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하던 수입차 시장이 움츠러 들고 있다. 폭스바겐 사태의 후폭풍이 크다. 유례 없는 성장을 거듭하던 수입차 시장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물론 여전히 수입차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은 많다. 하지만 과거 처럼 선뜻 수입차를 선택하는 경향은 줄었다. 수입차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서다.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트렌드도 변하고 있다. 중저가 차량보다 고급차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수입 대중 브랜드에 대한 신뢰 하락 탓이다. 변화하는 수입차 시장의 현황과 전망 등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폭스바겐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이런 트렌드는 계속됐다. 수입차 시장은 매년 성장했고 그 원동력은 중저가 차량이었다. 대중차 브렌드인 폭스바겐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급차와 저가차의 성장이 뚜렷하다. 양극화 현상이다. 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 고급차, 시장을 지탱하다
폭스바겐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컸다. 폭스바겐의 빈자리 탓에 시장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판매량 감소는 물론 소비자들의 인식까지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소비자들이 수입차에 열광했던 것을 감안하면 최근의 시장 상황은 무척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시장 조사 전문 업체인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향후 2년 내 새차 구입의향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입차 구입 의향이 종전 15.5%에서 13.6%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수입차 업계의 구매 의향률은 수입차 판매 점유율과 비례해 나타났지만 최근 1년간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 컨슈머인사이트의 설명이다.
▲ 3000만~5000만원대에 위치하던 폭스바겐이 빠지면서 그 자리를 같은 독일계 브랜드인 BMW와 벤츠가 빠르게 가져 가고 있다. 이에 따라 5000만~1억원에 포진해 있는 이들 브랜드의 차량 판매가 늘어나면서 고가 수입차 판매가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
또 폭스바겐의 영향으로 독일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도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독일 수입차 브랜드 선호율은 작년 68.9%에서 올해 57.7%로 11.2%포인트 감소했다. 폭스바겐의 빈자리를 벤츠와 BMW가 빠르게 흡수하고 있지만 동시에 여타 유럽계와 일본, 미국 브랜드들도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벤츠와 BMW의 판매 확대는 고급차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5000만~1억원 수입차는 총 9121대가 판매됐다. 이는 전년대비 13.7% 증가한 수치다. 1억원 넘는 수입차 판매량도 1458대로 전년대비 9.8% 늘어났다.
그동안 1억원이 넘는 수입차 판매는 작년까지 계속 증가추세였다, 하지만 정부가 업무용 차량에 대한 과세 기준을 강화하면서 고가 차량의 판매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실제로 지난 7월까지 1억원 이상 고가 수입차의 판매량은 전년대비 21.1% 감소한 1만1246대를 나타냈다. 그러던 것이 지난달에는 플러스로 전환됐다. 결국 폭스바겐이 빠진 자리를 고급 브랜드들이 채우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 2000만원대에 몰린다
최근의 이런 현상을 '양극화'로 보는 것은 고가 수입차 뿐만 아니라 2000만~3000만원대 수입차의 판매도 늘어나고 있어서다. 폭스바겐이 빠지면서 폭스바겐이 위치했던 3000만~5000만원대의 절대적인 공급 물량이 줄었다. 이 가격대에서 폭스바겐이 절대 강자였던 만큼 물량 부족과 신뢰 추락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다른 가격대로 눈을 돌리게 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8월까지 3000만원 이하 수입차 판매는 전년대비 13% 증가한 6163대를 기록했다. 이처럼 중저가 수입차 판매가 늘어난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가격은 소비자들이 수입차 시장 진입 여부를 고려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 푸조 2008은 판매 가격을 3000만원 아래로 잡으면서 수입 소형 SUV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밖에도 많은 업체들이 3000만원 아래의 가격으로 신차들을 선보이면서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다. |
이에 따라 푸조, 시트로엥, 닛산, 혼다 등 여러 브랜드들은 올해 들어 적극적으로 3000만원 아래 가격의 신차들을 선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푸조의 소형 SUV 2008이다. 푸조 2008의 가격은 2880만원으로 3000만원 미만이다. 올들어 지난 8월까지 총 1273대가 판매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닛산도 그동안 3000만원 미만의 가격대에서는 준중형급만 선보인다는 편견을 깨고 중형 세단인 알티마를 2990만원에 내놨다. 지난 4월 출시된 알티마의 판매량은 전년대비 40% 증가한 1944대를 나타냈다. 결국 폭스바겐의 빈자리를 폭스바겐 상위 브랜드와 하위 브랜드가 재빨리 나눠가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 사태가 불러온 시장의 변화는 매우 빠르고 범위도 넓다"며 "주목할 만한 것은 상위 브랜드 업체와 하위 브랜드 업체가 재빨리 폭스바겐을 대체하면서 생각보다 전체 판매 감소분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전반적인 신뢰하락은 어쩔 수 없는 만큼 절대적인 판매 감소는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또 다른 변화는
변화는 이 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국내 수입차 시장을 주름 잡았던 디젤 모델들의 인기가 급감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만한 변화다. 국가별 브랜드 점유율에도 변화가 생겼다. 요약하자면 독일의 디젤 모델들에 대한 인기는 줄어들고 일본, 미국, 여타 유럽 브랜드의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모델들이 시장을 견인하는 형태다.
지난 8월 디젤 모델의 판매량은 8664대다. 전년대비 34.1%나 감소했다. 점유율도 작년 72.3%에서 올해 54.4%로 급감했다. 누적 판매량도 마찬가지다. 올들어 지난 8월까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판매된 디젤 차량 대수는 전년대비 15.4% 감소한 9만2626대였다. 점유율은 전년대비 6.6%포인트 하락한 62.4%였다.
반면 가솔린 모델의 판매량은 늘었다. 8월 가솔린 모델 판매량은 전년대비 33.7% 증가한 6195대였다. 점유율은 38.9%로 전년대비 13.4%포인트 증가했다. 누적으로도 전년대비 7.3% 늘어난 4만6683대였다. 점유율도 27.4%에서 31.5%로 증가했다.
▲ 자료:한국수입자동차협회(단위:대). |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하이브리드다. 가솔린의 판매 증가는 폭스바겐 디젤 사태에 따른 풍선효과로 보인다. 하이브리드도 마찬가지다. '클린 디젤'인 줄 알았던 폭스바겐의 디젤이 '더티 디젤'이이 밝혀지면서 친환경차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그 영향으로 하이브리드 판매량이 증가추세에 있다는 분석이다.
8월 수입차 중 하이브리드 차량의 판매량은 전년대비 194.1% 늘어난 1050대였다. 누적으로는 65.5% 증가한 8955대를 기록했다. 절대적인 판매량은 아직 가솔린이나 디젤에 못미치지만 급격하게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향후 하이브리드카를 중심으로 한 친환경차 시장의 확대를 점쳐볼 수 있는 대목이다.
폭스바겐 사태는 독일차 일색이었던 수입차 시장의 경쟁 구도도 바꿔놨다. 작년 독일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69.4%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 8월 독일차 점유율은 54.8%까지 떨어졌다 누적으로는 여전히 69.2%를 기록, 소폭 감소에 그쳤지만 연말에는 감소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일본과 미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