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간을 꿈꿨다. 고로에서 쇳물을 뽑아 슬래브를 만들고, 이를 가공해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꿈 말이다. 고로가 있어야 쇳물을 뽑아 슬래브를 만들고, 이를 가공해 웬만한 철강제품을 다 만들 수 있다.
고로가 없었다. 전기로만 갖고 서는 철근 등 일부 제품 밖에는 생산할 수 없었다. 슬래브는 사다 썼다. 1954년 창립한 동국제강의 일관제철소의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 12년 만에 결실 맺다
지구 반대편인 브라질에서 기회를 찾았다. 2005년, 동국제강의 기획 아래 브라질 현지에 고로 제철소를 짓는 프로젝트를 구성했다. 이후 브라질 철광석 공급업체인 발레(Vale), 국내 철강업체 포스코와 손을 잡았다. 동국제강 브라질 CSP(Companhia Siderurgica do Pecem, 뻬셍철강주식회사)제철소의 시작이었다.
동국제강은 22일 당진공장에서 브라질 CSP제철소에서 생산된 슬래브 입고 기념식을 개최했다.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과 에두아르도 빠렌찌(Eduardo Parente) CSP제철소 CEO 등을 비롯해 고객사 및 관계사 경영진 70여명이 참석했다.
장세욱 부회장은 “회사 설립 이래 고로를 건립해야겠다는 꿈을 갖고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검토한 결과 브라질에서 고로제철소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며 “여러 우여곡절 끝에 CSP에서 생산된 슬래브가 당진공장에 들어오게 됐고, 이를 위해 힘써준 여러 관계자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CSP제철소는 2012년 4월 착공, 4년여에 걸쳐 공사를 마무리 짓고 지난해 6월 10일 화입식을 가졌다. 발레가 지분 50%로 최대주주이며 동국제강 30%, 포스코가 20% 지분을 갖고 있다. 브라질 북동부 쎄아라주(州) 빼셍 산업단지에 위치하며 연산 300만톤급 규모다. 이 프로젝트에는 총 55억 달러가 투자됐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브라질 CSP제철소는 브라질 북동부 지역 최대 외자유치 사업으로 북동부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브라질 정부의 국책사업”이라며 “대표적인 한국과 브라질 경제 협력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 브라질 CSP제철소에서 생산된 슬래브가 약 50일, 1만9738km의 항해 끝에 지난 18일 동국제강 당진공장에 도착했다. |
CSP에서 생산된 슬래브는 1만9738km의 바닷길을 거쳐 지난 18일 당진공장에 도착했다. 동국제강은 회사 설립 이후 63년 만에 처음으로 자체 고로에서 생산된 슬래브를 활용해 철강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에 도착한 슬래브는 5만8751톤이며 올해 총 25만~30만톤 정도가 당진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동국제강은 CSP에서 생산된 슬래브를 내년에는 최대 60만톤 규모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 고급강 슬래브 활용.. 포트폴리오 다각화
동국제강은 그 동안 고품질 후판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고급강 슬래브에 목말랐다. 자체적으로 슬래브 생산이 불가능해 전량 수입에 의존했는데, 고급강 제품은 경쟁사 견제 등의 이유로 수입이 어려웠던 탓이다.
동국제강은 해양플랜트 등에 사용할 수 있는 고부가 후판 제품 비중을 늘리고 있다. 전방산업인 조선업 침체가 지속되고 있어 후판사업의 장기적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현재 동국제강 후판사업에선 비조선 수주 비율이 40% 수준으로 증가했고, 추가 확대를 통해 조선 수요 침체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선 고급강 슬래브가 필수다. 동국제강은 CSP에서 고급강 슬래브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CSP에서 생산된 슬래브는 품질 검사 결과, 메이저 기업들의 슬래브에 준하는 실적을 보였다. CSP제철소는 3개의 선급 인증을 받았고, 현재 대기 중인 나머지 3개 선급도 이달 중 인증이 마무리 될 전망이다. CSP에서 생산된 슬래브 품질을 인정받은 셈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이전에는 고급강 슬래브를 돈 주고도 못 사는 상황이라 후판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하지만 CSP를 통해 고급강 슬래브를 확보할 수 있어 수급에도 숨통이 트이고, 가격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