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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화학 ABC]②원유서 뽑아낸 '진액' 나프타

  • 2019.12.09(월) 17:29

정유 및 화학 제품 '마중물 역할' 수행
'셰일혁명' 에탄에 조금씩 자리 내줘

원유는 '검은 황금'이라 불린다. 자동차 연료에서부터 플라스틱·옷감에 이르기까지 쓰이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여러 방면에 쓰인다. 하루 9000만배럴 가량이 소비되는 원유의 가치는 상상 그 이상이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지분 1.5% 공모주 청약에 443억달러(약 52조3000억원)가 몰린 것도 원유의 '금색 값어치'에 대한 세간의 믿음을 보여준다. 땅속, 바다 깊은 곳에 묻혀있는 원유에 대한 기초지식과 그 쓰임새를 국내 산업과 연관해 구석구석 살펴본다.[편집자주]

건축가 유현준씨는 알쓸신잡 시즌2 1화에 나와 "나라와 부와 술의 도수가 비례한다"고 안동소주를 들이키며 말했다. 곡식, 과일을 빚어 만든 발효주에서 고농도 알코올로 '더 취하는' 증류주를 만드는데 '증류'라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해서다.

비오는 날 생각나는 막걸리 역시 이 증류기술을 통해 소주로 탈바꿈한다. 먼저 누룩과 효모를 빚어 푹 발효시킨 고두밥 원액 막걸리를 소주거리에 붓는다. 열을 가하면 원액에서 끓는점이 낮은 알코올이 물보다 먼저 기체로 변한다. 알코올이 물을 떠나 소주거리 상단으로 올라가 찬물이 맺힌 벽에 부딪히면, 농도 진한 소주 진액이 졸졸 나온다.

원유정제 과정도 증류주 소주 추출 과정과 흡사하다. 첫 번째로 황, 질소, 산소 등 여러 부산물이 섞인채 오랜 기간 발효된 원유를 정유공장내 '상압증류탑'에 흘려 넣는다. 이후 원유에 높은 온도와 압력이 가해지면 끓는점이 낮은 원유 성분부터 차례로 기체로 변한다.

기체들이 차가운 배관을 거쳐 나가면 액화석유가스(LPG), 휘발유, 나프타, 등유, 경유, 중유 등 '덜 걸쭉한' 액체순으로 뽑힌다. 막걸리에서 증류를 거쳐 소주가 나오는 것과 비슷한 공정이다. 이를 '분별증류'라 부른다. 이 원유 원액에서 증류한 액체 가운데 나프타는 가장 다채로운 역할을 한다.

출처: SK이노베이션 전문 보도채널 스키노뉴스 발췌

◇ 정제보다 '화학'

나프타는 화학산업 디딤돌 역할을 한다. 주로 아시아, 유럽 비산유국에서 화학사업 원료로 애용한다. 화학사가 황 등이 덜 들어가 밀도가 낮은 '가벼운 나프타'를 나프타 분해설비(NCC)에 집어 넣으면 '석유화학의 쌀'이라 불리는 에틸렌을 비롯해 플라스틱 등의 원료 올레핀계 물질, 그밖에 고무 등에 쓰이는 부타디엔, 합성수지와 합성섬유 등 원료 벤젠·톨루엔·자일렌(BTX) 등 기초유분이 뽑힌다.

다양한 화학원료를 채취하는 것이 나프타 원료의 가장 큰 장점이다. 올레핀계열에 치중하지 않고 다양한 부문 제품원료를 기반으로 사업 다변화가 가능하다. 한 개의 제품 업황에 개의치 않고 사업을 안정적이게 꾸려나갈 수 있다.

천연가스를 가공해 얻은 에탄이 원료인 에탄 분해설비(ECC), 석탄을 재료로 하는 석탄 분해설비(CTO)에 비해 선택의 폭이 다양한 셈이다. ECC는 천연가스 시장 큰손 중동, CTO는 대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돼 환경규제가 다소 느슨한 인도 등 신흥국들이 주로 채택해 왔다.

나프타는 두 단계를 거쳐 정유사 품에 다시 안긴다. 다소 '무거운 나프타'는 촉매공정을 거쳐 고부가 석유 휘발유, 제트유로 탈바꿈한다. 이 제품들은 상압증류 한 단계를 거쳐 나온 것과 달리 엔진출력을 높여주는 옥탄가가 높아 더 비싸게 판매된다.

더 나아가 무거운 나프타는 정유사의 외연을 화학사로 넓혀준다. 국내 정유4사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는 모두 무거운 나프타를 원료로  BTX 설비를 돌린다.

여기서 나온 톨루엔과 자일렌 등을 다른 설비에 넣어 합성섬유 원료 파라자일렌(PX)을 만들며 재미를 톡톡히 봤다. 여기에 더해 SK와 GS, 현대는 초경질유에서 더 많은 나프타를 뽑아낼 수 있는 초경질유 분해설비(CSU)를 통해 BTX와 PX 규모의 경제를 꾀했다.(※관련기사 : 정유업계, '효자' 화학제품에 웃고 우는 이유)

◇ 셰일가스의 '역습'

하지만 최근에는 ECC의 위상이 NCC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 셰일혁명을 필두로 풍부해진 천연가스를 주춧돌 삼아 에탄 가격이 워낙 저렴해져서다. 미국은 천연가스 부국 사우디에 올해 5월 제품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등 가스가 넘쳐나고 있다.

높은 원료가로 마지못해 ECC를 폐쇄하던 미국 화학사들도 분위기가 변했다. 최근 공격적으로 ECC 설비증설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부터 현지 화학공장 설비 가동률은 100%에 육박했다.

자연히 나프타는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석유정보사이트 페트로넷에 따르면 12월 6일 기준 국제 나프타 가격은 두바이유와 비교해 되레 0.2달러 저렴하다. 정유사들이 원유를 들여와 전기, 인력 등 품을 들여 나프타를 생산해 팔아도 손해를 본다는 의미다. 연초 10달러 가량 역마진이 발생했던 것과 비교해 그 폭이 줄었지만, 미국 정유사들이 9~10월에 정기보수를 진행해 제품수급이 빡빡해지면서 발생한 일시적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원유수요 약세, 화학사들이 저렴한 천연가스 사용량을 늘린 결과다. NCC 설비는 나프타 외에 천연가스인 프로판을 일부 병행해 사용 가능하다.

당분간 이같은 나프타 가격약세 현상은 지속될 전망이다. 천연가스 가격이 워낙 많이 떨어져 이를 찾는 화학사들의 손길이 더 잦아지고 있어서다. 프로판 국제가격은 사우디 장기공급계약기준 올해 연간 평균 톤당 434.58달러다. 미국의 셰일가스 광폭생산에 힘입어 1년 만에 약 107달러 떨어졌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셰일오일 등을 캐내면서 나온 에탄이 석유화학 대체재인 만큼, 나프타 가격이 큰폭으로 오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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