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인도 정부와 추진 중인 통합 제철소 설립 작업이 첫 삽도 뜨기 전에 삐걱되고 있다. 현지 합작사인 '라쉬트리아이스파트니감(RINL)' 노조와 인도 정치권이 외국 민간 기업 포스코와의 합작을 반대하며 수개월째 격한 시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현지 주민들의 거센 반대와 인도 지방 정부의 비협조로 12년 만에 철수한 '오디샤 프로젝트'의 악몽이 되풀이 될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3일 인도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포스코와 인도 정부는 인도 남부 안드라프라데시 주 북동부에 위치한 '비샤카파트남'에 합작 제철소를 설립하는 내용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예상 투자금은 약 30억불(한화 3조원) 수준으로, 특수 등급의 철강 생산 공장을 짓는 게 핵심이다.
이는 지난해 2월 인도 정부 관계자들이 포스코 광양 제철소를 찾아 인도 국영 철강사 RINL 등과의 합작사 설립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양측은 이후 수차례 만나 구체적인 일정과 계약 조건 등을 조율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공사도 시작하기 전에 제동이 걸렸다. 합작사 RINL 노조원들이 포스코와의 합작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노조는 특히 인도 정부가 이번 계약 조건으로 비샤카파트남에 위치한 RINL의 토지 중 4000 에이커(1600만㎡)를 포스코에 넘기기로 한 사실에 분노하며 대규모 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노조원끼리 인간 사슬을 만들어 2시간 동안 '포스코 돌아가라'는 구호를 외쳣고, 지난달에는 아 가람 푸디, 아나 카 팔리 등 4개의 도시를 돌며 거리 행진 시위도 벌였다. 지난 8일에는 급기야 총 파업까지 단행했다.
이들은 인도 정부가 합작사를 원한다면 RINL 부지가 아닌 비샤카파트남내 다른 부지를 제공하라는 입장이다. 이들의 시위는 최근 인도중앙노동조합중앙회(CITU)와 인도 정치권까지 가세해 더욱 조직화 되고 있다.
나랏신가 라오(Narasinga Rao) CITU 위원장은 인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앙 정부는 포스코에게 잉여 부지를 넘기기로 한 사실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며 "해당 부지는 엄연한 공공부지인 만큼, 민간기업에게 부지를 넘기거나 제철소를 짓도록 놔둘 수 없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아직 운만 뗀 사업에 인도 현지의 격렬한 반대가 이어지자 매우 당혹해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무려 12년간 첫 삽 조차 못 뜬 '오디샤 프로젝트'의 악몽이 재연될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오디샤 프로젝트'는 지난 2005년 포스코와 인도 오디샤(옛 오리사) 주 정부가 손 잡고 일관 제철소를 짓기로 한 사업이다. 그러나 현지 주민의 거센 반대와 채굴권 분배 약속을 지키지 않은 오디샤 주 정부의 태도 변화로, 무려 12년간 답보를 거듭하다 지난 2017년 전면 백지화 됐다. 포스코는 이 사업으로 약 2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다.
포스코는 현지 반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잇단 사업 중단에 '인도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하지만, 미래 성장성 등을 고려할 때 인도시장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인도는 중국에 이은 세계 2위의 조강 생산국이다. 2018년 기준 인도의 조강 생산량은 1억650만톤으로, 같은 기간 1억43만톤을 생산한 '만년 2위' 일본을 누르고 세계 2위에 올랐다. 경제 성장에 맞춰 건설, 도로 등 인프라 구축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지면서 그만큼 철강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인도 현지 철강 정보업체 스틸민트(SteelMint) 관계자는 "인도는 수요산업의 발전과 함께 철강도 지속적인 높은 성장률을 가져가고 있다"며 "특히 인도 내 철강사들의 투자 확대 등과 맞물려 향후 글로벌 철강시장의 중요한 한 축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인도 진출에 대한 신중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성장성은 있지만, 성장세가 느리다는 이유에서다.
세계 철강 업계는 인도 철강 시장이 매년 7~8% 이상의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포스코가 오디샤에 처음 진출한 2005년 전망치와 여전히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인도의 1인당 철강 소비량도 66.2kg으로, 세계 평균인 208kg의 30%에 불과하다.
외국 기업 진출에 여전히 배타적인 현지 문화도 부담이다. 앞서 포스코는 지난 2011년에도 인도 카르나타카 주 정부와 제2 제철소 설립을 추진했지만, 현지인들의 거세 반대로 철수한 바 있다. 더욱이 포스코에 또 다시 투자 제의를 한 인도 정부는 최근 자국 산업 보호를 외치는 중이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인도 정부는 수입 의존도를 최소화 하고, 인도 기업 자체적인 고급 철강재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힘쓰고 있다"며 "현지 기업과의 합작 법인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인도 현지 문화나 느린 성장세 등을 감안할 때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