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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서 배운다]동양 '교만이 실패 불렀다'

  • 2013.11.08(금) 15:24

현재현 회장 '실패할 거란 생각 안 했다'
경고 무시..금융에 대한 집착이 화 불러

2013년, 중견기업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업황부진, 경쟁심화 등 외부요인도 있지만 오너의 오판, 장기전략 부재, 혁신 실패 등 내부요인이 더 크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미미해진 기업들의 경영 실패사례를 통해 기업의 갈 길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병교필패(兵驕必敗). '교만한 병사는 전쟁에서 반드시 패한다'라는 뜻이다. 현재현(사진) 동양그룹 회장의 좌우명이다. 회장실 벽에 걸어두고, 하루 두 번씩 되새겼다고 한다. 그런 그를 재계는 ‘젠틀맨’으로 불렀다. 직원들에게도 존댓말을 썼다. 

하지만 경영자로서 현 회장은 교만했다. 지난달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현 회장은 “단 한 번도 실패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법정관리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 년 전부터 울린 경고음을 듣지 못한 채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 “우리는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한 것이다.

동양의 ‘숨은 실세’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이사는 “수년 동안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넘겨온 걸 지켜봤다. 매달 부도를 염려했다”고 고백했다. 언론과 신용평가사의 경고도 몇 년째 이어졌다. 현 회장은 선장실에 물이 차오르고 나서야 배의 침몰을 눈치챘다. 무엇이 ‘재계의 젠틀맨’의 귀와 눈을 틀어막고 있었을까.

 

 
◇ 사위 총수, 금융으로 존재 증명

현 회장이 귀를 닫고 바라본 곳엔 금융 사업이 있었다. 류승협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지난 2000년 금융을 포기했어야 했다. 그 이후엔 그룹을 살릴 큰 기회는 없었다”고 말했다.
 
IMF 직후 동양오리온투자신탁(현 동양증권)은 대우채 사태로 5000억 원의 고객 손실을 보전해주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그룹을 살리기 위해 동양증권을 버려야했다. 하지만 현 회장은 동양증권을 지키기 위해, 빚을 내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었다. 그 대가는 한해 2000억 원이 넘는 이자였다.

현 회장은 1976년 동양 창업주 이양구 회장의 맏딸(이혜경 부회장)과 결혼한 재계 첫 사위 총수다. 21살에 사법고시를 패스한 그는 재벌가의 사위가 된 뒤 미국에서 국제금융을 공부했다. 이후 1984년 일국증권(현 동양증권)을 인수했고, 동양생명·동양선물 등을 세웠다.
 
창립 50주년 행사에선 “동양을 한국의 골드만삭스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멘트와 제과가 사업의 양대 축이던 동양에서 사위 총수는 ‘금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 오너된 사위..그룹은 수렁으로

금융에 대한 애착은 동양그룹을 지배하는 연결고리가 됐다. 1998년 현 회장이 손에 쥔 지분은 동양시멘트(8.3%), 동양제과(3.8%), 동양레저(30%), 동양증권(1.2%) 등이 전부였다. 여전히 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던 동양시멘트의 주도권은 이혜경 부회장(10.7%)이 쥐고 있었다.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되면서 현 회장은 2002년 동양메이저(동양시멘트)의 단일 최대주주(18.41%)가 된다. 반면 이 부회장은 2대 주주(14.39%)로 밀려났다.

 

현 회장은 또 자신이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동양레저를 무리하게 그룹의 지주회사로 만드는 작업을 밀어붙였다. 이 과정을 통해 사위 총수는 오너가 됐지만 그룹은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건설 경기가 악화되면서 시멘트 사업이 타격을 받았고, 큰 돈을 쏟아부은 유전개발(골든오일)·섬유(한일합섬) 등 신규 사업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룹이 내리막을 걷자 내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안방 마님’으로 밀려난 이 부회장이 2008년 경영에 뛰어들었다. 이때 이 부회장의 추천으로 입사한 김철 대표는 기존 임원들과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동양의 한 임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 부회장은 기존 임원들이 자기 아버지 회사를 말아먹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현준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위기의 시그널이 왔는데 듣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며 “어려운 일에 봉착할수록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은 어려울수록 팀플레이를 해야 하는데, (동양은) 내부 단합에 문제가 있었다”며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닌데 많은 기업들의 오너가 이 사실을 망각해 실패한다”고 지적했다.

 

■(주)동양·동양인터내셔널·동양레저·동양시멘트·동양네트웍스 등 5개 그룹 계열사는 법정관리 중이다. 부실 기업어음(CP)과 회사채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는 집단 소송에 나섰다. 현재현 회장은 국정감사에 참석해 "경영권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등 재계 38위 동양그룹은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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