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철강 경기는 수년간 부진을 거듭했다. 중국 발(發) 공급과잉 탓이다. 매년 중국 정부가 구조조정 의지를 피력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드디어 작년 반전이 있었다.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국내 철강업체들은 이를 바탕으로 호실적을 거뒀다. 여기에 국내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해왔던 구조조정이 빛을 발했다.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있다. 국내 철강 산업의 현황과 회생 가능성 등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작년 국내 철강 업체들의 호실적 원인에는 외부 요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내 철강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이것이 외부 환경 변화와 맞물리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결국 철강업체들의 호실적은 외부 요인과 내부의 노력이 결합한 산물이었던 셈이다.
◇ 상승세를 타다
작년 3분기까지 국내 철강사들의 실적은 호조세를 보였다. 물론 업체별로는 차이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상승세를 탔다고 해도 무방했다. 수년간 지속된 업황 부진을 감안하면 작년 실적은 오랜만에 경험하는 호실적이었다. 여타 산업들이 경기 침체의 여파로 힘겨워하고 있던 때라 의미는 더욱 컸다.
실제로 포스코의 경우 작년 3분기에 4년만에 다시 영업이익 '1조 클럽'에 재가입 했다. 2015년 4분기에 연결기준 영업이익 3410억원으로 바닥을 친 뒤 쭉 상승세를 이어갔다. 중국의 철강 산업 구조조정으로 제품가격을 인상할 수 있었던 것이 실적 상승의 큰 힘이 됐다.
▲ 단위:억원. |
현대제철은 여타 업체들에 비해 큰 호조를 보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꾸준함을 보여줬다. 작년 1분기 269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주춤하는가 싶더니 2분기에 바로 치고 올라갔다. 3분기에는 전기대비 주춤한 모습이었지만 전년대비 괜찮은 성적을 보이며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국제강은 2015년 1분기 581억원의 영업손실을 입었지만 이후 반등에 성공했다. 작년 3분기까지 6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 갔다. 포스코나 현대제철에 비해 이익 규모는 작지만 그동안 적자의 늪에서 허덕였던 것을 감안하면 동국제강의 선전은 업계에서도 주목할만한 일로 평가된다.
이처럼 국내 철강 업체들은 작년 3분기까지 실적 상승세를 유지했다. 국내 철강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변화가 가장 큰 원동력이다. 문제는 이런 상승세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다. 업계와 시장에서는 국내 업체들이 업황 변화에 잘 대처한데다 수익성 확보 노력이 궤도에 오른 상태여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중국 덕만은 아니다
중국의 변화에 따른 제품 가격 인상이 국내 업체들이 선전할 수 있었던 요인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실적이라는 것이 단순히 외부 환경이 변화했다고 해서 급작스럽게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는 것이 아니어서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국내 철강업체들이 추진해왔던 구조조정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불황의 늪이 깊어지자 이에 대처하기 위해 국내 업체들은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해왔다. 수익성 확보를 지상 목표로 삼고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 우호적으로 변한 외부 환경과 맞물리면서 시너지를 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포스코는 권오준 회장 취임 이후 끊임없이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 정준양 전 회장 시절 문어발식으로 확장했던 외형을 줄이고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했다. 포스코는 비핵심 계열사 정리, 유휴 자산 및 지분 매각 등을 통해 본업인 철강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조 만들기에 전념했다.
총 149건의 구조조정안을 만들었고 작년까지 총 98건을 완수했다. 평균적으로 분기당 10건의 구조조정을 완료한 셈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한층 슬림해진 포스코는 점점 예전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의미있는 변화라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현대제철의 경우 강력한 오너십과 수직계열화를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자동차 강판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관련 업체 인수·합병을 통해 내실을 다졌다. 그 결과 포스코의 유일한 대항마로 성장하면서 수직 계열화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동국제강은 가장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주력이었던 후판 사업이 조선업과 건설업 침체로 어려워지자 후판 비중을 대폭 줄였다. 공장 폐쇄를 단행할 만큼 과감한 선택이었다. 자존심이었던 사옥도 매각했다. 외형보다는 수익성이 집중하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신 컬러강판 등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동국제강은 이제 구조조정을 통한 회생의 대명사가 됐다.
◇ 내용도 좋았다
국내 철강업체들의 구조조정은 단순히 외형만 줄이는 것이 아니었다. 구조조정을 계기로 체질도 개선했다. 고비용 구조을 없애고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확대에 매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고질적인 문제였던 재무구조개선도 이뤄냈다. 업황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을 키운 셈이다.
특히 포스코의 경우 과거 무리한 확장으로 재무건전성이 크게 악화된 상태였다. 권오준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재무건전성 회복을 천명할 만큼 포스코의 곳간은 황폐했다. 하지만 꾸준한 구조조정 덕에 포스코는 점점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포스코의 지난 3분기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전기대비 5.5%포인트 낮아진 70.4%를 기록했다. 연결 회계 기준을 도입한 이래 최저 수준이다. 별도 기준 부채비율도 16.9%로 창업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차입금도 연결기준으로 전기대비 2조2643억원이 감소했다. 별도 기준으로는 자체 보유 현금이 외부 차입금 보다 많았다.
동국제강도 마찬가지다. 별도 재무제표 기준 이자보상비율은 2.5로 지난해 말(1.05)보다 2배 이상 개선했다. 또 3분기에만 1480억원의 차입금을 상환하며 총 3200억원 상당의 차입금을 줄였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도 지난 2013년 179.5%에서 작년 3분기 134.5%까지 낮췄다. 신용등급도 올랐다. 한국기업평가는 동국제강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BB+로 상향 조정했고 등급전망도 안정적으로 평가했다.
현대제철은 그룹의 지원과 자동차 강판 판매 등을 통한 수익성 확보 노력에 힘입어 작년 3분기 기준 부채비율을 88.9%까지 낮췄다. 지난 2015년 현대제철의 부채비율은 96.9%였다. 여기에 원가절감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현대제철은 재무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