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 윤도진 기자] '139조원(7540억위안)'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설)' 연휴(2월7일~13일) 기간 동안 발생한 대륙 내 소매업과 요식업 매출액이다. 이 숫자를 확인한 중국 정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점점 둔화되던 국내 소비가 6년만에 다시 회복되는 기미를 보여서다.
춘제 기간 소매요식업 매출은 한 해 중국 내수의 바로미터다. 이 지표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2011년만해도 18.3%에 달했으나 2013년 14.7%, 작년 11%로 급격히 둔화됐다. 하지만 올해 춘제 기간 소매요식업 매출의 전년대비 증가율은 11.2%로 소폭이나마 다시 반등했다.
황한취안(黃漢權)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산하 거시경제연구원 산업경제연구소장은 "중국은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8000달러까지 높아져 수요 업그레이드가 나타나는 과정 중"이라며 "그렇지만 국내 공급 수준은 이를 못따라오다 보니 내수보다 해외소비가 더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2008년 이후 부양책이 실패한 것은 아니지만 한계가 있었고, 지금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책의 무게중심을 공급측 개혁에 둬야할 시점"이라며 "개혁은 5년 안에 90% 이상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의 산업경제 개혁 방향 수립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몇 안되는 학자중 한명이다. 최근까지 '중국 제조업 구조조정과 업그레이드', '13·5규획 신성장산업 육성' 등 80여개 정부 주관 국내외 산업개혁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오는 24일 비즈니스워치가 여의도 63빌딩에서 개최하는 국제경제 세미나에 기조연설자로 참여하는 그를 코트라 베이징무역관 김윤희 차장(기업관리학 박사)과 함께 먼저 만났다. (황한취안 소장= 황, 김윤희 차장= 김, 윤도진 기자= 윤)
▲ 황한취안 발개위 산업경제연구소장(오른쪽)과 김윤희 코트라 베이징무역관 차장(왼쪽) /윤도진 기자 spoon504@ |
◇윤= 중국 정부가 올해 화두로 내세운 '공급측 개혁'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황= 올해 시작하는 13·5규획(13차 5개년 계획, 2016~2020년) 기간 중국 경제의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개념이자 사상이다. 크게는 공급과잉 해소(去産能), 재고 소진(去庫存), 디레버리징(去杠杆), 기업비용 절감(降成本), 취약점 보강(補短板) 등이 과제다.
아직 정책이 완전히 구체화된 것은 아니고 정부 각 부처에서 세부적인 실행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발개위(국가발전개획위원회·NDRC)에서는 공급과잉, 기업비용 절감, 취약점 보강 등에 대한 정책을 검토하고 있으며, 재고 소진은 부동산 분야인 만큼 주택도시농촌건설부(住建部), 금융 측면에서의 디레버리징은 인민은행과 은행감독관리위원회(銀監委)에서 맡고 있다.
◇윤=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어떤 분야인가?
◆황= 공급과잉 해소다. 현재는 철강과 석탄 산업에 대한 감산 계획 정도만 나와있다. 정부는 앞으로 5년간 매년 1000억위안(약18조9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베이징 주변 허베이(河北) 산둥(山東)성 등지나, 지린(吉林)·랴오닝(遼寧)·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 3성 등에서 먼저 가시화 될 것이다.
◇김= 공급측 개혁이라는 개념이 나온 배경은 어디에 있나?
◆황= 수요 확대에 집중했던 경기 부양책의 한계에서 시작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수요 진작을 위해 4조위안을 풀면서 각종 산업의 생산력은 양적으로 확대됐다. 보조금이나 면세 등의 혜택을 봤다. 하지만 국내 수요는 소비자 수준이 높아지면서 해외로 빠져나갔고, 글로벌 경제의 수요는 경기 둔화로 살아나지 못했다.
정부는 무조건 수요를 진작하는 게 답이 아니라는 반성을 했다. 이미 중국의 1인당 GDP는 8000달러에 달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제품 품질, 서비스 수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공급 구조와 상품의 질적인 개선이 핵심이라는 결론이 선 것이다.
◇김= 기존에도 공급 측면의 효율화나 구조조정에 필요성은 많이 제기됐다. 최근에 달라진 건 어떤 점인가?
◆황= 종전에는 경기둔화를 막기 위해 수요와 공급 측면의 정책을 병행했다. 특히 수요 진작을 통해 공급 확대 성과를 거두는 측면이 강했다. 재정 확대, 국채 발행 등을 통해 고속철, 수리 건설, 농촌 빈곤지역 지원 등 인프라 투자를 진행했다. 또 일반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 소비품, 사치품의 수입세를 낮추는 등의 조치나 하이난(海南)의 면세 구입 한도를 1인당 8000위안에서 1만5000위안으로 늘리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방점을 두는 것은 공급 측면이다. 공급 개혁을 통해 수요를 진작하고 경제 성장을 꾀하는 것이다. 공급측 개혁은 질적인 성장 유도, 이를테면 IT 기술을 접목해 전통 제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금융위기 직후 구조조정은 질보다는 양을 중시해 국유기업이 점점 몸을 불리는 결과가 나타났다면, 앞으로는 질적인 성장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 설비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첨단설비로 바꿔버린다는 얘기다.
◇윤= 제조업을 업그레이드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황= 과거처럼 투자를 쏟아붓고, 생산을 늘리는 정책의 경우 양적 성장은 이뤄냈지만 생산능력은 저효율에 머물게 하는 문제가 있었다. 전통 제조업도 소비자 니즈를 파악하고 IT 기술을 활용해 변신해야 한다. 광둥(廣東) 포산(佛山)에 있는 한 가구업체는 최근 수년간 30% 이상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 업체는 원래 소프트웨어 기업이었는데 가구라는 전통산업에 디지털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입혀 새로운 사업모델 전환에 성공했다.
◇김= 공급과잉 해소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조조정은 실업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황= 철강 산업에서 50만명이 실업에 직면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에게 교육 훈련을 제공해 기술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재취업을 적극 유도할 것이다. 공공 서비스 분야에도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중국은 서비스 산업의 발전여지가 크기 때문에 서비스 산업으로의 전업도 많아질 수 있다.
또 중국은 창업을 장려하고 있어 작년만해도 국내에서 하루 1만2000건, 연간 총 400만건의 창업이 이뤄졌다. 전자상거래, 택배, 여행 등 신흥 산업에서도 신규 일자리가 나올 것이고 레저, 의료, 교육 등의 서비스 시장도 빠르게 확대돼 실업자 증가를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윤= 공급과잉 산업에 속해 있다면 경쟁력 있는 기업도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나?
◆황= 공급과잉 문제가 해결되면 경쟁력 있는 기업은 추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동안 국유기업 대부분이 정부의 보조금으로 생존해 왔다. 특히 일부 지방정부는 실적을 유지하기 위해 지방 국유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이를 고용과 GDP 지표 상승으로 연결시켰다. 이른바 '강시기업(좀비기업)'들이 나타난 배경이다. 이런 구조조정은 결과적으로 지방정부나 국유기업에 큰 압박이 될 것이다.
◇김= 정부가 제시하는 공급측 개혁은 언제까지 마무리될 수 있는가? 정책의 구체적인 시기적 계획은?
◆황= 공급측 개혁은 3~5년내에 완성될 수 있다고 본다. 2020년까지 목표의 90%이상이 실현될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 일본도 경제 구조개혁을 실시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 시스템 아래서 정부의 기능은 제한적으로 행사되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시장과 정부의 기능이 거의 동일한 비중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해진 목표시점 달성이) 가능하다.
◇윤= 2020년 이후에는 어떤 새로운 목표가 나오게 될까?
◆황= 시진핑 정부의 개혁 목표는 2020년까지 기본적으로 '샤오캉(小康·국민들이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단계)'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중국에는 2개의 100년 계획이 있는데 샤오캉은 중국 공산당 창립 100주년(2020년) 목표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신중국 건국 100주년(2049년)까지 일본, 독일 등을 넘어서 미국 수준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것이다. 산업 측면에서도 그렇다.
◇김= 중국의 공급측 개혁이 한국 등 해외기업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황= 개혁이 필요하지만 자체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국 기업에 한국 기업의 설비, 경험, 구조조정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산업계에 이런 필요가 발생한다는 것은 한국기업에 분명히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IT(정보기술) 등 새로운 첨단산업 분야뿐 아니라 공급과잉 대상 산업에서도 기술이전과 결합한 투자 등으로 산업 가치사슬을 고도화하는 데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영화, 애니메이션, 한류 콘텐츠 등을 활용한 문화산업, 의료·미용·건강·실버 등의 헬스케어 분야 등에서 한국의 사업 경험과 높은 서비스 수준이 중국과의 합작에 도움이 될 것이다.
비즈니스워치는 2월24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한중 양국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 대전환, 한국 경제 해법은'을 주제로, 중국의 경제·산업 정책 변화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심층 분석·전망하는 국제경제 세미나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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