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오는 27일 주주총회 표대결이 예고된 가운데 표심의 길라잡이가 될 의견권 자문사들이 3자연합 측 이사 후보에 다소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전문 경영인 체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제안한 후보로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이사진의 높은 역량을 내세워 한진그룹 경영진을 압박해 온 3자연합으로선 머쓱한 상황이 됐다. 일부 자문사는 3자연합 구성원의 자격과 경영 의지를 문제 삼기도 했다.
◇KCGS, 전문성? 글쎄... 3자연합, 이해관계 불투명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지난 13일 한진칼 주주총회 의안 보고서를 내고 3자연합의 주주 제안 후보에 대해 '불행사'를 권고했다. 찬성하되, 표 행사는 하지 않겠단 의미다.
3자연합이 선임한 이사진은 김신배 SK그룹 전 부회장·배경태 전 삼성전자 부사장·함철호 전 대한항공 경영전략 본부장 등 3명의 사내이사 후보와 서윤석 전 포스코 이사회 의장(이화여대 교수)·여은정 중앙대 경영경제대학 교수·이형석 수원대 공대 교수·구본주 법무법인 사람과사람 변호사 등 4명의 사외이사 후보로 구성돼 있다.
KCGS는 '불행사' 권고 결정에 대해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제안한 후보의 전문성이 특별히 이사회 측 후보보다 더 높다고 보기 어렵다"며 "현재 항공산업은 코로나19 확산, 일본 불매운동, 홍콩 사태 등 외부 충격요인으로 인해 심각한 불황을 마주하고 있어 3자연합이 추천한 후보들이 이를 극복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한진그룹 이사회가 제시한 후보들이 한진칼의 장기적 주주 가치 제고에 더 적합하다"고 해석했다.
한진그룹은 조원태 회장과 하은용 한진칼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을 사내이사 후보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박영석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 임춘수 마이다스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 최윤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동명 법무법인 처음 대표변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선임했다.
KCGS는 3자연합측 이사회 뿐만 아니라 구성원인 KCGI,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에 대해서도 "이해 관계가 불투명하다"며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조 전 부사장은 한진그룹 오너리스크를 불러 일으킨 '땅콩회항'의 당사자라는 점, 반도건설은 한진그룹 경영 보단 한진그룹이 보유한 유휴자산을 활용한 사업에 목적을 두고 있을 가능성 등을 제기하며 이들의 경영 의지를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향후 3자 연합의 영향력 하에 이사회가 운영될 경우, 이들이 공통의 경영 철학으로 회사를 운영할지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진칼 이사회가 제시한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에 대해선 '찬성' 의견을 내놨다.
KCGS는 "한진칼 이사회는 외부 주주가 요구하는 지배구조와 재무 개선의 의지를 보여주고 이사회 결의를 통해 한진칼의 장기적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한 점이 인정돼 찬성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ISS, 김신배 의장만 찬성..."높은 부채비율, 조 회장 탓하기 어려워"
세계 최고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는 3자연합측 후보에 '반대' 의견을 내놨다.
유일하게 김신배 사내이사 후보에 대해서만 찬성을 권고했다. 과거 타사 경영 및 사외이사 경험이 도움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김신배 의장은 전 SK그룹 부회장 출신으로, 김 후보는 SK그룹 부회장, SK C&C 부회장,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출신으로, 현재는 포스코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ISS는 이번 권고에 있어 3자연합이 한진그룹 변화의 필요성을 주주들에게 잘 설명했는지, 그런 변화를 누가 주도하는지를 기준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김 후보만큼은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ISS는 조 회장의 연임에 대해서도 '찬성' 의견을 내놨다. 한진칼 이사회가 제안한 하은용 대한항공 재무부문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도 찬성할 것을 권고했다.
ISS는 "조 회장과 하 부사장 모두 회사에 도움되는 경력과 경험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한진칼 측이 제안한 사외이사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및 박영석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 최윤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찬성했다. 단 임춘수 마이다스PE 대표나 이동명 법무법인 처음 대표변호사에 대해서는 "경험이 중복된다"는 이유로 반대를 권고했다.
ISS는 KCGS와 달리 3자연합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는 내리지 않았다. 다만 대한항공의 높은 부채비율이 조 회장 탓이라고 지적하는 3자연합의 주장에 대해 "조 회장의 재임기간이 아직 짧아 경영 성과에 대한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 승리 예감?..."아직 이르다"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3자연합 보다는 한진칼 이사회 제안에 힘을 실어주면서 조 회장이 다소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됐다는 평가다. 반대로 이사진의 높은 경륜과 역량을 내세워 한진그룹 경영진의 무능을 비판해 온 3자연합으로선 다소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조 회장이 승기를 잡았다고 예단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는 지적이다. 경영권 갈등이 치열한 만큼 주주들이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를 따를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또 6곳의 자문사중 4곳(글래스루이스·서스틴베스트·대신지배구조연구소·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은 아직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중 일부 자문사는 이미 조원태 회장의 연임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서스틴베스트는 2월말 보고서를 통해 "지난 5년간 대한항공이 국토교통부의 항공안전 관련 행정처분 10건에 대해 과징금 76억원을 받았다"며 "이 시기는 조원태 사내이사 후보가 대표이사로 재직한 시기로, 기업가치 훼손 이력이 존재한 만큼 그의 적격성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한편, 서스틴베스트를 포함한 의결권 자문사들은 이번 주 안으로 한진그룹 경영권 관련 입장문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