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메모리반도체와 디스플레이분야에 중화권 바람이 불고 있다. 폭스콘 모회사로 잘 알려진 대만 혼하이는 최근 일본 샤프를 인수하며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였고, 중국은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기업들이 일제히 대규모 메모리반도체 투자에 나서고 있다.
대만 혼하이의 샤프 인수는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 많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는 아직 기술격차가 존재하지만 자칫 철강 등의 분야에서 경험했던 중국발 공급과잉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샤프 품은 혼하이, 시너지 낸다
대만 혼하이그룹 산하 폭스콘은 최근 일본 샤프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폭스콘은 애플 아이폰 위탁생산기업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회사다. 혼하이그룹은 폭스콘이 샤프를 인수함에 따라 그동안 위탁제조 중심의 사업을 보다 다각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단숨에 규모의 경제와 함께 앞선 기술력을 보강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혼하이 자회사인 이노룩스가 이미 LCD패널 시장에 진입해 있는 상황에서 샤프를 인수함에 따라 중소형부터 대형패널까지 라인업을 보강하게 됐다. 또 그동안 진입하지 못했던 OLED시장 역시 샤프의 기술을 활용해 진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혼하이그룹의 이같은 변화는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에 적지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샤프가 10세대 생산라인을 통해 대형 LCD패널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던 만큼 이 시장에서 경쟁이 더 가열될 것이란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샤프의 10세대 생산라인 인수를 타진한 것도 이같은 경쟁구도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소형 패널시장에서도 혼하이그룹과 애플과의 관계를 감안하면 LG디스플레이와의 경쟁구도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애플이 차기 아이폰에서 OLED패널 탑재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샤프의 OLED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공급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조사기관인 IHS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폭스콘과 이노룩스, 샤프 등 혼하이 산하 회사들의 LCD패널시장 점유율이 올해 21%로 기존 1위였던 LG디스플레이(20%)나 삼성디스플레이(19%)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이같은 현상은 수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시황이 부진한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한국과 대만, 중국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혼하이그룹의 샤프 인수와 관련 한국 패널업체들이 사업구조를 LCD중심에서 OLED로 재편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대형OLED 분야에서 앞서 있는 LG디스플레이와 마찬가지로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대형OLED 투자에 나서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 메모리반도체는 아직은 미풍
메모리반도체 분야 역시 중국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알려진대로 칭화유니그룹은 미국 마이크론에 이어 샌디스크 인수를 추진하는 등 본격적으로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반도체 인력들이 중국으로 스카웃되고 있다는 소식들도 전해지는 상황이다.
최근 중국 XMC는 중국 허베이성 우한에 메모리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계획을 밝혔다. 미국 사이프레스와 손잡고 건설되는 생산라인에는 3단계에 걸쳐 총 240억 달러(한화 약 28조원)이 투자될 예정이다. 중국 정부가 설립한 반도체 기금과 지방정부 자금 등이 투입된다. 그동안 파운드리 사업을 했던 XMC는 낸드플래시를 시작으로 D램까지 영역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칭화유니그룹도 메모리반도체 분야에 약 300억 달러(약 35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칭화유니는 미국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인수를 추진했지만 불발됐다. 지난해에는 SK하이닉스에게 협력의사를 타진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국인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반도체산업을 세계 첨단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설계에서 제조, 패키징과 테스트, 핵심 설비와 소재 등 반도체 생산을 위한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과제를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현재 소수업체로 재편된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생존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은 여전하다. D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개사가 전체 점유율중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낸드플래시 역시 삼성전자, 도시바, 샌디스크, 마이크론, SK하이닉스 등 상위 5개사가 전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메모리반도체 특성상 대규모 투자가 지속적으로 필요하고, 단기간내 기술격차를 좁히기 쉽지 않다는 점 역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예상이다.
실제 선두업체인 삼성전자는 이미 10나노급 D램 양산에 돌입했고, 3D낸드플래시 역시 가장 앞선 상태다. 10나노 D램은 20나노에 비해 약 30%가량 생산효율이 좋다.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도 아직 20나노 제품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중국 업체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선다고 해도 단기간내 간극을 좁히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다만 중국 정부의 자국내 산업육성, 물량공세 등이 시작될 경우 부정적인 영향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추고 나면 과거처럼 치킨게임 양상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다만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이 자리잡는다고 해도 그것이 현실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