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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업계, '효자' 화학제품에 웃고 우는 이유

  • 2019.05.27(월) 08:21

'실적 효자' 화학제품 주력 BTX 거쳐 생산중
PX 늘리려다 수급 안좋은 벤젠 '공급과잉'

정유사는 수입해온 원유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항상 궁리해왔다. 원유를 정제하고 난 기름을 그대로 팔기보다 이를 여러 번 가공하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유사가 화학사업으로 외도를 시도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1990년대 원유에서 뽑아낸 나프타에서 벤젠(BZ)·톨루엔·자일렌을 추출하는 방향족 설비, 2010년대 파라자일렌(PX) 설비를 잇달아 만들었다. 원유를 정제하면 이를 원료로 화학제품을 만드는 수직 계열화가 부분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그런데 이 일관체계가 되레 정유사들의 실적을 갉아먹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 기름의 '변신'

국내 정유사는 화학부문 주력 제품이 파라자일렌이다. 국내 정유사 총 생산능력은 703만톤으로 화학사를 포함한 전체 생산능력(1051만톤) 가운데 66.9%를 담당하고 있다.

파라자일렌은 화학물질임에도 화학사가 아닌 정유사에 더 '안성맞춤'이다. 정유사는 초경질유 분리공정(CSU) 설비를 지녔다. 이란산 원유 등 가벼운 원유를 넣으면 나프타는 물론 벤젠, 톨루엔, 자일렌을 얻을 수 있다. 이 가운데 톨루엔, 자일렌과 기타 화학물질을 파라자일렌 설비에 넣으면 제품이 나온다.

석유화학 공정 및 제품/사진=SK인천석유화학 제공

이를 방향족 설비와 연계하면 더 많은 파라자일렌을 얻을 수 있다. 국내 정유사 가운데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가 초경질유 분리공정을 보유 중이다.

화학사는 정유사로부터 나프타를 들여와 나프타 분해설비(NCC)를 돌려 화학제품에 두루 쓰이는 에틸렌 등 원료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벤젠, 톨루엔, 자일렌이 나오긴 하지만, 초경질유 분리공정과 달리 극히 일부라고 알려졌다.

결국 정유사는 파라자일렌을 생산하는데 있어 화학사 대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쉽다.

국내 정유사들에게 합성섬유, 페트병 중간원료인 파라자일렌은 '실적 효자'다. 유가가 급락한 2014년 4분기, 2018년 4분기 본업인 정유사업에서 적자를 봤을 때도, 석유화학 부문이 파라자일렌을 중심으로 실적 완충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중국시장 덕분이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며 전방 제품인 테레프탈산(합성섬유 원료) 설비가 늘며 파라자일렌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국석유화학협회 관계자는 "중국 파라자일렌 설비 가동률이 예상만큼 나오지 않으면서 국내 제품 경쟁력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뜻밖의 수요도 있었다. 파라자일렌 원료를 만들기 위해 방향족 설비 가동시 나오는 벤젠이 그 주인공이다. 벤젠은 합성고무 등에 쓰이는 화학 기초원료다.

그간 중국 업체들은 이를 석탄을 분해해 만들었다. 다만 중국에서 환경 규제가 심화돼 벤젠 공급이 딸려, 국내 업체가 수혜를 입었다. 파라자일렌을 만드는 과정에 부산물로 벤젠이 나오는 것도 국내 정유사에 호재로 작용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파라자일렌, 벤젠에 힘입어 화학부문 덩치가 커졌다. 정유사 영업이익에서 화학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S-OIL(54.9%), SK이노베이션(52.8%), GS칼텍스(31.1%), 현대오일뱅크 24.9%(공동기업 현대코스모 실적 포함할 경우) 순으로 높다.

◇ PX에 발목잡힌 BZ

다만 지난해부터 파라자일렌, 벤젠이 쌍끌이로 실적을 이끄는 현상이 사라졌다. 벤젠 가격약세 때문이다.

벤젠 가격은 지난해 10월 톤당 857달러로 고점을 찍은 뒤 하락해 지난해 말에는 594달러까지 30.7% 떨어졌다. 올해 들어 가격이 반등했지만,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벤젠 업황악화는 시장에 제품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미중간 무역분쟁으로 인한 경기둔화로 중국 시장에서 제품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내수 제품도 재고가 늘며 국제가격 하락을 부추겼다.

정유사들의 화학사업 추가 실적 개선폭도 벤젠 약세로 둔화됐다.

김은진 화학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이 중국향 벤젠 가격하락을 우려해 미국산 선물가격을 올려 이를 방어하려 했다"며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로 한국산 제품 구매를 지연시켜 벤젠 가격이 더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방제품인 스티렌모노머(합성수지 원료) 설비의 전반적 정기보수도 수요 약세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정유사들 입장에서 벤젠 공급을 조절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격이 떨어졌지만 그나마 시황이 좋은 파라자일렌 원료를 생산하려면 벤젠이 덩달아 나오는 만큼, 자연스레 벤젠 수익성은 하락하는 악순환에 갇히게 됐다. 파라자일렌을 생산하면 부산물로 벤젠이 나오는 것도 악재로 돌아왔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벤젠은 시장 수급상황에 민감한 제품"이라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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