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들 업종에 대해 기본적으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방법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해운업에 대해서 처음에는 합병을 강요했다가 지금은 한 발 물러난 상태다. 조선업에 대해서는 자체 구조조정을 지켜보겠다는 것으로 후퇴했다. 업계에서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이유다.
◇ '갈팡질팡' 해운업
정부는 애초부터 해운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라는 두 국적 선사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운업황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두 업체를 지켜보던 정부는 일단 외형상 한진해운에 비해 더욱 상황이 좋지 않았던 현대상선부터 도마에 올렸다. 정부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을 추진했다.
하지만 외형상으로는 상대적으로 현대상선보다는 나았지만 내용면에서는 오히려 현대상선보다 더 심각했던 한진해운은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합병 소식이 전해지자 엽계에서는 망연자실했다. 말도 안되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당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 방향의 전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예상외로 업계의 반발이 심하자 정부는 슬쩍 방향을 틀었다. 이번에는 매각이었다. 몇몇 대기업에게 현대상선 인수를 타진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였다. 인수 의사를 타진 받은 기업들은 하나같이 난색을 표했다. 현대상선의 상황은 차치하고라도 자신들조차 업황 부진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터였다. 정부가 인수를 타진했던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이렇게 기업 상황을 모르나 싶을 만큼 황당했다"고 회고했다.
▲ 사진=이명근 기자 |
야심차게 빼들었던 합병과 매각 카드가 무용지물이 되자 정부는 당황스러웠다. 시간은 계속 가고 이미 오래 전에 취약업종으로 선정해뒀던 업종들의 업황은 더욱 악화됐다. 자칫하다가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비판을 받을 판이었다. 결국 정부는 총선이 끝나자 경제부총리가 나서 구조조정 본격화를 공식 선언했다. 업계는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경제부총리의 구조조정 속도전 선언 이후 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급물살을 탔다. 한진해운이 백기를 들었고 현대상선은 빨리 용선료 인하 협상 결과를 내놓으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해운업 구조조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합병 혹은 법정관리를 통한 국적 해운사 포기 아니겠느냐고 봤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합병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글로벌 해운 얼라이언스 문제와 더불어 정부가 국적 해운선사에 대한 강제 합병에 돌입할 경우에 발생할 한국 해운업 붕괴에 대해 정부가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일단 각 업체별로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하라고 독촉하고 있다. 만일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정부가 나서 매서운 칼날을 휘두르겠다고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 일단 지켜보겠다
조선업은 해운업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조선업이 처한 구조적 상황을 놓고 보면 해운업만큼 심각하다. 일단 국내 조선업은 작년부터 본격화된 해양 플랜트 부실로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상태다. 여기에 최근에는 수주절벽이 현실화되면서 미래마저 불안한 상황이다. 지난 1분기 조선 빅3의 수주는 6척에 그쳤고 지난 4월에는 단 한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조선업도 정부가 지정한 취약 업종이다. 해운업과 함께 구조조정 대상 업종이다. 하지만 정부는 해운업에 비해 조선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대지 못하고 있다. 고용문제가 걸려있어서다. 현대중공업은 울산,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거제 지역에 포진해있다. 이 지역의 경제를 이들 조선 빅 3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작년 기준 국내 조선업 종사자는 총 20만3282명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쯤에는 이 중 약 15%에 해당하는 약 3만1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주 부진이 계속 이어진다면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자료: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
통상적으로 조선업의 경우 프로젝트별 단기 계약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수주가 줄고 이미 수주한 물량을 인도하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조선업체들의 입장에서는 일감이 줄어드는 만큼 1~3차 협력업체 직원들은 물론 단기 계약을 맺고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가 필요없게 된다. 수주절벽이 고용절벽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정부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각 조선업체들이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그 성과를 보겠다는 생각이다. 섣불리 정부가 잘못 나섰다가는 경제 전반은 물론 지역 경제와 고용에 침체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질 수도 있어서다. 조선업체들의 경우 정부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이상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
이 때문에 최근 현대중공업에서는 노조를 중심으로 3000명 감원설이 불거져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는 채권단을 통해 추가적인 인력 감축 계획을 내놓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아울러 조선 빅3에 대해 채권단에게 자구계획을 제출토록 한 상태다. '알아서 잘 하면' 살리고 만일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셈이다. 해운업체들에게 보낸 메시지와 대동소이하다.
◇ 미래 대비 보다 '규제'에 방점
업계는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일단 수긍은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구조조정 본격 돌입 시기와 정책의 실효성, 해당 기업들에 대한 스탠스 등에 대해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업황 부진이 마치 기업들의 책임인 양 전가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진정으로 이들 업종을 살릴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도 있다.
특히 해운업계에서는 정부가 진행중인 규제 일변도의 구조조정 방식에 대해 불만이 많다. 비슷한 상황에 놓은 여타 해외 해운업체들에 대한 각 국 정부의 정책과 우리 정부의 정책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다. 우리 정부의 정책이 기업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라면 해외 각 국 정부들은 자국 해운업 보호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점은 대조적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중국의 경우 자국 해운사들에 대한 신용 제공은 물론 각종 저리 대출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다. 덴마크, 독일, 프랑스 등도 해운업체와 해운업에 대해 금융 지원은 물론 각종 유·무형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이같은 지원을 바탕으로 국내 해운업체들의 경쟁사들은 새로운 해운 얼라이언스에서 주도권을 쥐는 등 시장 지위를 잃지 않고 있다.
▲ 자료:한국선주협회. |
한 해운업체 고위 관계자는 "우리 정부의 해운업에 대한 홀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된 현상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며 "제일 답답하고 억울한 것은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친 책임까지 기업에게 전가하면서 지원은 커녕 오히려 죽으라고 사지(死地)로 내모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조선업은 해운업과 비교해 시간은 벌어둔 상태다. 일단 기업들에게 구조조정을 맡긴 상황이어서다. 하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조금씩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합병, 위탁경영, 법정관리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들어 대우조선해양 매각 추진설 등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해운업에 들이댄 잣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구조조정안이다.
조선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고용과 경제에 대한 타격 때문에 일단 시간을 줬지만 그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면서 "다만, 정부가 조선업에 대한 비전을 보고 향후 호황기가 도래했을 때 다시 우리 조선업이 일어설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선행된 구조조정이 정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