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 종합반도체회사 인텔의 낸드 메모리 사업부문을 인수한다. '고질병'으로 지목 받았던 D램 사업 편중 현상을 완화하고, 기업용 SSD(Solid State Drive)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수합병(M&A) 카드를 꺼냈다.
◇ 인텔 낸드, 사실상 '통인수'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 메모리와 저장장치 사업을 90억달러(약 10조3104억원)에 인수한다고 20일 밝혔다. 인수 대상은 낸드 SSD, 낸드 단품과 웨이퍼 사업, 중국 다롄 공장 등 옵테인 사업을 제외한 인텔 낸드 사업 전체다.
SK하이닉스는 인수 대금을 두 번에 걸쳐 현금으로 나눠 지급한다. 우선 1차 기한으로 예상되는 2021년 말까지 70억달러(약 8조192억원)을 납부한다. 그후 인텔 SSD 관련 IP(지적재산권)와 인력, 중국 다롄 공장 자산 등이 SK하이닉스로 이전된다.
SK하이닉스는 잔액 20억달러(2조2912억원)를 2차 지급 기한으로 점쳐지는 2025년 3월에 지급하고, 인텔 낸드플래시 웨이퍼 설계와 생산관련 IP, 연구개발 인력과 다롄 공장 인력 등 잔여 자산을 인수한다. 인텔은 최종 거래 종결 시점까지 다롄 공장 메모리 생산 시설에서 낸드 웨이퍼를 생산하며 관련 웨이퍼 설계와 생산관련 IP를 보유한다.
SK하이닉스는 낸드 사업에서 더 높은 도약을 위해 이번 인수를 결정했다. 앞서 이 회사는 CTF(Charge Trap Flash) 기반 96단 4D 낸드와 128단 4D 낸드 플래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번 인수계약은 양사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가 기대된다. 현재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 부문에서 또 다른 미국 반도체 회사 AMD의 거센 추격에 직면했다. CPU 부문 추가 투자 재원으로 낸드 사업 매각 대금을 활용할 수 있다. 또 D램과 낸드의 장점을 혼합한 옵테인 기술력 제고, 인공지능(AI), 5세대 네트워킹, 자율주행 기술 등 장기적 성장 산업에 투자자금도 확보하게 된다.
SK하이닉스는 시장 수위권 제품으로 D램에 더해 낸드를 추가하게 된다. 이 회사는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낸드 시장 점유율(이하 올해 2분기 매출 기준)이 11.7%로 전세계 4위에 그친다.
D램 점유율이 2위(30.1%)인 것과 비교해 낸드 사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번 인수로 SK하이닉스는 낸드 시장 점유율이 20% 초중반대로 1위 삼성전자(31.4%)와 격차를 좁히게 된다. 인텔은 낸드 시장 점유율이 11.5%로 5위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향후 SK하이닉스는 인텔의 솔루션 기술 및 생산 능력을 접목해 기업용 SSD 등 고부가가치 중심의 3D 낸드 솔루션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D램에 낸드를 '더하다'
이번 인수로 SK하이닉스의 추가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 이 회사는 총 매출에서 낸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연간 기준 20%대로 D램 편중 현상이 심하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낸드 부문에서 올해 연간 영업적자가 전망되는 등 D램에 비해 경쟁력이 취약하다.
이번 인수를 통해 낸드사업의 경쟁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인텔 낸드 사업은 올해 상반기 매출 28억(약 3조2000억원)달러, 영업이익은 6억(약 6800억원)달러를 거뒀다.
특히 그동안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지적된 기업용 SSD 경쟁력 제고도 예상된다. 최근 낸드 시장은 데이터센터 등이 부상하며 기업용 SSD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이 시장 비중이 3~4%대인 것으로 알려지는 등 존재감이 미미하다.
데이터 입출력 등을 처리하는 컨트롤러 등 솔루션 경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SSD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낸드 본체와 컨트롤러를 결합한 솔루션 제품으로 구성된다.
이번 인수로 SK하이닉스는 기업용 SSD 시장에서도 단숨에 수위권 공급자로 등극한다. 인텔은 기업용 SSD 시장 2위(20% 후반대)로 1위 삼성전자(30% 초반대)에 견줄만한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인텔 밥 스완 CEO는 "이번 SK하이닉스와의 결합을 통해 메모리 생태계를 성장시켜 고객, 파트너, 구성원 등에게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CEO(최고경영자)는 "낸드플래시 기술의 혁신을 이끌어 오던 SK하이닉스와 인텔의 낸드 부문이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면서 "서로의 강점을 살려 SK하이닉스는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적극 대응, 낸드 분야에서도 D램 못지 않은 경쟁력을 확보하며 사업구조를 최적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