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글로벌 철강업계는 대반전을 맞았다. 수년간 부진했던 업황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철강업황의 부진은 심각했다. 수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아야 했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철강 수요 산업도 부진했다. 수요는 없고 공급은 늘었다. 제품 가격은 계속 떨어졌고 재고만 늘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중국 탓이 컸다. 중국의 철강업체들은 공장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설비를 놀게할 수 없어서다. 중국에서 생산된 철강 제품들은 갈 곳을 찾지 못했다. 그 제품들은 결국 인근 국가로 쏟아졌다. 품질은 낮았지만 가격 경쟁력에 밀려 주변국이 교란당했다. 한국 시장이 그런 처지였다.
◇ 중국에서 시작된 악몽
중국의 경제 성장 속도는 무섭도록 빨랐다. 순식간에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만큼 급성장했다.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철(鐵)이다. 철은 '산업의 쌀'이다. 중국은 산업 발전을 통해 고도 성장을 이뤘다. 그만큼 철에 대한 수요가 많았다.
중국 경제의 고도 성장과 더불어 중국 철강 업체들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대규모 토목공사는 물론 각종 산업에서 필요한 철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부족했다. 철강제품의 원료인 철광석과 석탄도 모두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은 각종 원료를 빨아들이는 하나의 거대한 블랙홀과도 같았다.
중국 철강산업의 성장은 글로벌 철강업계에도 호재였다. 지난 2004년 글로벌 조강생산량은 10억톤을 넘어섰다. 중국 정부는 해외에서 철강제품을 수입함과 동시에 자국 철강 산업 육성에도 적극 나섰다. 이것이 중국 철강업체가 난립하게된 원인이다.
▲ 자료:세계철강협회(단위:톤) |
중국 철강업체들은 정부의 지원 아래 급성장했다. 만드는 대로 제품이 팔려나갔다. 그만큼 수익성이 좋았다. 블루오션이었다. 그 덕에 지난 2014년 중국의 조강생산량은 글로벌 조강생산량의 50%를 넘어섰다. 중국이 글로벌 철강업계를 좌지우지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가격 움직임이 글로벌 철강제품 가격 변동의 기준이 됐다.
호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공 행진을 거듭하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곧 철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원인이 됐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중국 철강업체들은 철퇴를 맞았다. 생산한 철을 판매할 곳이 없어졌다.
이미 벌여놓은 생산시설을 줄일 수는 없었다. 고용 문제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수요는 없는데 생산은 계속해야했다. 글로벌 철강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공급과잉의 시작이었다. 중국의 공급과잉은 모두에게 재앙이었다.
◇ 국내 시장에 불어 닥친 한파
판로를 잃은 중국 철강업체들은 밖으로 눈을 돌렸다. 가장 적합한 곳이 한국이었다. 거리도 가까운데다 조선산업 등 철강 수요도 있었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후판 등을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었다. 중국은 이를 노렸다. 자국의 재고 물량을 한국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중국산 철강제품은 한국 시장을 교란했다. 품질이 낮았지만 가격이 쌌다. 마침 국내 경기도 침체된 상황이었다. 업체들은 원가절감을 위해 값싼 중국 제품들을 사용했다. 품질이 낮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가격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 자료:한국철강협회(단위:만톤) |
그 결과, 국내 철강 시장에는 저가의 중국 물량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국내 전체 수입 철강 물량 중 중국산 물량의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이후에도 계속 증가해 2015년에는 중국산 철강재의 시장 점유율이 25%까지 올라갔다.
중국산 제품이 넘쳐나자 국내 철강 시장은 요동쳤다. 국내 철강업체들은 업황 부진 탓에 수년째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하지 못했다. 실적은 더욱 악화됐고 버티기에 급급했다. 국내 업체들은 저가 중국산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가격 인상을 억제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조선산업 등 철강 수요 산업들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국내 철강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수요는 줄고 그나마 있던 수요마저 저가의 중국 물량이 가져갔다. 업황 부진에 수요부족, 중국산 물량 유입으로 국내 철강 시장에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 중국 정부가 나서다
중국 발(發) 공급 과잉으로 글로벌 철강업계의 원성이 높자 중국 정부가 나섰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자국내 철강산업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다. 업황 부진의 원흉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래도 버텼다. 대외적으로는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나서지 못했다. 일자리 감소와 산업 위축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작년 중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철강산업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 의지를 표명했다. 중국은 작년 공식적으로 '신창타이(新常態:중속성장 시대)시대' 진입을 선언했다. 아울러 '바오치(保七:경제성장률 7%)'의 공식 종료와 함께 오는 2021년 공산당 창건 100주년에 맞춰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단계인 전면적 '샤오캉(小康)사회'로의 진입을 천명했다.
경제 성장 속도를 고속 성장에서 중속 성장으로 전환하면서 중국 정부는 한계 산업에 대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한계 산업을 계속 끌고갈 경우 중속 성장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중속 성장을 선택한 것은 경제의 질적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따라서 한계 산업을 선정해 구조조정을 단행키로 결정했다.
▲ 중국 정부의 한계산업 정리 방침에 따라 중국의 철강업도 작년부터 정부 주도의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
철강산업은 중국 정부에 의해 한계 산업으로 분류됐다. 그동안 묵과해왔던 것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었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직접 나서 철강산업의 설비 축소를 지시했고 중앙정부의 정책에 따라 지방정부도 철강 구조조정에 나섰다.
중국 철강업체들은 하나둘씩 설비 합리화에 돌입했다. 그 결과 재고가 줄고 공급 과잉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소되는 기미를 보였다. 이는 국내 철강 산업에도 영향을 줬다. 중국 물량 유입이 줄어들면서 제품 가격 인상을 위한 조건이 마련됐다.
작년 국내 철강업체들은 일제히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시장에 충격을 줄이기 위해 제품별로 단계적으로 시행했다. 그만큼 조심스러웠다. 호재인 것은 맞지만 중국의 공급과잉이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어서다. 물론 지금도 공급과잉이 해소됐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 제품가격 인상은 억눌렸던 국내 철강 시장에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