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흔들리자 삼성 전체 실적이 곤두박질 했다. 여러 계열사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뛰어도 반도체가 역주행하는 상황에선 실적개선에 한계가 있었다.
비즈니스워치가 6일 집계한 올해 2분기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SDS 등 삼성 주요 계열사 10개사의 영업이익은 총 7조630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5조9600억원에 비해 52.2% 감소했다. 금액으로는 8조3296억원 줄었다.
삼성전자에 한파가 몰아쳤고 삼성물산도 제 역할을 못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건설 등으로 지난해 호시절을 보낸 회사다. 반도체 위기가 확산하면서 삼성전자에 이어 삼성물산 식으로 영향이 퍼져갔다.
상반기 전체를 보더라도 두 회사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지난해 상반기 30조5112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12조8304억원으로 반토막났다. 같은 기간 삼성물산 영업이익 역시 5873억원에서 3258억원으로 미끄러졌다. 삼성SDS·삼성전기·삼성SDI 등 아우들이 선전했으나 두 형이 한꺼번에 까먹은 손실을 보충하기엔 힘에 한참 부쳤다.
메모리가격 급락
구체적으로 보면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매출 56조1271억원, 영업이익 6조597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에 비해 매출은 4.0%, 영업이익은 55.6% 각각 줄었다.
인공지능·빅데이터·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붐에 힘입어 훨훨 날던 반도체 경기가 급격히 꺾였기 때문이다.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애플·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의 데이터센터(IDC) 투자가 주춤한 것이 영향을 줬다. 삼성전자 창고에 재고가 쌓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싼값에 팔다보니 손에 남는 돈(영업이익)이 확 줄었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반도체 경기가 최고조에 이르던 지난해 6월말 개당 8.19달러였던 D램(PC용 범용제품 기준, DDR4 8Gb) 고정거래가격은 올해 6월말에는 3.31달러까지 떨어졌다. 1년새 하락폭이 60%에 이른다. 같은 기간 메모리카드에 쓰이는 낸드플래시 가격도 5.60달러에서 3.93달러로 30% 하락했다.
발화사태 이후 최악
반도체에 이어 삼성전자의 먹거리 역할을 해오던 스마트폰 사업도 부진했다. 2분기 IT·모바일사업 영업이익은 1조5600억원으로 갤럭시 노트7 발화사건이 일어난 2016년 3분기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표를 내밀었다. 스마트폰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고, 중저가 제품군에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성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양대축이 흔들리면서 지난해 2분기 25.4%였던 영업이익률이 이번에는 11.8%로 뚝 떨어졌다. 특히 반도체는 1만원어치를 팔면 5300원(영업이익률 52.8%) 가까이 남겼던 지난해 2분기와 달리 이번에는 2100원(영업이익률 21.1%) 가량을 남기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나마 반도체는 사정이 낫다. 스마트폰의 경우 1만원어치를 팔아 600원(영업이익률 6.0%) 가량을 남기는데 그쳤다.
힘얻는 '바닥론'
한가지 위안은 반도체 경기의 추가적인 악화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다.
메모리 '빅3' 중 마이크론에 이어 SK하이닉스가 감산을 공식 선언하면서 삼성전자도 감산 행렬에 동참할지가 관심을 모았으나 삼성전자는 "인위적인 웨이퍼 투입량 감소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선을 그었다. 이미 재고가 상당부분 줄었고, 업계 2~3위가 감산을 결정을 했기에 수급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상에 바탕을 둔 결정이다.
비록 반도체 영업이익이 줄었어도 삼성전자 전체 실적이 올해 1분기보다 소폭이나마 개선된 점도 '바닥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1년 전에 비해 크게 감소했으나 1분기보다는 5.8%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매출은 7.1% 증가했다.
삼성SDS, IT·물류 '양날개'
삼성전자의 실적악화는 곧 삼성그룹 전체의 실적악화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다. 삼성전자가 주요 10개 계열사 중 차지하는 영업이익 비중이 90% 안팎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에는 86.5%로 그 비중이 약간 낮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삼성전자에 대한 그룹의 의존도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삼성전자에만 모든 실적악화의 책임을 돌리는 건 무리가 있다. 삼성전자가 부진하더라도 꾸준히 이익을 늘려가는 계열사가 있고, 삼성전자 버금가는 실적악화로 고전하는 계열사도 있어서다.
그 중에서도 삼성SDS의 성장세는 눈에 띈다. 2분기 매출액은 2조7761억원, 영업이익은 258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에 견줘 매출은 12.3%, 영업이익은 8.9% 증가한 수치다. IT서비스부문이 매출 증가와 함께 꾸준히 두자릿수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가운데 물류부문에서도 영업이익을 내는 등 견고한 사업기반을 구축한 덕이다.
고공행진하는 엔지니어링
삼성전기와 삼성SDI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전기의 2분기 영업이익은 1452억원으로 1분기와 비교해 29.8% 감소했다. 1800억원대를 예상한 시장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상반기 전체로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4% 늘어난 3877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 수요 둔화가 걱정스럽지만 아직까지는 선방하는 실적으로 볼 수 있다.
삼성SDI는 더욱 빛났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잇따른 화재로 ESS 주문이 뚝 끊기는 등 여러 악재를 뚫고 올해 상반기 276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22.8% 증가했다.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1573억원으로 시장 추정치(약 1450억원)를 웃돌았다.
삼성엔지니어링도 고공행진 중이다. 2분기 매출은 1조6252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0.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000억원으로 128.0% 신장했다. 2013년 플랜트가 중심이던 중동에서 부실 사업장이 발생해 어닝쇼크를 안겼던 것과 견주면 괄목상대할 변화다.
중공업, 7분기째 적자
건설·중공업의 맏형인 삼성물산은 지난해의 기세를 유지하지 못했다.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2207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로이힐과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등 해외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일회성 비용으로 1000억원을 갓 넘긴 영업이익을 낸 것에 비하면 큰 폭의 실적개선이지만 지난해 2분기 수준(3781억원)에는 턱없이 못미쳤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건설로 반사이익을 누렸던 효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신규수주는 2조5000억원으로 연간목표(11조7000억원)를 달성하기 빠듯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불황의 터널을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올해 2분기에도 56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벌써 7분기째다. 1분기에는 적자폭을 333억원까지 줄였으나 2분기에 다시 확대되고 말았다. 해양 프로젝트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했던 게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중공업의 상반기 영업손실은 89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영업손실 1483억원)보다 손실폭이 줄어든 게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