더 이상 소송을 끌고간다고 해도 양측 모두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지 않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 삼성 브랜드 상승 효과
애플과의 공방에서 삼성전자는 소송의 결과를 떠나 얻은 것이 적지 않다는 평이다. 무엇보다 애플과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다.
애플과의 소송이 시작된 이후 삼성 스마트폰의 판매는 크게 늘었다. 특히 최근 들어선 그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삼성은 7600만대 가량의 스마트폰을 판매하며 세계시장의 33.1%를 차지했다.
애플은 3120만대로 13.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삼성이 애플을 2배이상 앞서고 있다. 삼성에게 '카피캣(모방자)'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소송을 시작했던 애플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온 셈이다.
최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애플의 특허침해를 인정한 점도 삼성이 얻은 성과중 하나다. 다만 실제 애플이 받는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고, 전체 소송의 진행상황은 삼성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미국 법원에서는 이미 6500억원 가량의 손해배상 판결이 나와있는 상황이다. 특허소송 종결까지 수천억원대로 추정되는 비용과 함께 금전적인 손실이 적지 않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삼성의 통신기술과 관련된 특허권 남용 여부 조사에 나선 것도 부담이다.
◇ 애플, 혁신 이미지 퇴색
애플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애플이 가지고 있던 '혁신'의 이미지가 퇴색됐다는 점은 부담이다. 한때 스마트폰 1위 기업으로 추격해 오는 후발주자를 견제하기 위해 혁신적인 제품보다 특허소송이라는 카드를 사용했다는 점은 그동안 애플이 쌓아왔던 이미지를 상당부분 훼손했다는 평이다.
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을 통해 삼성전자의 제품을 견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수개월만에 주력제품이 교체되는 지금의 환경에서 1년전, 2년전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등은 실제 효과가 거의 없다.
다만 소송 자체만을 놓고 보면 애플이 삼성보다 다소 유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삼성전자의 특허가 주로 로열티만 지급하면 사용할 수 있는 표준특허인 반면 애플의 특허는 디자인 등 상용특허다. 상용특허는 표준특허와 달리 다른 사업자에게 제공할 의무가 없다. 만일 애플이 삼성전자 특허에 대해 로열티를 내는 대신, 자신이 보유한 특허를 쓰지 못하도록 삼성을 압박할 수도 있다.
삼성이 현재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카피캣'이라는 오명이 씌워질 경우 시장 판도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점도 단순히 금전적인 보상을 떠나 애플이 노리고 있는 부분일 수 있다는 관측이다.
◇ 합의 가능성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양측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특허협상 합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전자와 애플이 올해초 특허협상 타결 직전까지 도달했었다고 보도했다. 실제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이같은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의 경쟁자 위치를 떠나 부품의 최대 공급처중 하나라는 점에서 양측이 접점을 찾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애플로선 안정적이고 품질을 갖춘 부품을 대규모로 조달하기 위해선 삼성전자를 버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허소송이 제기되며 양측의 갈등이 커지던 시점에서도 애플은 삼성전자의 부품을 배제하지 못했다.
삼성전자 역시 애플을 대체할만한 수요처를 찾기 쉽지 않다. 지난 2분기 반도체부문에서 시스템LSI의 실적이 좋지 않았던 것도 애플의 부품 축소가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삼성전자나 애플 모두 부품분야를 매개로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삼성이 차기 아이폰의 핵심부품을 다시 수주한 것을 놓고 양측의 관계가 극한대립에서 화해무드로 접어든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크로스 라이센스 형태의 합의를 통해 삼성전자의 명분을 살려주면서 애플이 보다 낮은 단가로 부품을 조달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양측 모두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애플과의 소송과 관련해선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면서도 "ITC 판결 효력이 내달초부터 시작되는 만큼 그 전후로 입장이 정리될 수도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