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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혼돈 속으로' 삼성, 대법 판결 후폭풍 직면

  • 2019.08.29(목) 17:41

국정농단 '파기환송'…말구입대금 등 뇌물포함
횡령액 50억 가량 늘어 실형 가능성도 커져
무역갈등·수출규제 등 악재에 총수공백 우려까지

대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과 관련한 2심 재판부의 판결을 파기환송하면서 삼성이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빨려들게 됐다.

삼성이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에게 지원한 말 세 마리가 뇌물에 해당하며, 경영권 승계작업과 이를 위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이번 판결이 파기환송심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면 삼성의 뇌물액수가 36억원에서 86억원으로 늘며 이 부회장이 다시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다.

◇ 말 구입비·영재센터 지원금은 '뇌물'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의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2심 판결을 모두 파기환송했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은 뇌물 혐의와 다른 공소사실을 합쳐 형량을 선고한 건 위법하다고 봤고, 최 씨와 관련해선 강요죄를 유죄로 선고한 2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돌려보냈다. 관심을 모은 건 삼성이 제공한 말 3필과 영재센터 지원금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다.

2심은 말 소유권이 최 씨에게 넘어간 게 아니라며 삼성의 말 구입대금(34억)을 뇌물에서 제외하고 승마지원 용역대금(36억원)만 뇌물로 인정했는데, 대법원은 "말에 대한 실질적 사용처분권을 갖게 되면 뇌물로 봐야 한다"고 봤다.

영재센터 지원금(16억원)을 뇌물로 보지 않은 2심 판단도 뒤집어졌다. 2심은 삼성의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부정한 청탁이 인정되지 않아 제3자 뇌물수수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으나 대법원은 "법리의 오해가 있다"며 돌려보냈다.

부정청탁 대상이나 내용이 반드시 구체적일 필요는 없으며, 영재센터 지원금은 대통령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 이 부회장 재수감될수도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이 부회장의 형량이 더 무거워질 전망이다. 원래 1심에선 말 구입대금과 영재센터 지원금을 유죄로 보고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으나 2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이 부회장이 풀려날 수 있었다.

이번에 대법원이 2심 판결을 깨면서 이 부회장의 뇌물 액수는 50억원이 늘어 1심(89억원)과 비슷한 수준이 될 전망이다. 뇌물로 사용된 돈은 회삿돈이기에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죄가 적용된다.

횡령죄는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일 때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이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될 수 있었던 것도 1심과 달리 횡령액이 50억원 미만으로 잡혔기 때문인데, 대법원이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해 결과적으로 실형 가능성이 커졌다. 이 부회장이 재수감될 수 있다는 얘기다.

◇ 집행유예 가능성은 남아

다만 이 부회장이 지난해 2월 2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1년간의 수감생활을 했고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할 수 밖에 없었던 점, 재판과정에서 횡령액을 모두 변제한 점 등을 감안하면 판사 재량에 따른 '작량감경'의 가능성도 나온다. 횡령액이 50억원이 넘어도 집행유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대법원도 파기환송을 하면서 양형에 대해선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형량은 파기환송심에 맡기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형이 가장 무거운 재산국외도피죄가 무죄로 인정된 게 이 부회장 입장에선 불행 중 다행이라는 시각도 있다. 도피액이 50억원이 넘으면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도록 돼있다. 1심에선 재산국외도피죄를 유죄로 봤지만 2심과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 부회장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태평양 이인재 대표변호사는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금품지원에 뇌물공여죄를 인정한 것은 아쉽게 생각한다"면서도 "형이 가장 무거운 재산국외도피죄와 뇌물액수가 가장 큰 재단 관련 뇌물죄는 무죄를 확정했다는 게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엎친데 덮쳤다'…위기감 증폭 

삼성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2016년 하반기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이후 3년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사가 이어지며 이미 만신창이가 됐는데 또다시 재판을 준비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중 무역갈등과 일본의 수출규제, 반도체 경기악화 등 어느때보다 경영환경이 불확실한 시기에 그룹을 이끌 총수의 부재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삼성은 총수와 전문경영인으로 구성된 참모진이 '이인삼각'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여 위기를 돌파해온 그룹이다. 이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로 컨트롤타워가 거의 마비된 상황에서 이 부회장까지 자리를 비우게 되면 의사결정 공백이 클 수밖에 없다.

이날 삼성이 공식적인 입장문을 발표한 것도 이 같은 위기감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성 관계자는 "리더십 위기 등으로 3년여 시간 동안 미래준비를 못했는데 더이상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며 "이번 입장문은 반성과 재발방지를 다짐하면서 '더 늦으면 안된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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