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애플의 글로벌 특허소송전은 이제 막 1라운드를 끝냈다. 지난 3월 미국 법원의 최종 판결을 마지막으로 주요국 법원에서의 1심 소송이 모두 마무리됐다. 두 회사 모두 법원 판단에 불복해 쌍방 항소를 제기한 상황이라 이른바 '세기의 소송전'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특허소송전은 현재 세계 9개국 법원에서 진행되고 있으나 이 가운데 한국과 미국, 독일, 일본 4개국에서 벌어지는 다툼이 주목할 만하다. 한국과 미국은 각각 삼성과 애플의 안마당이라는 상징성이 있고, 독일과 일본은 각각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시장이다. 삼성과 애플은 이들 4개국 법원 가운데 안마당에선 각각 1승씩을 거뒀고, 다른 나라에선 승리를 한차례씩 주고 받았다.
◇ 韓美 법원 1심 판결 나왔으나 모두 불복
한국 법원은 사실상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8월 1심 판결을 통해 애플이 삼성의 통신기술 2건을, 삼성이 애플의 바운스백 특허 1건을 각각 침해했다고 밝혔다. 다만 휴대폰 생산에 필수적인 삼성의 통신기술 특허 침해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면서 삼성이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는 애플 주장은 기각했다. 이러한 판결에 대해 삼성과 애플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앞서 삼성은 지난 2011년 4월 애플이 자사의 무선통신기술 특허 5건을 침해했다며 한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애플도 같은해 6월 삼성이 자사의 상용특허 4건과 디자인특허 6건을 침해했다며 맞고소했다.
미국 법원에선 애플이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 미국 새너제이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은 지난 3월 삼성이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5억9890만달러(원화 65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작년 8월 배심원단이 부과한 배상액 가운데 절반 가량인 4억5050만달러를 삭감한 것이다.
미국은 사법절차의 특성상 일반인들로 이뤄진 배심원단이 먼저 평결을 내리고 판사가 이를 바탕으로 최종 판결을 한다. 담당 판사인 루시 고는 '삼성이 애플의 특허를 의도적으로 침해했다'는 배심원의 평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이 의도적으로 특허를 침해했다면 '괘씸죄'를 적용할 만한 사안이나 그렇지 않다고 판단함으로써 배상액 규모도 깎은 것이다.
이로써 지난 2011년 4월 애플이 미국 법원에 삼성을 제소하면서 시작한 미국 소송전은 2년 가까이 진행되다 1막을 내렸다. 배상액 측면에선 애플이 승리했다고 할 수 있으나 삼성의 특허침해 고의성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애플이 깔끔하게 이겼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삼성과 애플은 이같은 판결에 불복한다며 쌍방 항소를 제기, 한국과 마찬가지로 2심에서 붙을 예정이다.
한편 삼성과 애플은 미국에서 이와 별개의 소송을 앞두고 있다. 두 회사는 갤럭시S3와 갤럭시노트2, 아이폰5, 아이패드 미니 등 최신 기기들을 포함해 2차 소송으로 맞붙을 예정이다.
1차 소송이 디자인과 표준특허가 주를 이뤘다면 2차에선 아이폰의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Siri)' 등 상용특허가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2차 소송은 작년 2월 애플이 삼성 갤럭시 넥서스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애플이 따로 판을 벌리자 삼성은 4월에 애플에 대해 특허소송을 제기하며 반격에 나섰다.
◇ 獨日 법원서는 엎치락 뒤치락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에서는 특이하게 만하임과 뒤셀도르프, 뮌헨 3개 법원에서 소송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독일 법원은 특허권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는데다 특허 침해 소송에 대한 판결이 나기 전까지 해당 제품 판매를 금지하고 있어 이를 이용해 소송을 남용하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4월부터 지난 4월까지 2년 동안 독일 3개 법원에서 두 회사가 제기한 특허침해와 이로인한 법원의 가처분 명령, 판결 등은 총 26건에 이른다. 양사는 독일 법원에서 서로 한방씩 주고 받은 상태다. 뮌헨에 있는 연방특허법원은 지난 4월 각각 2개의 판결을 통해 삼성과 애플의 손을 한번씩 들어줬다.
일본에서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소송제도 특성상 누가 확실히 승기를 잡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현지 언론을 통해 공개된 판결 결과로 봐서는 삼성과 애플이 장군멍군을 주고받은 것으로 가늠해 볼 수있다.
일본 도쿄지방법원은 지난해 8월 1심 판결에서 애플의 손해배상 청구소송(1억엔)에 대해 원고 주장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애플이 낸 판매금지 가처분신청도 함께 기각했다. 이는 일본에서 벌어진 삼성과 애플 소송 중 첫 판결이었다.
이후 지난 6월 열린 항소심에서 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소송 대상이 된 특허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접속해 데이터를 내려받을 때 양쪽의 정보를 일치시키는 동기화 기술이다.
한편 도쿄 지방법원은 지난 6월 삼성이 일부 구형 스마트폰에서 애플의 '바운스백(bounce-back)'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바운스백은 손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화면을 터치해 사진을 넘겨 볼 때 끝부분에 도달하면 살짝 튕기는 듯한 시각 효과를 주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