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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파격…직원은 비용일 뿐일까?

  • 2018.03.06(화) 09:20

[최태원의 新경영]上 재무제표를 바꾸다
기업의 언어 '회계'에 사회적 가치 반영

주주의 몫은 '이익'인데 어째서 직원의 몫은 '비용'이라고 할까?

기업의 가계부라 할 수 있는 손익계산서는 매출액에서 시작해 맨 아래 당기순이익으로 끝난다. 당기순이익은 재료비와 인건비, 세금 등을 빼고 주주들이 최종적으로 받을 몫이 얼마인지를 나타낸다. 여기에는 '주식회사=주주들의 재산'이라는 세계관이 녹아있다. 협력사(재료비), 직원(인건비), 지역사회(세금) 등은 이익을 갉아먹는 차감항목으로서 관리의 대상이지 주주들의 최종 관심사라고 할 순 없다.

주주총회 장면을 떠올려보자. '이것밖에 돈을 못벌어 죄송하다'며 머리 숙이는 경영진은 있어도 '납품가 현실화나 임금 인상이 충분하지 않아 죄송하다'고 말하는 경영진은 드물다.

 


잭 웰치 GE 전 회장이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것도 주식회사 시스템이 아니고선 생각하기 어렵다.

그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실적이 저조한 사업부를 폐지하고 공격적인 비용절감을 단행해 GE를 되살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가 최고경영자로 재임한 20년간 GE의 시가총액은 우리돈으로 13조원에서 500조원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직원들에게는 재앙과 같은 경영자나 다름없었다. 잭 웰치가 최고경영자로 취임 후 5년간 해고한 인력만 11만8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그에게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중성자탄이 건물만 남기고 생명체를 싹 제거하듯 회사에서 직원들만 잘라낸 걸 빗댄 별명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라면 그는 어떤 경영자로 분류될까?

재미있는 건 구조조정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잭 웰치마저 퇴임 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는 GE에서 물러난지 8년이 지난 2009년 3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주주가치는 가장 어리석은 아이디어"라는 고해성사를 했다. "주주가치는 결과일 뿐 전략이 아니며, 경영자들이 신경써야할 것은 직원과 소비자, 제품"이라는 게 요지다.

 


사실 주주이익 극대화에 반론을 제기하는 주장들은 꽤 있다. 독창적인 주장 중 하나는 손익계산서를 바꾸자는 제안이다. 미국의 비영리 연구기관인 '데모크라시 콜라보레이티브' 선임 연구원인 마조리 켈리(Marjorie Kelly)는 자신이 쓴 책 '주식회사 이데올로기(The Divine Right of Capital)'에서 직원의 이익도 주주의 이익과 같은 자리에 놓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예를 들어 지금의 손익계산서는 아래와 같이 표시한다.

매출-재료비-인건비 = 이익

이 때 이익은 주주이익이다. 직원이익은 인건비로 나타난다. 이런 등식에선 직원에게 지급하는 돈만큼 주주에게 돌아갈 이익이 줄어든다. 만약 직원도 회사가 창출한 가치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켈리는 인건비를 주주이익처럼, 곧 손익계산서의 맨 하단으로 이동시켜보라는 제안을 한다.

매출-재료비 = 이익(주주이익)+인건비(직원이익)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면 주주와 직원이 동반자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숫자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 직원에게 지급한 인건비가 비용이 아니라 기업이 창출한 부로 간주된다.

"기업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는 재무제표다. 여기서 우리는 이익을 규정하는 권력을 보게 된다. 표준 손익계산서가 주주이익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종업원 손익계산서를 통해 기업활동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주식회사 이데올로기中

회사의 이익을 오로지 주주의 것으로 귀결시키는 지금의 주식회사는 바다 건너 신대륙을 찾아해매던 대항해시대(15~18세기)에 탄생했다.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하면 쪽박인, 엄청난 리스크를 감내해야 했던 시절에는 주주의 몫을 강조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하지만 지식이 힘인 시대, 곧 인간 자체가 경쟁력인 시대에는 재무제표라는 렌즈도 바꿔볼 필요가 있다는 게 켈리의 조언이다.

 

흥미로운 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나올 법한 이 같은 아이디어가 한국에선 사회적 기업도 아닌 대기업, 그것도 재벌기업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SK그룹이 대표적이다. SK는 올해부터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집계하는 '더블 바텀 라인(Double Bottom Line, DBL)' 회계 시스템을 도입키로 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글로벌지속가능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SK그룹 제공>
 
손익계산서 맨 끝에는 당기순이익(이를 '싱글 바텀 라인'이라고 한다)이 자리잡고 있다. SK는 이와 별도로 회사가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집계한 손익계산서를 만들기로 했다(그래서 더블 바텀 라인이라고 표현한다). 인건비와 세금, 협력사 지원, 환경개선활동 등 착한 일에 쓴 돈을 따로 추려내 이익과 동일한 범주로 취급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시범적으로 시행해본 결과, 지난해 이 회사가 창출한 '사회적 당기순이익'은 7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더블 바텀 라인 도입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적 가치를 회계적으로 표시하면 시각이 변한다. 예를 들면 기업에서 세금이나 임금은 무조건 줄이고 적게 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코스트로 봤기 때문이다. 지금은 여기에도 가치가 있다고 보는 거다. 굳이 그것(세금이나 임금 등)을 줄이는 게 우리의 목적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바뀌게 된다." -2월8일 연세대에서 열린 글로벌지속가능포럼(GEEF) 강연내용 中

이를 통해 SK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최 회장은 새로운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들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탄소배출권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졌듯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다보면 새롭게 열리는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기업의 언어인 회계로 표현하는 건 그 시작일 뿐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적 가치는 새로운 기회다.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느낀다는 건 시장이 생기고, 그 가치가 거래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를 먼저 발굴하는 기업이 성공한다. 세상은 이미 그렇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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