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으로 후려쳐진 삼성전자의 작년 영업실적이 삼성그룹 전체를 물들였다. 그룹 내 삼성전자의 사업 비중이 워낙 크니 그렇다. 하지만 전자 관련 외에도 재작년보다 부진한 수익성을 내보인 계열사들이 유난히 많았다. 추락한 반도체 업황 탓이 크지만, 총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수감 우려가 불거지면서 경영 여건이 불안해진 영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3일 비즈니스워치가 집계한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I·삼성SDS·삼성물산·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호텔신라·제일기획·에스원 등 삼성그룹 비금융 주요 10개 계열사의 2019년 영업이익(연결 기준)은 31조2890억원이었다. 이는 전년대비 50.4%(31조8300억원) 감소한 실적이다.
재작년 성적이 워낙 역대급이었던 탓도 있다. 하지만 한 해 사이 절반이 날아갈 만큼 변동성이 컸다. 또 삼성전자라는 한 계열사의 성적에 휘청인 것이라는 점도 짚어볼 만하다. 삼성전자를 뺀 9개사의 영업이익은 3조5205억원으로 전년보다 16.8%(7118억원) 줄었다. 전자 만큼 실적 악화가 급격하진 않았지만, 전자의 부진을 만회하는 역할도 못했다.
10개사의 매출은 315조323억원으로 전년보다 2.5%(8조440억원) 줄어들었다. 평균 영업이익률은 9.9%로 재작년 19.5%에서 10%포인트 가까이 하락하며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삼성그룹의 실적은 다른 계열사가 어떻 건 삼성전자 하나 만으로 모두 설명되는 구조다. 그룹 비금융 주요 10개사중 삼성전자의 사업규모는 작년 기준 매출의 73.1%, 영업이익의 88.7%를 차지한다. 재작년보다 매출은 5.5% 줄고, 영업이익은 52.8%나 급감했는데도 그렇다. 반토막 났다지만 영업이익률 역시 12.1%로 가장 높다. 10개사중 삼성전자 홀로 두 자릿수다.
작년 그룹의 실적 악화 역시 그랬다. 10개사 영업이익 감소분 중 97.8%인 31조1182억원이 삼성전자 몫이었다. 아니 뜯어보면 사실 반도체가 다 했다. 작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과 그 안에 있는 반도체사업부의 전년 대비 영업이익 감소는 각각 30조9300억원(66.5%), 30조5600억원(68.5%)이었다. 반도체가 깎아먹은 게 10개사 작년 영업이익 감소분의 96.1%다.
반도체를 제외한 삼성전자내 다른 사업부와 자회사를 모으면 전년보다 약간 부진한(5700억원, 4% 감소) 정도였다. 소비자가전(CE)부문과 자회사 하만은 각각 전년보다 5900억원, 1600억원 많은 이익을 보탰다. 반면 스마트폰을 주축으로 한 IT·모바일(IM)부문, DS부문내 한 축인 디스플레이사업부는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각각 9000억원, 1조400억원 적었다.
전자 관련 부품 계열사인 삼성전기와 삼성SDI의 실적도 후퇴했다. 삼성전기는 재작년 영업이익이 1조1499억원으로 사상 처음 1조원을 넘겼지만 작년에는 이보다 4159억원, 36.2% 적은 7340억원에 그쳤다. 삼성SDI도 전년보다 영업이익이 2528억원, 35.4% 감소했다.
삼성전기의 경우 주력 제품인 MLCC(Multi-Layer Ceramic Capacitor, 적층세라믹캐패시터)와 카메라모듈의 판매가 부진했다. 삼성SDI는 주력 배터리사업의 한 축인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에서 화재 방지를 위해 2000억원 가량의 비용을 쓰게된 게 컸다. 이 탓에 외형 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은 크게 악화했다.
반면 IT 서비스 계열사인 삼성SDS는 견조한 실적을 선보였다. 작년 매출 10조7196억원, 영업이익 9901억원을 냈는데 이는 각각 전년대비 6.8%, 12.8% 증가한 것이다. 영업이익은 삼성전자를 뺀 9개 계열사중 가장 많다. 영업이익률도 9.2%로 전년보다 0.5%포인트 개선, 삼성전자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그룹밖 사업을 확대하면서 얻은 성과여서 더 의미 있다는 평가다.
건설과 중공업 계열사의 실적은 엇갈렸다. 건설사업을 주력으로 둔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주사 삼성물산과 조선업황 악화로 고전 중인 삼성중공업이 전년보다 부진했다. 반면 해외사업에서 수년전 바닥을 경험한 삼성엔지니어링은 점점 체력을 정상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물산은 매출 30조7620억원, 영업이익 8670억원을 올렸다. 매출 외형은 1.3%, 영업이익 규모는 21.5% 감소한 것이다. 삼성물산의 부진은 건설부문 탓이다. 건설 영업이익은 5400억원으로 전년보다 30.1%, 2330억원 감소했다. 이는 이 회사 전체 영업이익 감소분(2371억원)의 98.3%에 해당한다.
삼성중공업은 수주를 늘리며 외형을 증가세로 돌렸지만 적자 규모는 더 키우고 말았다. 작년 매출은 7조3497억원, 영업손실은 6166억원이었는데 매출은 39.6%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50.6% 확대했다. 드릴십 관련 손실이 3480억원, 공사대금 대손충당금 등 일회성 손실이 1150억원, 저선가·생산성 저하 등 기간손실이 1536억원으로 잡혔다.
반면 삼성엔지니어링은 연 영업이익률을 글로벌 플랜트업계 수위 수준인 6.3%대까지 끌어올렸다. 영업이익은 2012~2013년 조 단위 적자를 본 이후 가장 많은 3855억원이다. 매출의 40% 안팎까지 늘어난 그룹 물량 덕분도 있지만 전공인 화공플랜트 부문의 사업성도 정상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호텔신라는 면세사업을 키운 덕에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인 5조7173억원, 영업이익 2959억원을 기록했다. 면세사업을 담당하는 트레일 리테일(TR) 부문은 지난해 30% 가까운 외형 성장세를 보여 처음으로 매출 5조원을 넘겼다.
이밖에 광고 계열사 제일기획은 매출이 전년 대비 2% 감소했지만 영업익은 2058억원으로 14% 늘었다. 유럽·중남미·중동 등 해외사업 확대 효과가 있었다. 경비 계열사 에스원은 인력 효율화 비용을 반영하면서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2% 줄어든 1968억원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