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크고 작은 조직개편이야 늘상 있는 일이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계열사 재편은 차원을 달리한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삼성은 그동안 기존 계열사 체제를 크게 흔들지 않았다. 전자 부문에서 사업들을 분리해 수직계열화를 만든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작된 사업조정은 숨이 찰 정도다. 삼성에버랜드와 제일모직, 석유화학 등이 대상이 됐다. 삼성의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전자와 금융, 건설 등 주요 사업군의 움직임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
삼성그룹내에서 다른 계열사들의 사업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반면 전자 계열사들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합병한 것 외에 다른 계열사들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
이는 삼성전자 중심의 수직계열화가 일찌감치 만들어진 영향으로 보인다. 삼성SDI의 합병 역시 기존의 수직계열화를 더욱 강화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 전자에 복무하라!
현재 삼성의 전자계열사는 삼성전자 외에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삼성전자 내부에도 반도체 등 부품을 만드는 사업부가 있다.
삼성의 전자계열사 라인업은 이미 수차례 조정을 거쳐 일찌감치 완성된 상태다. 이번 사업조정에서도 전자계열사들의 변화가 크지 않았던 이유다.
디스플레이사업의 경우 과거 삼성전자 중소형 LCD사업과 삼성SDI가 가지고 있던 OLED사업을 합쳐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를 설립했다. 디스플레이 사업의 통합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일본 소니와의 합작사였던 S-LCD를 흡수하기도 했다.
이후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 삼성전자의 대형LCD사업이 합쳐지면서 지금의 삼성디스플레이가 만들어졌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현재 삼성전자에서 생산되는 스마트폰과 TV 등의 화면에 들어가는 제품들을 생산한다.
삼성전자의 LED사업은 과거 삼성전기가 맡고 있었다. 이를 삼성LED라는 별도 회사로 분리한 후 다시 삼성전자가 흡수했다. 디지털카메라사업 역시 삼성테크윈에서 분할하는 과정을 거쳐 삼성전자에 편입됐다.
삼성이 지난해 미국 코닝에 LCD용 유리기판을 생산하는 코닝정밀소재를 매각했지만 아직 OLED용 기판에서는 합작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코닝어드밴스드글라스가 그 결과물이다.
◇ 수직계열화 강화
이같은 작업을 통해 삼성은 각종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부품에서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스마트폰의 경쟁자인 미국 애플, TV시장의 경쟁자인 LG전자나 일본기업들과는 다른 구조다.
삼성전자가 TV나 스마트폰 등의 시장에 후발주자로 진입해 1위 기업을 빠르게 추격하고, 결국 이를 추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같은 수직계열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다. 최고 경영진에 빠른 의사결정과 이를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구조가 삼성전자의 성공요인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최근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합병하는 것도 자체 경쟁력은 물론 전자분야 수직계열화가 강화된다는 의미가 있다. 제일모직이 가지고 있는 2차전지나 OLED 소재분야 기술이 삼성SDI의 역량이나 기술과 결합되면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삼성SDI의 배터리 분야는 향후 전기차 등의 미래사업은 물론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 등에도 필수적인 만큼 중장기적으로 이번 합병이 삼성SDI 자체는 물론 삼성전자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계열사들의 역량이 삼성전자에 집중되는 구조인 만큼 삼성전자 사업에 따라 계열사들의 실적이 좌우되는 점은 현 체제의 약점으로 지적돼 왔다. 최근 삼성의 전자계열사 실적이 부진에 빠진 것도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성장이 주춤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최근 삼성SDI가 에너지저장장치(ESS), 삼성전기가 전자가격표시기(ESL) 등 신사업을 육성하고 있는 것도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차원이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