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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스톡옵션 뜯어보니…

  • 2017.03.15(수) 16:40

"경영지표 심각" 경고후 15년만에 부활
임기내 행사 가능…사업재편 '속도전'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서든데스(Sudden Death·갑작스러운 죽음)할 수 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지난해 6월30일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SKMS연구소. 최태원 회장이 예정에 없던 확대경영회의를 열고 그룹의 핵심임원 40여명을 불러들였다. 최 회장은 뿌리부터 변하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서든데스' 발언 이후 SK그룹의 변화에는 속도가 붙었다. 최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50대 임원들이 계열사 최고경영자로 전진배치됐고 주력 자회사의 사업재편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전세계 낸드플래시 반도체 2위인 일본 도시바 인수를 검토 중이고, SK네트웍스는 성장성이 높은 렌털사업을 위해 동양매직을 인수하는 대신 비주력사업인 패션사업을 내다팔았다.

SK이노베이션도 바이오 의약품과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정관에 추가하는 등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먹거리를 향해 한걸음씩 내딛는 모양새다.

 


◇ '서든데스' 경고 후 꺼내든 당근

한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은 1990년대 후반 국내에 도입돼 유행처럼 번지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시들해진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제도를 부활시킨 점이다.

스톡옵션은 일정 규모의 자사주식을 일정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다. 주가가 미리 정한 가격(행사가액)을 웃돌때 스톡옵션을 행사하면 그 차액만큼 이익을 볼 수 있다. 임직원에 대한 동기부여책이자 보상제도다.

SK㈜는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장동현 사장에게 각각 6만7733주, 5만6557주를 부여했고, SK텔레콤은 박정호 사장에게 6만6504주, SK하이닉스는 박성욱 부회장에게 29만8800주를 스톡옵션으로 주기로 했다.

SK그룹 관계자는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고 주주에 대한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경영진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키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스톡옵션 효과 없다더니…

지금도 IT업계를 중심으로 스톡옵션제를 시행하는 곳이 있지만 삼성·현대차·LG 등 대기업들은 득보다 실이 크다며 제도 자체를 폐지한지 오래됐다. ▲경영진이 단기성과에 집착하기 쉽고 ▲스톡옵션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 위화감이 조성되는 등 부정적 측면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SK그룹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까지 SK텔레콤 등 몇몇 계열사가 임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줬지만 그후 15년간 사문화된 조항으로 남아있던 게 스톡옵션제도다.

당시 스톡옵션과 관련해 SK그룹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2005년 삼성이 스톡옵션 폐지를 발표하자 재계의 시각을 소개하는 기사인데, 'SK 관계자'의 발언이 이렇게 소개돼있다.  

"책임경영을 독려하자는 취지였는데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고, 주가가 경영실적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아 다시 이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한겨레, 스톡옵션 '풀린 고삐' 다시 죄나, 2015년 9월13일)

◇ "주가 올려라" 사실상 특명 

SK그룹 스스로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스톡옵션을 다시 꺼낸 것은 최 회장의 '서든데스' 발언과 무관치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최 회장은 구체적인 숫자를 들이대며 작심발언을 했다.

"현실의 SK그룹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고 대부분의 관계사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각종 경영지표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SK 임직원은 스스로도 행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SK 역시 사회에 행복을 제대로 줄 수 없는 상황이다."(최태원 회장 발언中)

회사가 주주들의 돈(자기자본)을 활용해 어느 정도 이익을 올리는지 나타내는 지표가 ROE다. PBR은 주가가 순자산에 비해 몇배로 거래되는지를 의미한다. ROE나 PBR이 낮다는 것은 회사가 주주들이 모아준 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두 가지 지표를 높이려면 돈이 되는 사업에 집중하고, 주가를 끌어올리는 조치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 경영진에게 스톡옵션이라는 당근을 제시한 것이다. 쉽게 말해 충분히 보상해줄테니 성과를 내라는 얘기다. 최 회장과 전문경영인이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가 됐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 '임기내 최대한 성과내라' 

문제는 회사의 성과와 주가 움직임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 회사가 사업을 잘해서 주가가 올랐는지 주식시장 전반의 분위기가 좋아 올랐는지 구분하는게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스톡옵션을 부여할 때 미리 설정한 경영목표를 달성하거나 주가지수 대비 더 높은 성과를 냈을 때 스톡옵션을 행사토록 하는 '성과연동형'도 있지만 SK그룹은 이런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현 시점의 주가만 유지된다면 경영자로선 크게 손해볼 일이 없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SK그룹은 기존에는 부여일 이후 3년 뒤부터 행사토록 규정한 조항을 고쳐 2년뒤(2019년)부터 가능하도록 했다. 경영진의 임기(통상 3년)내 최대한 주가를 끌어올리라는 신호로 풀이된다.

다만 부여받은 스톡옵션의 3분의 1은 3년 뒤(2020년) 주가가 지금보다 8% 이상, 나머지 3분의 1은 4년 뒤(2021년) 지금보다 16% 높은 가격에 행사할 수 있도록 조건을 달아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혜택이라는 비판을 살짝 피해갔다.

◇ 공격성향 일깨울까

SK그룹의 향후 행보도 관심을 끌고 있다. 스톡옵션은 경영진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을 자극하는 달콤한 사탕과 다름없다. 좌고우면하다 기회를 놓치기보다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쪽으로 선택을 유도한다. 최고경영자를 정점으로 기업문화가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그룹내 비중이 크지 않은 사업은 정리해 현금화한 뒤 신사업을 위한 실탄으로 삼고, 타인자본(부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여지도 커진다. SK네트웍스가 패션사업을 매각한 게 대표적인 예다. 여기에 SK그룹은 주력계열사의 부채비율이 100% 미만(한국기업평가 'SK그룹 현황과 주요 모니터링요소', 2015년말 기준 86.5%)이라 차입금에 대한 부담이 덜한 편이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스톡옵션은 사업재편과 관련해 최고경영자들에게 열심히 뛰라는 신호를 준 것"이라며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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