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의 퇴진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없었다면, 삼성은 지금의 위상까지 쉽게 도달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그보다 더 나은 대체자를 찾기가 힘든 인물이 그것도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발표한 날 갑작스레 용퇴를 선언한 데 대해 이론이 없을리 없다.
▲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
권 부회장은 서울 출신으로 대광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KAIST에서 석사,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5년. 미국 삼성반도체연구소 연구원으로 발을 들여놓으면서다.
삼성과 권 부회장의 궁합은? ‘천생연분’이라는 말도 아깝지 않다. 전형적인 엘리트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황창규 현 KT 회장과 더불어 삼성 반도체 신화를 일궈 낸 공신이다.
4메가 D램 개발팀장(부장)을 거쳐 1991년 64메가 D램 개발팀장(이사)으로 임원에 오른 권 부회장은 이듬해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 개발을 주도함으로써 자신의 경력을 행운으로 쌓아온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이어 1997년까지 메모리본부 상무를 지낸 뒤 시스템LSI 사업부 제품기술실장(상무)로 옮겨 전무, 부사장, 사장으로 2008년까지 11년간을 시스템반도체 부문에 몸담으며 삼성전자의 비메모리반도체 경쟁력을 한 단계 레벨-업 시켰다.
권 부회장의 초고속 승진은 삼성 내에서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를 모두 잘 아는 보기 드문 커리어와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일조한 경영 성과에 기반한다.
권 부회장은 2008년 5월부터 반도체사업부 사장을 거쳐 2011년 7월부터 현 DS(Device Solutions·반도체 및 부품)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2011년 12월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오너 이재용 부회장을 제외하고 현재 전문경영인 중 유일한 부회장이다.
2012년 6월에는 최지성 당시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는 삼성전자 대표이사에도 올랐고 이사회 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작년 6월부터 삼성디스플레이 대표도 겸직하고 있다.
특히 올해 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된 이후로는 삼성전자의 경영을 총괄하며 삼성을 대표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건희 회장은 2014년 5월이후 장기 와병중이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던 미전실 역시 올 2월 해체된 상황에서 권 부회장의 퇴진이 몰고 올 경영 공백 위기감이 고조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