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업 방향과 조직 운영 색깔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정기 인사다. 올해도 정기 인사철을 맞아 어김없이 각 기업별로 작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주력사업들의 경쟁력이 한계를 맞고 있다는 우려가 대두되는 가운데 올해 대기업들의 정기 인사에 담긴 특징을 정리해본다. [편집자]
올해 대기업들의 연말 인사 분위기는 그 어느때보다 싸늘하다. 최고경영자들의 교체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임원 승진을 줄이거나 기존 임원진 규모를 감축하는 현상이 뚜렷했다. 예년보다 '쇄신', '세대교체'라는 표현도 자주 등장했다.
재계 1위인 삼성이 전체 임원규모를 20% 가량 줄였고, LG도 예년에 비해 전체 승진자를 줄였다. SK는 40대 임원 비중을 크게 높였다. 주요 대기업들의 이같은 기류는 다른 그룹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 삼성, 60년대생 사장단 확대
삼성은 이번 정기인사에서 대부분 최고경영진을 유임시켰다. 특히 관심을 모았던 권오현 부회장, 윤부근 소비자가전 대표이사 사장, 신종균 무선사업부 대표이사 사장 등 삼성전자 대표이사들도 모두 자리를 지켰다.
다만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은 맡고 있던 사업부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윤부근 사장이 맡았던 생활가전사업부장은 서병삼 부사장, 신종균 사장이 맡았던 무선사업부장은 고동진 사장이 물려받았다.
특히 이번 인사를 통해 삼성 사장단이 젊어졌다는 평가다. 올해 삼성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6명중 4명이 60년대생이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시작됐다는 반응이다. 무선사업부장을 맡은 고동진 사장이 61년생이고, 정현호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장, 한인규 호텔신라 면세유통사업부문 사장은 60년생이다.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는 63년생이다.
이미 사장으로 재직중인 홍원표 삼성SDS 솔루션사업부문 사장, 전영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김현석 삼성전자 VD사업부장, 김영기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장 등도 모두 60년대 초반 출생이다. 이들 50대 사장들이 앞으로 사장단의 핵심으로 자리잡을 것이란 전망이다.
▲ 삼성의 60년대생 사장단. 왼쪽부터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정현호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장,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 한인규 호텔신라 면세유통부문 사장. |
삼성은 또 사장단 변화와 함께 승진규모를 줄이며 임원진을 감축했다. 올해 승진규모는 총 294명으로 지난 2009년 247명 이후 가장 적었다. 퇴임 임원들의 숫자를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20% 가량 줄었다.
이달 말 정기인사를 단행하는 현대차그룹도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는 그동안 수시인사를 통해 경영진을 교체해왔지만 올해 말 인사에서 본격적인 세대교체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정의선 부회장이 고성능 브랜드 'N'이나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 런칭을 주도하는 등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는 만큼 앞으로 정 부회장과 호흡을 맞춰나갈 새로운 인물이 부상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 SK·LG도 세대교체
SK그룹은 지난해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 C&C 등 주력계열사 대표이사들을 교체한 데 이어 올해는 임원진 세대교체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71년생을 관계사(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사장으로 발탁하는 등 파격적인 선택도 했다.
전체 137명 승진자중 40대 비중을 59%까지 높였다. 최태원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이후 그룹 전체적으로 사업 전개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게 이번 세대교체의 배경으로 꼽힌다.
LG는 전체 승진자 규모도 지난해 130명에서 올해 122명으로 축소했다. 임원들의 정예화를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 현대중공업 등도 젊은 임원 비중 높여
주요 대기업의 이같은 기류는 다른 그룹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구조조정에 들어간 현대중공업은 상무보 신규선임자 57명중 절반을 40대로 채웠다. 사장 승진 없이 114명의 승진인사만 단행한 한화 역시 중간 임원진을 보강하는 데 중점을 뒀다. 신세계그룹도 신규임원 승진자중 약 30%를 발탁했다.
LS그룹은 CEO 세대교체에 나섰다. 올해 LS-Nikko동제련, 가온전선, LS네트웍스 등 3개 계열사 대표이사를 바꿨다. 지난해 LS전선, LS엠트론, 예스코 등을 교체한 것을 포함하면 2년새 최고경영자 대부분이 바뀐 셈이다.
LS는 전체 임원 승진자를 지난해 36명에서 20명으로 줄이는 가운데 상무급 이상 승진은 최소화하고 신규 이사는 지난해 수준으로 유지하는 '하후상박' 인사를 실시했다. 임원진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처럼 재계 전반에 세대교체 기류가 나타나면서 아직 정기인사를 실시하지 않은 롯데, 한진 등의 인사도 주목받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3, 4세들의 승진과 함께 젋은 임원들을 발탁해 조직의 긴장감을 높이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런 모습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