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이 '최저임금 인상' 정책 발맞추기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기치 삼아 올해 최저임금을 지난해 시간 당 6470원에서 16.4% 인상한 7530원으로 정했다. 2020년 1만원까지 올린다는 게 공약이다.
재계는 여태껏 이런 임금 인상 기조가 부담스럽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아왔다. 비용 증가가 불가피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직접, 또는 우회적으로 피력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앞다퉈 정책에 협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모습이다.
삼성전자가 가장 앞장에 섰다. 삼성전자는 이달부터 당장 1차 협력업체에 매기는 납품 단가에 최저임금 인상분을 반영하기로 했다고 최근 밝혔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건비 부담을 겪는 중소협력사를 지원한다는 뜻에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납품단가 인상요인이 발생한 1차 협력사 600여개 업체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고 있다"며 "일부 업체는 이미 검토가 진행돼 단가 인상을 적용받았고 계속 요청이 들어오는 대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력사들도 기대가 큰 분위기라고 전해진다. 삼성전자는 협력사의 자금난을 덜어준다는 취지에서 물품대금 지원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또 작년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한 것을 반영해 최근 협력사에 수백억원대 성과대금(인센티브)을 지급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24일 15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5000여곳에 달하는 2·3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지원키로 했다. 이날 중소벤처기업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과 함께 3자간 '상생협력 협약'을 맺었다. 우선 현대차는 '상생협력기금' 500억원을 출연한다.
이 기금은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한 2·3차 중소 부품협력사 근로자 임금 지원을 위해 사용된다. 현대차는 전반적 운영방침만 제시하고 지원 대상 선정은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이, 기금 관리 및 집행은 대중소협력재단이 맡는다. 올해 상반기 중 500억원을 모두 집행한다는 목표다.
1000억원 규모의 '2·3차 협력사 전용 상생펀드'는 이번 달 시행에 들어갔다. 임금 인상지원뿐 아니라 회사 운영에 긴급한 자금이 필요한 경우 시중금리보다 2%포인트가량 낮게 융자하는 기금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부가 시켜서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이 완성차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LG·SK그룹 등 다른 대기업집단들도 곧 동참할 분위기다. LG그룹은 지난해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협력사와의 상생협력를 위한 8500억원 규모 기금 조성을 공언한 바 있다. 다만 최저임금 지원 등 구체적 자금 운영 방식이나 규모는 내부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도 올해부터 경영목표와 핵심성과지표(KPI, Key Performance Indicator)에 '공유 인프라와 사회적 가치 창출'을 포함키로한 것과 연계해 협력사 최저임금 인상 지원방안을 구상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SK그룹은 올해부터 실적 평가지표인 KPI에 '사회적 가치 창출' 항목을 새로 만들어 총점 10% 이상 반영키로 했다.
다만 영업환경 악화로 '마른 수건 짜듯' 인건비 등 비용 감축에 나서고 있던 상당수 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협조하는 조치를 내놔야하는 분위기가 불편하다.
내부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중인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직원들 월급도 올리지 못하고 인건비 감축 때문에 희망퇴직까지 받는 상황에서 협력사 최저임금까지 챙기기가 쉽겠냐"며 "그러다보니 통상 협력업체에 설연휴 운영자금을 지원하던 것을 최저임금 지원용도로 포장하자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