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병신년(丙申年)이 저물고 정유년(丁酉年)이 다가온다. 재계는 올해보다도 훨씬 힘든 경영 환경과 마주해야 한다. 세계 경제회복이 더딘 가운데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여기에 '최순실 게이트'의 소용돌이까지 가세하면서 그야말로 '내우외환' 상태에 빠져있다. 내년 예상되는 주요 경영 변수를 정리해본다. [편집자]
"방송이나 광고에 한한령(限韓令, 한국물 제한 명령)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중국은 양국 인문교류에 대해 적극적 태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교류는 민심을 기초로 한다는 걸 모두 알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한국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THAAD)'를 배치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 이 역시 모두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중국인들도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유관기관이 이런 정서를 반영했을 수 있다."
지난달 21일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한한령 실체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류 문화 콘텐츠 산업과 관련한 언급이었지만, 사드와 관련한 중국의 속내를 가장 명확히 드러낸 발언이었다는게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 韓기업 중국 사업 잇단 태클..배경엔
한국과 중국 사이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한 지 1년이 됐지만 양국간 무역 교류는 오히려 줄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바탕에 깔려 있지만 사드반감에 대한 비관세장벽 압박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수출 산업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재계 내년 경영의 무시할 수 없는 난제다.
지난 7월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국내에 사드 체계를 배치하겠다는 발표를 한 뒤, 중국은 곧바로 "전략적 안전을 엄중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이에 대해 분명히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스스로의 안전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치적 긴장감은 중국 사업을 하는 국내 기업들에게로 불똥이 튀었다. 양국은 정경 분리 원칙을 기본으로 1992년 이후 경제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눈에 드러나는 직접적 제재를 꺼내지 않고도 간접적 조치를 잇따라 시행하면서 재계에 위협을 줬다.
중국은 지난 1월 한국 사드 배치 가능성이 거론되자 삼성SDI, LG화학 등 국내업체가 주로 생산하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해 안전성을 문제 삼으며 이 배터리를 장착하는 전기버스에 대한 보조금을 끊었다.
사드 배치 발표 뒤인 8월에는 화장품 수출에 제동이 걸렸다. 중국이 화장품 수입의 위생 기준을 강화한 것이다. 실제로 한 국내 화장품 업체는 최근 통관검사에서 '성분 불합격' 처분을 받았고, 대기업 계열 한 소비재 수입 업체는 최근 지난 2년 간 물량에 대해 관세 전수조사를 받은 뒤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9월에는 중국 당국이 한국산 설탕의 수입이 급증했다는 이유로 수입량 제한을 검토하기도 했다. 이어 11월에는 태양광 재료인 폴리실리콘의 관세가 중국 내 기업을 위협할 정도로 낮다며 재조사에 돌입했는데 유독 우리나라 제품만 대상에 올렸다.
▲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
◇ 제 2의 마늘파동 일어날까..재계 '노심초사'
최근에는 국내 항공사들의 중국 노선 확대가 가로막히기도 했다. 예정됐던 항공회담에 대해 중국이 일방적으로 연기를 통보해 오면서다. 2014년 17개 노선, 작년 6개 노선이 추가 배분됐된 중국 항로는 올해 신규 발굴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중국 노선 배분을 기다려온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실망감이 크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 역시 중국의 사드 견제가 배경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금껏 중국이 우리나라 기업 활동에 내린 부정적 조치들이 꼭 사드 때문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중국 역시 공식적 제재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인 중국이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직접적인 경제제재나 무역보복에 나서기 어려운 까닭이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도 '민심'을 언급하며 사드에 대한 압박을 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중국이 펴는 일련의 조치는 꼭 1년전인 작년 12월20일 발효된 한중 FTA 성과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올해 들어 11월까지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1124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9% 줄었다. 수입은 4.8% 감소해 전체 교역규모 감소폭은 8.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한·베트남 FTA로 양국 교역 규모가 전년 대비 15%(10월 기준) 늘어난 것이나, 2010년 한·미 FTA 발효 1년 후 대미 수출이 4.1%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인 부분이다.
중국 내 한국 수출품 점유율도 위협받고 있다. 중국해관에 따르면 중국 수입 시장에서 한국상품 점유율은 작년 10.88%에서 올해(1~10월) 10.07%로 0.81%포인트 낮아졌다. 6년 전인 2010년(9.9%)에 근접한 수준이다. 반면 일본과 독일은 작년보다 점유율을 각각 0.31%포인트, 0.1%포인트 높였다.
업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중국 정부의 내수화 정책과 원자재 가격 하락이 대중 수출 실적 악화의 주요인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하지만 사드 등을 빌미로 한 비관세 장벽 작용이 악화를 더 부추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드 배치가 현실화되면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많다.
정부 한 관계자는 "사드 배치뿐만 아니라 트럼프 당선 등의 이슈로 한국의 2대 수출 시장인 미-중간 통상 마찰이 심화될 것까지 대비해야 할 때"라며 "정치·외교적 이슈가 과거 '마늘파동' 같은 경제적 부작용을 낳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