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출근길 지각 직전이다. 엘리베이터에 정말 싫은 상사가 타고 있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벼룩시장구인구직이 최근 남녀 직장인 5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위와 같은 질문에 응답자의 33.3%는 “상사를 피해 계단으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육체적 고통보다 마음의 평화를 찾겠다는 것이다.
“직속 상사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대답도 65.9%에 달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696명을 상대로 한 직속 상사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다. 존경하지 않는 이유로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업무 지시'가 47.2%로 가장 많았다.
외국인 직원들 사이에서도 '한국 상사'는 미운 털이 박힌 지 오래다. 미국 취업정보 사이트 ‘글래스도어’에는 한국인 상사와 일해 본 외국인 직원들의 불만이 쏟아진다.
◇ “한국 상사들 마치 신이라도 된 양”
▲ 글래스도어에 오른 국내 30대 기업 상사 부문 평점 (2014년 8월4일 기준) |
국내 30대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외국인 직원들은 상사에게 '짠' 점수를 줬다. 글래스도어에 오른 국내 30대 기업의 ‘상사(관리자)’ 부문 평균 점수는 2.7점(5.0점 만점)이다. 1.0점은 ‘불만족’, 3.0점은 ‘만족’, 5.0점은 ‘매우 만족’을 의미한다. 외국인 직원들은 한국 상사들에게 중간 이하의 점수를 준 것이다.
글래스도어는 전현직 직원들이 자신의 직장에 대한 리뷰와 점수를 익명으로 쓸 수 있어 회사에 대한 솔직한 평이 오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사이트에는 각 기업에 대한 ‘전체 평점’ ▲ 기업문화와 가치 ▲ 일과 삶의 균형 ▲ 상사(관리자) ▲ 보상과 복지 ▲ 경력 기회 등 다섯가지 세부 분야 점수가 공개된다. 전 세계 약 30만개 기업의 리뷰와 평가 점수를 볼 수 있다.
글래스도어에 우리나라 30대 기업 중 높은 점수를 받은 상위권에는 두산중공업, SK텔레콤, 기아자동차 등의 기업이 올랐다. 낮은 점수를 받은 기업으로는 엔씨소프트, 현대모비스, 대우인터내셔널, 다음, 넥슨, LG화학 등이 꼽혔다.
이들 기업에 대해서는 점수의 높고 낮음을 떠나 ‘상명하복’ ‘경직된 구조’ 등의 단어가 반복적으로 언급됐다. ‘일반적인’ 한국 상사들은 직원들에게 호통을 치며 일방적으로 업무 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회사에서 일해 봤다는 외국인 직원들은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들의 의견과 제안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한진해운) “필요하지 않은 업무조차 상사가 시키면 해야 한다”(현대모비스) “한국 상사들은 자신이 마치 신이라도 된 양 행동한다”(대한항공) “상사의 생각이 명백하게 잘못됐는데도 반박할 수가 없다”(SK하이닉스) 등의 평을 내놨다.
◇ 상명하복 의사소통...가장 큰 문제
국내 직장인들도 저만 잘난 줄 아는 앞뒤 꽉 막힌 상사 때문에 생기는 ‘불통’(不通)을 기업 내부의 고질병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2013년 6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전국 직장인 500여 명을 대상으로 ‘창조경제시대 기업문화에서 개선돼야 할 문제점’을 물었다. 그 결과 ‘상명하복의 경직된 의사소통’(61.8%)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혔다. ‘소통’ 때문에 상사와 부딪치는 경우도 68.5%나 됐다.
기업 내부의 고질적인 소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상명하복의 원인이 됐던 직급 체계를 단순하게 만든 것이 하나의 사례다. SK텔레콤은 지난 2006년 차장, 과장, 대리 등의 직급을 ‘매니저’로 통일했다. 직급이나 연공서열에 상관없이 ‘자신의 업무에 대한 지식과 책임을 가진 담당자’라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곧 매출로 직결되는 IT업계에서는 수평적 조직문화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다음과 CJ E&M은 사내에서 직원들이 직위 대신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른다. 카카오에서는 영어 이름을 선택했다. 이석우 카카오 공동대표의 영어 이름은 ‘비노’(Vino), 이범수 카카오 의장은 ‘브라이언’(Brian)이다. 최근에는 네이버도 차장, 과장, 대리 등 직위 대신 이름에 ‘님’ 호칭을 붙여 부르며 수평적 조직문화 만들기에 동참했다.
김재휘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 내 위계질서를 중시했지만 최근에는 창의성이 기업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만큼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구 유통업체 이케아(IKEA)는 수평적 조직문화 덕분에 세계적인 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케아에서는 경영진과 일반 직원의 구분이 없다. 경영진들은 구내식당에서 일반 직원들과 함께 식사하며 이들을 친구처럼 대한다. 또 갓 입사한 직원들에게도 중요한 책임을 부여한다. 경험 많은 직원들은 타사에서 높은 연봉을 제시해도 이케아에 머무르며 일한다. 스웨덴에 뿌리를 둔 이케아가 임금이 높지 않은데도 스웨덴에서 가장 인기 높은 직장이 된 이유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통하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마쓰시타전기 창업자는 “기업 경영의 과거형은 관리다. 경영의 현재형은 소통이다. 경영의 미래형 역시 소통이다”고 말했다.
■ ‘싫어하는 상사’ 유형
전문 지식이 없는 상사
“매니저가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기술도 없다” (NC소프트)
보고서만 올리라고 시키는 상사
“피드백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보고만 많이 하라고 시킨다” (LG전자)
감시만 하는 상사
“지나치게 세세하게 감독하고 감시하려 든다” (현대모비스)
부하에게 전혀 관심 없는 상사
“상사들은 부하 직원이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SK하이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