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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조선·해운]②'시계 제로' 해운업, 산넘어 산

  • 2016.04.28(목) 17:24

용선료 인하가 관건…현대상선 협상 결과 주목
'기민한' 현대·'늑장' 한진 대조적…해운동맹도 변수

해운업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국적 선사 두 곳 모두 정부와 채권단에게 생사여탈권을 맡겼다. 어떤 형식으로든 현재의 구도는 변화될 것이 자명하다. 정부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한다면 법정관리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만큼 해운업의 상황이 좋지 않다.

먼저 구조조정에 돌입한 곳은 현대상선이다. 경제부총리가 직접 지목할 만큼 현재 상황이 절박하다. 뒤늦게 한진해운도 백기를 들었다. 두 곳 모두 고가의 용선료와 업황 부진 등으로 심각한 상황에 몰려있다. 정부는 선주사들과의 용선료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치라는 조건을 걸었다. 하지만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 용선료에 달린 해운사들의 운명

작년까지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현대상선은 그야말로 벼랑끝에 몰렸다. 한발만 잘못 디디면 추락이다. 현대그룹은 지난 2월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한 추가 자구안을 내놨다. 그룹의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상선이 코너에 몰리자 그룹에서 직접 지원에 나선 것이다. 자칫 현대상선을 잃을 경우 그룹 전체가 흔들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의 추가 자구안은 지금까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관건이었던 현대증권 매각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자산 매각은 물론 현정은 회장의 사재 출연 등 현대상선 살리기에 사활을 걸었다. 채권단도 현대상선의 이런 노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당초 채권단은 현대상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사활을 건 자구노력에 비판적인 태도에서 한 발 물러섰다.


현대상선은 채권단과 지난 3월 조건부 자율협약을 맺었다. 채권단은 자율협약을 통해 현대상선에게 3개월간의 시간을 벌어줬다. 현대상선은 현재 회생의 가장 중요한 키(Key)인 선주사들과의 용선료 인하 협상을 진행 중이다. 1차 협상은 끝났고 2차 협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은 현대상선이 용선료 인하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칠 경우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상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황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던 한진해운도 결국 채권단과의 자율협약 체결에 나섰다. 하지만 한진해운의 경우 현대상선과 비교해 불리한 여건이다. 용선료 인하 협상에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뛰어든 현대상선과 달리 타이밍상 늦은데다, 아직 자체적으로 협상을 진행할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율협약 체결을 위해 채권단에게 제출한 자구안도 채권단이 보완을 요구한 상태다. 여기에 채권단은 현대그룹과 마찬가지로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진그룹측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그룹 차원에서 한진해운에 1조원을 투입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채권단은 더 강도 높고 성의 있는 자구안을, 한진그룹은 더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한진해운의 앞날이 더 불안해 보이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두 국적 선사의 운명은 결국 용선료 인하 협상에 달려있다고 보고 있다. 매년 조(兆)단위의 용선료를 지불해 실적이 무너진 만큼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지원은 없다는 것이 채권단의 입장이다. 작년 현대상선이 지불한 용선료만 1조8793억원이다. 매출액의 24.5%에 달한다. 한진해운의 경우 올해에만 9288억원을 용선료로 지불해야 한다. 내년부터 오는 2020년까지 지불할 용선료 규모는 3조원에 달한다.

◇ 같은 듯 다른 처지

채권단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게 용선료 인하를 조건으로 건 까닭은 분명하다. 만일 구체적인 용선료 인하 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채권단이 지원에 들어간다면 또 다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때문이다. 채권단의 지원금이 고스란히 용선료 지불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채권단의 지원은 무의미해진다.

용선료 인하 협상이 회생의 핵심적 요소라는 점에서 두 해운업체의 상황은 같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뜯어보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처한 입장은 다르다. 한진해운에게 매우 불리한 형국이다. 우선 채권단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다. 현대상선에 대한 채권단의 시선은 '노력하고 있다'는 정도다. 반면 한진해운에 대해서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에 대한 채권단의 입장이 강경한 가장 큰 이유는 한진해운이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와 방법 때문"이라며 "현대상선의 경우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반면 한진해운은 아직 회생을 위한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눈치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한진해운이 용선료 인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현대상선의 협상 결과를 보고 움직이려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용선처가 대부분 겹치는 만큼 현대상선이 인하에 성공한다면 한진해운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무임승차'를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부채의 성격도 문제다. 한진해운은 조정이 쉽지 않은 비협약 채권이 많다. 반면 현대상선의 경우 조정이 가능한 은행 대출이 한진해운에 비해 많다. 한진해운의 부채는 현재 총 6조6000억원 규모다. 이중 은행 대출은 7000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공모 사모 사채와 선박 금융 등이다. 현대상선은 총 4조8000억원의 부채 중 은행 대출이 1조2000억원이다. 회사채 1조8000억원, 선박금융 1조8000억원 규모다.

한진해운의 경우 현재 매각할 수 있는 자산 규모는 약 334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채권단이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과 더 보강된 자구안을 내놓으라고 하는 이유다. 현대상선은 이미 그룹 차원에서 자구안 프로세스를 진행 중에 있다. 한진해운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현대상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진해운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고 보고 있다.

◇ '해운 얼라이언스' 어쩌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게 닥친 또 하나의 문제는 해운 얼라이언스 문제다. 해운사는 자체적으로 전세계의 모든 노선을 커버할 수 없다. 따라서 여러 개의 해운사가 연합해 화물을 운반한다. 이것이 해운 얼라이언스다. 자체 물량 뿐만 아니라 같은 얼라이언스 소속 해운사의 화물도 실어 나른다. 컨테이너선사는 전적으로 얼라이언스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얼라이언스에 포함되지 못하면 생존이 어렵다.

2015년 기준 전세계 해운 얼라이언스는 크게 4개로 나뉜다. 2M, Ocean3, G6, CKYHE 등이다. 현대상선은 G6에, 한진해운은 CKYHE에 소속돼 있다. 1위는 머스크라인과 MSC가 구성하고 있는 2M이다. 그 뒤를 CKYHE와 G6가 추격하고 있다.

문제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채권단의 관리를 받게 되면 이들 얼라이언스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채권단의 관리를 받는 해운사인 만큼 얼라이언스 구축 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 특히 최근 글로벌 해운 얼라이언스의 재편이 이뤄지고 있어 자칫하다가는 얼라이언스에서 탈락해 영업기반을 잃을 수도 있다.

▲ 자료:신한금융투자(그래픽:김용민 기자)

실제로 한진해운이 속해있는 CKYHE의 경우 핵심멤버였던 중국 코스코와 대만 에버그린이 새로운 오션 얼라이언스로 빠져나갔다. CKYHE중 남은 멤버는 한진해운과 약체로 곱히는 일본 케이라인, 대만 양밍 뿐이다. 이에 비해 현대상선은 비교적 양호하다. 현대상선이 속해있는 G6의 경우도 홍콩의 OOCL과 싱가포르의 NOL이 탈퇴했다. 하지만 독일의 하팍로이드가 잔류하고 있어 얼라이언스가 와해될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해양수산부가 장관 명의로 현대상선이 속한 'G6'에 현대상선의 회생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재무상태를 보장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만큼 현대상선이 G6에서 밀려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진해운의 경우 글로벌 얼라이언스에서도 입지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현 상태라면 새로운 얼라이언스 편입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사에게 얼라이언스는 곧 생존의 문제"라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최근 상황은 얼라이언스 잔류 여부와도 연결돼 있는 만큼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만일 법정관리로 가게된다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개별 기업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해운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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