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거센 풍파 넘은 현대상선 '정상 항로'에 진입

  • 2016.06.11(토) 15:18

용선료 인하 협상 성공…5300억 절감
회생 발판 마련…해운동맹 가입만 남아

법정관리 위기까지 몰렸던 현대상선이 마침내 용선료 인하 협상 타결에 성공했다. 당초 타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뒤집었고, 법정관리까지 가는 최악의 상황도 면했다. 이미 사채권자 집회를 통해 채무재조정에도 성공한 상태다. 남은 것은 해운동맹 가입이다.

현대상선에게 이번 협상 타결은 큰 의미를 지닌다. 당초 추진했던 만큼의 인하율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선주사들의 동의를 이끌어냈다는 자체만으로도 향후 현대상선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기에는 충분하다는 평가다.

◇ 험난했던 협상 과정

현대상선이 4개월간 진행했던 용선료 인하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현대상선은 최근 5개의 컨테이너 선주들과 20% 수준의 용선료 조정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 벌크 선주들로부터는 25% 수준에서 합의 의사를 받았다. 이달 중 모든 선주사들과 본계약 체결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향후 3년 6개월간 지급해야 할 용선료 2조5000억원 중 5300억원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사실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협상에는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았다. 해운업계의 특성상 선주사들이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요구를 받아들일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요구는 엄밀하게 이야기해 계약 파기나 다름 없었다. 현대상선의 입장에서는 선주사들을 상대로 읍소를 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해운업계 불황이 현대상선을 살렸다. 업황 부진으로 전세계 해운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상선도 마찬가지다. 현대상선은 작년까지 5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 현대상선에게 매년 조단위가 넘는 용선료 지불은 큰 부담이었다.


현대상선은 선주사들에게 이런 점을 강조했다. 선주사들도 고민에 빠졌다. 예전같았으면 용선료 인하 요구는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만일 용선료 인하를 거부할 경우 현대상선에게 빌려준 배를 다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업황 부진으로 새로운 용선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의 용선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선주사들도 손해였다.

현대상선은 지난 3개월간 용선료 인하에 사활을 걸었다. 각 선주사들과 개별협상을 벌였다. 반응은 천차만별이었고 상황은 진전되지 않았다. 결국 현대상선은 대표적인 선주사 5곳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심지어 영국의 조디악(Zodiac maritime)은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요구에 반발해 협상에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조디악의 불참은 현대상선에 대한 업계의 시선이 우려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산은의 설명을 듣고 본국으로 돌아간 여타 선주사들도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업계와 시장의 우려는 점점 더 커져갔다. 일각에서는 현대상선의 법정관리를 기정사실화 했다. 선주사들과 협상에 돌입했던 지난달 18일 1만3300원까지 올랐던 현대상선의 주가는 협상 이후 실망감이 반영되며 6거래일만에 41.3%나 급락했다.

◇ 조디악이 갈랐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협상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던 영국의 조디악이 방향을 튼 것이다. 당초 조디악은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요구에 대해 기존의 입장을 번복, 현대상선의 요구에 대해 긍정적인 검토를 하기 시작했다. 협상에 참가했던 여타 선주사들의 의견과 현대상선의 입장 등을 전해들은 이후 내부적으로 많을 고민을 했다는 후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디악도 겉으로는 강경 입장을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여러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판알을 튕겨본 결과 현대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자신들이 입을 손해와 현대상선을 법정관리로 내몰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조디악이 태도를 변경하면서 협상은 다시 급물살을 탔다. 조디악의 입장 변화는 여타 선주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18일 협상 이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선주사들이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배를 돌려받아도 손해를 보는 것보다 현대상선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고 현대상선의 회생을 기다려보자는 의견이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선주사들은 전향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 조디악의 태도 변화는 현대상선 용선료 인하 협상에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선주사들도 내부적으로 분석한 결과 현대상선과 산업은행이 제시한 손실 보전안이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시간이 걸린다는 점은 리스크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는 점이 선주사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현대상선은 향후 남은 계약 기간의 용선료를 인하하는 대신 인하분의 절반가량을 현대상선 주식으로 출자전환하고 정상화 이후 발생하는 이익을 배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결국 글로벌 해운경기 침체와 조디악의 태도 변화가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원인이 된 셈이다.

◇ 고지가 보인다

현대상선은 채권단이 제시한 '용선료 인하 협상 성공→사채권자 집회 채무조정 성공→해운 동맹 가입→회생 발판 마련'의 프로세스 중 주요 고비를 모두 넘어섰다. 사채권자 집회를 통한 채무조정도 지난달 31일과 지난 1일 두 차례에 걸쳐 이미 해소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해운동맹 가입이다.

현대상선은 현재 독일 하팍로이드·일본 MOL·NYK 등 3개사가 새롭게 구성한 해운동맹인 'THE 얼라이언스' 편입을 위해 노력 중이다. 한진해운은 이미 가입돼 있는 상태다. 분위기는 낙관적이다. 'THE 얼라이언스'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많은 해운업체가 가입해야 동맹의 힘이 커진다. 그런만큼 현대상선의 가입 움직임을 반기는 입장이다.

▲ 현대상선에게 이제 남은 것은 해운동맹인 'THE 얼라이언스' 가입이다. 분위기는 낙관적이다. 'THE 얼라이언스' 구성원들은 현대상선의 가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THE 얼라이언스' 구성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가입을 승인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형식적인 절차만 남았다는 이야기다. 현대상선이 비록 당초 목표했던 용선료 인하폭인 28.4%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20%대의 비교적 높은 수준의 인하율을 받아낸 것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회생을 위한 노력을 보여준데다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용선료 인하 협상을 이뤄낸 만큼 해운동맹 가입에 걸림돌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생각이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은 향후 채권단의 출자전환 등을 통해 총 1조1000억원 이상의 부채를 자본으로 전환, 부채비율을 200%대로 낮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렇게 되면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소속이 아니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최대주주가 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용선료 인하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전체적인 회생 작업에 큰 힘을 얻었다"며 "남은 해운동맹 가입도 순조로울 것으로 보이는 만큼 회생을 위한 발판은 거의 모두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